‘데이식스’ 맴버 원필이 정규앨범 ‘Pilmography’를 발표했다. [사진 제공 · JYP엔터테인먼트]
타이틀곡 ‘안녕, 잘 가’는 애잔한 이별 발라드다. 규칙적인 도약을 담백하게 반복하는 후렴이 착실한 청년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건 전형적인 데이식스다. 장조 음계에서 살짝 벗어나 블루스의 색채를 입힘으로써 아이러니한 표정을 짓는 대목(“함께한 날이” 등)도 데이식스답다. 8분의 6 박자 왈츠 비트에 간단하고 반복적인 리듬의 멜로디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내지만 유치해지기도 쉽다. 적절한 도약과 긴장 해소가 이 함정을 피해간다. 애절한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인물의 감정선이 주는 긴장과 이를 담은 듯 조금 아슬아슬하게 들리는 보컬 연출도 후렴에 다층적인 매력을 부여한다. 마지막 후렴에서는 고음을 누비면서 더욱 화려하게 감정을 토로하며 마무리한다.
‘사랑하지만 보내야 한다’는 내용의 가사다. 가요 발라드에서 너무나 고전적이라 자칫하면 놀림거리가 될 수 있을 정도의 주제다. 이를 원필은 이렇게 재해석한다. 도입부부터 “오늘만큼은 널 떠나보내겠다고 다짐한다”며 복잡한 감정 상태를 극적으로 제시한다(데이식스 노래들도 자꾸 뭔가를 ‘다짐’하곤 한다). 그리고 고별의 구절이 끝나갈 때쯤 반전처럼 사랑을 고백하고, 이 구조를 규칙적으로 반복하며 변주한다. 곡은 마치 드라마처럼 이 이야기를 차곡차곡 짚어가다가 매화 엔딩에 긴장을 주고, 청자는 자연스럽게 따라가면서 감정선을 빨아들인다.
데이식스에서 유닛 ‘데이식스 이븐 오브 데이(DAY6 (Even of Day))’로, 다시 원필의 솔로 앨범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선을 그어본다. 케이팝 시스템에서 제작된 밴드로서 데이식스는 아이돌과 록이라는 얼핏 상반돼 보이는 세계 사이에서 자신들만의 자리를 탐색하곤 했다. 그것은 사실 ‘가요’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술집에서 흔히 듣는 발라드까지 포함해, 가요와의 밀고 당기기는 단순하지 않다. 가요적이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 가요적이면 록은 록이 아니고, 아이돌은 ‘칙칙하다’는 폄하를 받기 십상이다.
원필이 쌓아올린 음악적 자아 담겨
2015년 데뷔 초에는 국내 동시대 밴드들의 생기와 팝적 세련미에 복고적 색채로 감정선을 덧댔다. 이후 록 밴드의 정체성을 좀 더 강화하는 과정에서는 흥미롭게도 1980년대 영국 뉴웨이브(New Wave) 색채가 자주 엿보였다. 과격한 펑크(Punk)가 다양한 음악과 기술을 마구 흡수하며 혼종을 낳았다. 한편 데이식스 이븐 오브 데이는 한국 가요계의 온갖 ‘좋았던 순간들’에 대한 오마주처럼 들리곤 했다. 그에 이어 원필의 ‘안녕, 잘 가’는 가요를 좀 더 적극적으로 끌어안기로 결정한다.그 뒤에는 6년여 여정이 남긴 갖은 실험 결과가 있다. 거기에는 사색적이고 진솔한 청년의 캐릭터나 극적인 감정을 세련되게 표현하는 기술, 효과적인 멜로디 쓰기 같은 것도 있겠다. 그러나 록, 아이돌, 가요, 뉴웨이브, 어디에서도 불변하는 원칙은 결국 ‘좋은 팝송’이 아니었을까. 깔끔하고 쉽게 귓가에 남으며 가슴을 울리는 한 곡의 노래 말이다. 그렇기만 하다면, 더구나 지금까지 데이식스와 원필이 쌓아올린 음악적 자아라면, 장르나 인정투쟁은 크게 중요치 않은 듯하다. 그런 결론에서 비롯된 ‘가요’는 얼마든지 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