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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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집회 밝힌 아이돌 응원봉

[미묘의 케이팝 내비]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2024-12-1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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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9일 오후 대구 중구 CGV 대구한일 앞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대구시민시국대회’에서 시민들이 응원봉을 흔들고 있다. [뉴시스]

    12월 9일 오후 대구 중구 CGV 대구한일 앞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대구시민시국대회’에서 시민들이 응원봉을 흔들고 있다. [뉴시스]

    아이돌 응원봉이 연일 화제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서울 여의도에 몰려든 시위대 사이에서 전통적인 품목인 깃발, 팻말, 촛불 이외에 비상한 발광력과 든든한 그립감을 자랑하는 아이돌 응원봉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아티스트마다 응원봉 색상과 모양이 각기 달라 시위 풍경은 알록달록 빛나고 있다. 여의도 곳곳의 카페나 음식점에서도 아이돌 이름을 대고 식음료를 받아가는 이가 수두룩해 마치 판타지 소설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시위 주최 측도 에스파의 ‘Whiplash’를 비롯한 K팝 곡을 적극 활용하고, 다양한 응원봉이 어느 팬덤의 것인지 안내하는 자리도 갖고 있다. 시위 참가자들도 응원봉을 새로운 시위 문화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정치 현장 속 K팝은 늘 낯설고 신기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지금도 그렇고, 지난해부터 K팝 팬덤이 기후위기나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발언할 때도 그랬다. 2020년 태국 민주화 시위에서 블랙핑크의 노래가 흐를 때도, 같은 해 미국 흑인인권운동에 K팝 팬덤이 연대할 때도, 2016년 이화여대 시위에서 ‘다시 만난 세계’가 불릴 때도 그랬다. 오래되고 꾸준한 것이 어떻게 늘 새로울 수 있을까. 이는 오직 K팝이 비정치적이라는 관념 때문이다.

    외면받던 K팝의 정치성

    실제로 K팝은 탈정치를 지향하는 면이 있다. K팝은 ‘사회비판’ 메시지를 표방할 때조차 한없이 애매모호한 표현들로 정치성을 희석하려 하고, 아티스트의 정치적 표현을 단속하기도 한다. 그러나 K팝 팬들은 언제나 거리에 있었다. 방송국과 기획사의 푸대접을 받으며 추운 새벽 거리에서 하염없이 대기해온 탓에 시위 특화 인력이라는 농담도 돈다. ‘빠순이’에 대한 사회적 괄시에 시달려온 덕분에 웬만한 시련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국민의힘 당사에 보낸 근조화환이 파손됐다는 소식에 K팝 기획사와 달리 “피드백이 온다”며 호기롭게 즐거워할 줄도 안다. 무엇보다 이들은 언제나 우리 사회의 시민이었다. 아이돌 팬이라는 이름표가 붙든, 그렇지 않든. 다만 이제 그들이 비로소 보일 따름이다. 그러니 이 새로움은 새로움이 아니라, 지금까지 외면해온 것의 발견에 불과하다.

    여의도에서 아이돌 이름이 식음료 ‘쿠폰’이 된 것 역시 여러 주체가 아이돌 이름으로 사전 결제를 해놓았기 때문이다. 팬들도, 그리고 아티스트들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팬들 사이에 전달되는 우회적 지지다. 공개적인 의견 표명에 비해서는 조심스러운 방법이라 할 만한데, K팝에 씌워진 탈정치 관념의 관성 탓도 있겠다. 아티스트의 참여를 우려하는 팬들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계엄의 밤에 당장 국회 앞으로 달려 나간 아이돌도 있다. K팝을 구성하는 모든 것은 전혀 비정치적이지 않다. 이들을 신기하게 여기는 눈빛은 아주 빠르게 낡아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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