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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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케가 세계문화유산이 된 이유

[명욱의 술기로운 세계사] “일본 문화에 깊이 뿌리내려”… 쌀 도정률과 지역에 따른 다양성 추구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입력2024-12-15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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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케는 주원료인 쌀의 도정률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GettyImages]

    사케는 주원료인 쌀의 도정률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GettyImages]

    사케(日本酒), 쇼츄(焼酎) 등을 포함하는 일본의 전통 술 빚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정식 등록됐다. 12월 5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최종 결정이 이뤄졌다. 위원회는 결정문에서 “일본 술은 일본 문화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며 “신이 내린 선물로 여겨지는 일본 술은 축제, 결혼 등 각종 행사에 빠질 수 없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일본 사케, 쇼츄가 지역별로 어떤 특징과 의미를 지니기에 위원회가 문화유산으로 선정했을까.

    쌀·쌀누룩·물, 단 세 가지 원료로…

    사케는 원료가 매우 간단하다. 쌀과 쌀누룩, 물 단 세 가지뿐이다. 쌀누룩으로는 ‘입국(바라코지)’이라는 일본식 쌀 흩임 누룩이 사용된다. 이 같은 원료 구성을 볼 때 사케는 ‘심플의 미학’을 지향하는 발효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간단한 원료로 어떻게 지역별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는지 아마 의문이 들 것이다. 차이를 가르는 것은 바로 쌀 도정률이다. 쌀에는 전분 이외에 단백질, 지방, 비타민B군 등 몸에 이로운 다양한 성분이 들어 있다. 하지만 사케를 발효시킬 때 이들 성분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 그래서 도정을 진행하고, 그 정도를 기준으로 사케 등급을 구분하는 ‘특정명칭주’ 제도가 마련됐다. 술로 영양분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해 현미막걸리 등을 만들어 마시는 한국 문화와는 전혀 다른 지점이다.

    도정 정도를 기준으로 한 사케 명칭은 다음과 같다. 50% 이상 도정 쌀로 만든 사케는 다이긴죠(大吟醸), 40%는 긴죠(吟醸), 30%는 혼죠죠(本醸造)다. 사케에 맛과 향의 균형을 위해 알코올을 첨가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를 구분하고자 순수 쌀로만 만든 사케는 준마이슈(純米酒)라고 지칭한다. 우리말로 ‘순미주’다. 이 기준에 따르면 50% 이상 도정 쌀로만 만든 사케는 준마이다이긴죠(純米大吟醸), 40%는 준마이긴죠(純米吟醸), 30%는 준마이혼죠죠슈(純米本醸造酒)가 된다. 이들 명칭에 해당하지 않는 저가 사케는 후츠슈(普通酒), 즉 ‘보통주’로 불린다. 또한 도정을 많이 한 고급 사케에서는 과실향이 많이 나는데, 이 향을 긴죠향(吟醸香)이라고 칭한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일본에서 사케가 남성의 술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에도 시대까지 사케 양조장에는 여성 출입이 금지됐다. 이유는 꽤나 현실적이다. 우선 술 빚기는 중노동에 가깝다. 수십㎏에 달하는 쌀과 밥(누룩), 물, 나중에는 완성된 술까지 옮겨야 하기 때문에 많은 힘을 필요로 한다. 그러다 보니 주로 남성이 선호됐던 것이다. 또 술은 주로 농민이 농한기(겨울)에 양조장에서 합숙하며 빚어야 하는데, 이때 이성이 섞여 있으면 합숙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지금은 합숙하면서 술을 빚는 문화가 사라졌고, 여성의 양조장 출입도 허용되고 있으며, 여성 사케 공장장도 나오는 시대지만, 주로 어머니가 딸이나 며느리에게, 여성에서 여성으로 전수되며 수많은 문헌을 남긴 한국 술 문화와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사케 양조장은 고베, 교토, 니가타를 중심으로 일본 전역에 퍼져 있다. 고베는 과거 고베항을 통해 도쿄로 사케를 수출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고, 교토는 일본의 정신적 고향이자 수많은 귀족이 살던 곳이다. 니가타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쌀 품종인 고시히카리가 탄생한 지역으로, 겨울철 10m가 넘는 적설량으로 땅속 미생물이 유지되는 것은 물론 주요 수원지도 자리해 최고급 품종의 쌀을 재배할 수 있었다. 각각의 이유로 일본 내 고급 사케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선 소주 대마도 통해 쇼츄에 영향

    일본 쇼츄 주산지는 사케 생산 지역과 거의 겹치지 않는다. 사케 양조장이 교토 등 관서지역, 좋은 쌀이 나는 니가타 쪽에 위치해 있다면 쇼츄는 남쪽 규슈 지역과 연결돼 있다. 발효주인 사케와 달리 쇼츄는 비교적 덥고 습한 지역에서도 저장성이 좋기 때문이다. 

    가고시마, 미야자키 등이 고구마 쇼츄로 유명하고 구마모토는 쌀 쇼츄 주산지다. 오이타, 이키섬 등은 보리 쇼츄로 널리 알려졌다. 가고시마 특산품이 고구마인 이유는 사쿠라지마라는 활화산이 바로 옆에 있어 지역에 늘 화산 분재가 날아들었고, 이에 땅 위 작물보다 땅속 작물을 재배하는 편이 더 유리해 자연스레 고구마 농사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일본 오키나와 즈이센 양조장에서 아와모리 쇼츄를 숙성시키고 있다. [명욱 제공]

    일본 오키나와 즈이센 양조장에서 아와모리 쇼츄를 숙성시키고 있다. [명욱 제공]

    ‌남쪽 지역이 쇼츄 주산지로 발전한 역사적 배경도 있다. 1609년 규슈의 사츠마번(현 가고시마현)은 오키나와를 점령한 뒤 속국으로 삼았다. 당시 오키나와는 아와모리 쇼츄를 왕실에 헌납하고 있었고, 이 기술이 가고시마로 흘러들어가 고구마 쇼츄 및 규슈 지역 쇼츄가 발전한 것이다.

    일본 쇼츄 기술은 한반도와도 관련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대마도 영주에게 조선 소주를 줬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이키섬 등에서 만들어지는 보리 쇼츄가 한반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고베, 교토, 니가타를 중심으로 한 사케 양조장과 가고시마, 미야자키, 이키섬, 나아가 오키나와의 쇼츄 양조장 상당수가 견학 및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장인들이 직접 나와서 외국 관광객과 소통하며 그 가치를 알리기도 한다. 일본 전통 술 빚기 문화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주된 이유도 일본이 이처럼 술의 문화적·지역적 가치를 계승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술을 단순히 취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문화로서 향유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얘기다. 한국 술 문화 및 관련 산업이 가장 취약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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