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주목받는 위스키가 하나 있다. 태평양과 대서양, 사막과 북극에 모두 발을 걸치고 있는 나라, 한 해 군사비만 1000조 원에 달해 ‘천조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 만든 위스키다. 미국 위스키의 대표 격으로는 ‘버번(Bourbon)위스키’가 있다. 옥수수가 51% 이상 사용되고, 새 오크통에서 숙성시켜야 하며, 증류 시 알코올 도수가 80%를 넘겨선 안 되는 엄격한 제조 기준을 가진 위스키다. 버번위스키는 색소 및 향료 사용에도 제한이 있으며, 특히 ‘스트레이트 버번’이라고 표기되려면 반드시 2년 이상 숙성을 거쳐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제품으로는 짐빔, 버팔로 트레이스, 포로지스, 메이커스 마크 등이 있다.
그렇다면 버번위스키는 왜 옥수수를 주원료로 사용하게 됐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초기 미국 개척자들을 집단 아사(餓死) 위기에서 구해준 작물이 바로 옥수수이기 때문이다. 미국 원주민 왐파노아그족이 먹거리로 선물해주고 재배 방법까지 알려준, 개척자들 입장에서는 아주 고마운 작물이다. 옥수수는 밀, 쌀 등과는 특성이 다르다. 어떤 기후에서도 잘 자라기에 18세기 한 톨의 씨앗으로 수확할 수 있는 옥수수가 100톨이나 됐다고 한다. 밀은 5톨, 쌀은 18톨이다. 이 같은 사실을 안 개척자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 이후 버지니아주 서쪽 땅을 개척해 옥수수를 대량 재배하고자 했다. 1776년에는 ‘옥수수 농장 및 주택 권리법(Corn Patch and Cabin Rights Act)’을 시행하는데, 이 지역에 집을 짓고 옥수수를 기르는 사람에게 토지 1.6㎢(약 48만 평)를 준다는 것이 골자였다. 1792년에는 이 지역이 버지니아주에서 분리 독립해 연방에 가입한 15번째 주가 됐는데, 그곳이 바로 켄터키주다.
버번위스키는 켄터키주에 새롭게 생겨난 도시 버번 카운티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버번 카운티의 버번에서 명칭을 따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버번 카운티는 다시 프랑스 루이 14세 왕조 ‘부르봉(Bourbon)’의 이름을 붙여 세워진 도시다. 부르봉 왕조 이름을 넣은 배경으로는 프랑스가 미국 독립전쟁을 도왔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당시 인도 및 북미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영국에 패하던 프랑스 부르봉 왕조가 영국의 콧대를 꺾고자 미국 독립혁명을 도왔다. 그 고마움의 표현으로 미국이 버번 카운티라는 도시를 세웠고, 이곳에서 위스키를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버번위스키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인근에 흔한 옥수수를 주원료로 사용한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버번위스키 명칭 유래에 관한 또 다른 설로는 루이지애나주에서 위스키가 많이 팔려서라는 것도 있다. 루이지애나주는 과거 프랑스 식민지로 루이 14세 이름에서 따온 루이지애나, 오를레앙에서 따온 뉴올리언스 등 프랑스 흔적이 여럿 남아 있는 곳이다. 켄터키주에서 만든 많은 위스키가 가을 증류, 겨울 숙성을 거쳐 봄이 되면 미시시피강을 따라 이곳 지역에 도착했는데, 이곳 하류의 버번 스트리트에서 위스키가 유행하면서 버번위스키로 불리게 됐다고 보고 있다. 다만 버번 카운티든, 버번 스트리트든 둘 중 어느 쪽에서 왔다고 해도 버번위스키 명칭이 프랑스 왕조에 뿌리를 뒀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19세기 중반에는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으로 수많은 이민자가 미국으로 건너왔다. 이때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증류 기술이 널리 퍼지게 됐다. 증류 기술이 발전하는 가운데 남북전쟁으로 주류 소비가 급증하고, 미 대륙 횡단열차가 운행되면서 황량하던 서부에 도시가 생겨나 위스키 산업이 크게 성장한다. 전장에서는 마취제나 소독제로 쓰이는 것은 물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는 수단이 됐으며, 서부에는 신문물로서 조달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이때 가파른 성장세만큼이나 ‘가짜 위스키’도 다수 등장했다. 이를 해결하고자 미 정부는 ‘보틀드 인 본드’(Bottled In Bond·BIB)를 법제화했다. 한 곳 증류소, 하나의 증류기에서 나온 원액으로만 위스키를 만들어야 하며 4년 이상 숙성을 거쳐야 BIB로 표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후 1964년 미 의회가 미국 고유 증류주로 버번위스키를 채택하고 제조 기준 등에 대한 법 제도를 고도화하면서 현재 위스키는 전 세계에 그 가치를 알리고 있다. 진입장벽을 낮춰 쉬운 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프리미엄화로 부가가치를 높인 전략이 통한 것이다.
버번위스키는 미국으로 건너간 영국인이 원주민 도움으로 옥수수라는 작물을 알게 되고,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이름에 착안해 만든 위스키라는 점에서 다국적 성격을 가진다. 아일랜드 등 이민자들이 증류 기술을 더 발전시켰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서로 다른 문화와 문명이 어우러지고, 그 안에 특유의 개척 정신이 담겼다는 점에서 미국 정체성을 그대로 나타내는 술이 아닌가 싶다.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인디언이 전해준 옥수수가 원료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다양한 ‘버번(Bourbon) 위스키’ 제품들. [각 사 제공]
버번위스키는 켄터키주에 새롭게 생겨난 도시 버번 카운티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버번 카운티의 버번에서 명칭을 따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버번 카운티는 다시 프랑스 루이 14세 왕조 ‘부르봉(Bourbon)’의 이름을 붙여 세워진 도시다. 부르봉 왕조 이름을 넣은 배경으로는 프랑스가 미국 독립전쟁을 도왔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당시 인도 및 북미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영국에 패하던 프랑스 부르봉 왕조가 영국의 콧대를 꺾고자 미국 독립혁명을 도왔다. 그 고마움의 표현으로 미국이 버번 카운티라는 도시를 세웠고, 이곳에서 위스키를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버번위스키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인근에 흔한 옥수수를 주원료로 사용한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버번위스키 명칭 유래에 관한 또 다른 설로는 루이지애나주에서 위스키가 많이 팔려서라는 것도 있다. 루이지애나주는 과거 프랑스 식민지로 루이 14세 이름에서 따온 루이지애나, 오를레앙에서 따온 뉴올리언스 등 프랑스 흔적이 여럿 남아 있는 곳이다. 켄터키주에서 만든 많은 위스키가 가을 증류, 겨울 숙성을 거쳐 봄이 되면 미시시피강을 따라 이곳 지역에 도착했는데, 이곳 하류의 버번 스트리트에서 위스키가 유행하면서 버번위스키로 불리게 됐다고 보고 있다. 다만 버번 카운티든, 버번 스트리트든 둘 중 어느 쪽에서 왔다고 해도 버번위스키 명칭이 프랑스 왕조에 뿌리를 뒀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아일랜드 증류 기술 더해진 다국적 술
버번위스키는 18세기에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당시 미국의 또 다른 대표 술 ‘럼주’는 위기를 맞게 되는데, 영국이 1764년 미국산 당밀(럼주 주원료)에 높은 수입 관세를 부과했기 때문이다. 이 법령 제정을 기점으로 본국 영국과 식민지 미국의 대립이 심해지면서 미국 독립전쟁을 촉발하기도 했다. 독립 이후에도 미국 입장에서 럼주는 영국을 상징하는 ‘꼴사나운 술’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영국 해군을 대표하는 술이 바로 럼주였기 때문이다. 이에 럼주보다 위스키를 찾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또 럼주는 노예무역의 대가를 지불하는 수단이기도 했는데, 노예무역이 폐지되면서 더는 노예를 사고팔지 않으니 럼주 가치도 함께 내려가게 됐다.
19세기 중반에는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으로 수많은 이민자가 미국으로 건너왔다. 이때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증류 기술이 널리 퍼지게 됐다. 증류 기술이 발전하는 가운데 남북전쟁으로 주류 소비가 급증하고, 미 대륙 횡단열차가 운행되면서 황량하던 서부에 도시가 생겨나 위스키 산업이 크게 성장한다. 전장에서는 마취제나 소독제로 쓰이는 것은 물론,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는 수단이 됐으며, 서부에는 신문물로서 조달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이때 가파른 성장세만큼이나 ‘가짜 위스키’도 다수 등장했다. 이를 해결하고자 미 정부는 ‘보틀드 인 본드’(Bottled In Bond·BIB)를 법제화했다. 한 곳 증류소, 하나의 증류기에서 나온 원액으로만 위스키를 만들어야 하며 4년 이상 숙성을 거쳐야 BIB로 표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후 1964년 미 의회가 미국 고유 증류주로 버번위스키를 채택하고 제조 기준 등에 대한 법 제도를 고도화하면서 현재 위스키는 전 세계에 그 가치를 알리고 있다. 진입장벽을 낮춰 쉬운 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프리미엄화로 부가가치를 높인 전략이 통한 것이다.
버번위스키는 미국으로 건너간 영국인이 원주민 도움으로 옥수수라는 작물을 알게 되고,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이름에 착안해 만든 위스키라는 점에서 다국적 성격을 가진다. 아일랜드 등 이민자들이 증류 기술을 더 발전시켰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서로 다른 문화와 문명이 어우러지고, 그 안에 특유의 개척 정신이 담겼다는 점에서 미국 정체성을 그대로 나타내는 술이 아닌가 싶다.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