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27

2022.02.18

과거를 들여다보기 위한 인류의 필사적 노력

[궤도 밖의 과학] 25년을 기다린 가장 거대한 우주망원경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입력2022-02-23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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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S]

    [GETTYIMAGES]

    익숙한 캐럴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던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는 드디어 과학자들의 오랜 염원이 우주를 향해 발사됐다. 인류 역사에서 달 탐사 이후 가장 기념비적 사건으로 불리는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 임무의 성공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우주망원경은 말 그대로 우주로 쏘아 올린 망원경을 말한다. 지상에서는 아무리 신중하게 망원경 설치 장소를 결정한다 해도 구름이 하늘을 가리거나 주변 빛이 관측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다. 쉽지 않은 도전이라 그렇지, 일단 우주로 나가면 지구에서보다 훨씬 수월하게 고품질의 천체 사진을 밤낮없이 찍을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우주망원경은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의 이름을 딴 허블 우주망원경이며, 우리가 보는 수많은 우주 사진은 주로 이 망원경이 찍었다.

    스피처 우주망원경, 케플러 우주망원경, 허블 우주망원경(위부터). [SPITZER 홈페이지, 사진 제공 · NASA]

    스피처 우주망원경, 케플러 우주망원경, 허블 우주망원경(위부터). [SPITZER 홈페이지, 사진 제공 · NASA]

    물론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허블 우주망원경 외에도 우주망원경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안한 미국 천문학자 라이먼 스피처의 이름을 받은 스피처 우주망원경, 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의 이름을 빌린 케플러 우주망원경도 있다. 유럽우주국의 허셜 우주망원경 역시 남매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과 캐럴라인 허셜의 이름으로부터 우주를 향한 의지를 이었다.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은 원래 차세대 우주망원경으로 불리다 2002년부터 NASA 제2대 국장이던 제임스 에드윈 웨브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여느 우주망원경과 달리 과학자가 아닌 행정가의 이름을 붙여야 했는지에 대한 당시 대중과 학계의 우려는 상당했다. 하지만 웨브 국장은 재임 기간 인종이나 성별로 차별하지 않고 오직 실력으로만 연구자들을 대한 혁신적 리더였다. 또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아폴로 프로젝트가 중단되지 않도록 꾸준히 관계자들을 설득해 마지막까지 성공시킨 장본인이다.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 역시 13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갔기에,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다짐을 담아 근성의 아이콘인 제임스 웨브 국장의 이름을 넣은 결정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지금도 열심히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허블 우주망원경은 1990년 처음 우주로 올라갔다. 아침 출근길부터 이미 머릿속으로 퇴근을 생각하는 것처럼, 우주의 새로운 눈으로 불리는 허블 우주망원경이 올라가자마자 NASA는 뒤를 이을 다음 단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에 대한 계획은 이미 1996년부터 차근차근 이뤄졌다. 분위기가 좋던 초반에는 2007년쯤 우주로 올라갈 예정이었으나, 점차 연기되면서 어쩔 수 없이 허블 우주망원경의 성능을 개선하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4년 뒤, 늘어지는 일정 때문에 예산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자 취소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다행히 이미 투입된 예산을 언급하며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 덕분에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마무리 단계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를 강타했고, 그 여파로 현장에서 원활한 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개발 일정도 함께 늦춰졌다. 우여곡절 끝에 망원경이 완성됐으나 이번에는 발사체에 싣다가 진동이 발생했고, 혹시나 모를 부품 손상 가능성을 고려해 연기했다. 이후 발사체와 망원경 사이에 통신 문제가 드러나면서 다시 미뤄졌다. 발사 직전인 지난해 12월에는 좋지 않은 날씨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크리스마스까지 연기해야 했다. 험난한 여정을 오랫동안 걸어왔지만, 마침내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은 인류 역사상 우주로 나간 가장 거대한 우주망원경으로서 금빛 거울을 활짝 펼치게 됐다.

    멀리 떠나버린 이유는?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왼쪽)과 L2 포인트. [사진 제공 · NASA]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왼쪽)과 L2 포인트. [사진 제공 · NASA]

    사실 진행 중인 우주 임무의 연기는 흔한 일이다. 하지만 유독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의 연기는 특별해 보인다. 그건 이 임무가 시작부터 끝까지 조금의 문제라도 있으면 결코 안 되는 완벽하고 정교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선배인 허블 우주망원경의 경우 우주로 나간 뒤 보내온 사진들이 뿌옇게 보이는 현상이 나타났다. 최초의 사진 역시 기대치보다 훨씬 떨어지는 해상도를 보였고, 원인을 찾아보니 망원경에서 핵심인 광학계에 문제가 있었다. 주 반사경의 연마 과정에서 발생한 미세한 오차로 생긴 구면 수차가 너무 심각했다. 쉽게 말해 주 반사경은 멀리서 온 빛을 최대한 정확히 한 점에서 모아줘야 하는데, 거울 가장자리와 중심에서 각각 반사된 빛이 모이는 초점 위치가 일치하지 않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허블 우주망원경이 보유한 광학계의 결함과 정확히 똑같은 오차를 갖는 새로운 광학 장비를 추가로 달아 역으로 구면 수차를 바로잡는 수리를 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크고 작은 고장들을 계속 수리하면서 처음 설계된 수명보다 2배 넘도록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아쉽게도 이런 행복한 결말은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에는 기대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허블 우주망원경처럼 지구 근처에서 돌고 있는 게 아니라, 너무 먼 곳으로 날아가 수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해부터 개발 중인 스페이스X의 스타십은 지구 주위를 돌면서 연료 보급이 가능하다. 100t가량을 실을 수 있는 거대한 화물칸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여차하면 우주망원경을 수리하거나 회수하는 게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좋은 건 수명이 끝나는 날까지 고장 없이 잘 버텨주는 것이다. 심지어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은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보다 4배나 멀리 떨어진 L2 포인트로 가기 때문에 일단 발사 후에는 문제가 발견돼도 고칠 수 없다. L2 포인트는 천문학자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의 이름을 따서 ‘라그랑주점’으로 불리는 중력 평형점이다. 태양과 지구에 대해 상대적으로 정지해 있을 수 있기에 우주 탐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로 활용된다. 여기 놓인 탐사선은 마치 등산하는 부장님과 상무님 사이에서 적당한 거리와 각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산을 오르는 신입사원처럼, 움직이는 태양과 지구 사이에서 기가 막히게 자리를 잡는다. 이렇게 중력이 교묘하게 상쇄되는 장소가 다섯 군데 있다. 항상 지구를 등지고 태양을 볼 수 있어 주로 태양 관측 위성이 자리 잡는 L1 포인트와 이번에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이 도착한 L2 포인트를 제외한 나머지 라그랑주점은 너무 멀어서 인류가 활용하기 쉽지 않다. L2 포인트에 놓이면 태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지구보다 느리게 태양 주위를 공전해야 한다. 그만큼 바로 앞에 있는 지구가 중력으로 당겨주기에 지구와 같은 주기로 함께 공전할 수 있다.



    현재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은 목적지인 L2 포인트에 잘 도착했다. 특이하게도 L2 포인트에 고정돼 있는 게 아니라, 작은 원을 그리며 지구를 따라온다. 중력 평형점이라 해도 지속적인 태양의 복사압이나 장비의 작동으로 인해 밀리거나 자세가 틀어질 수 있다. 그래서 원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 연료를 써야 한다. 이러한 연료 소모를 줄이기 위해 L2 포인트 근처에서 지구가 줄로 잡아 돌리는 것처럼 태양과 지구 바깥쪽을 공전한다. 한 점의 위치를 지키는 것보다 작은 원의 궤도를 유지하는 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주 반사경의 지름은 허블 우주망원경보다 2.5배 큰 6.5m이지만, 그 대신 베릴륨이라는 가벼운 금속을 핵심 소재로 써 질량을 절반으로 줄였다. 우주로 탐사선을 보내는 과정에서 중요한 고민거리 중 하나는 바로 거대한 부피다. NASA는 이미 오래전부터 태양전지판처럼 크게 펼치는 장비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올리기 위해 종이접기 기술을 활용했다. 이번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처럼 역대급으로 거대한 구조물 역시 육각형의 거울 조각 18개를 포함해 꼼꼼히 접었다. 이후 날아가는 동안 미세한 도르래와 모터를 이용해 차근차근 접힌 몸을 완전히 폈다.

    태초로 인류를 데려다줄 타임머신

    종종 목적지까지 거리를 길이 단위가 아닌 시간으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주처럼 끝없이 넓은 공간에서는 거리가 곧 시간이다. 더 멀리 볼수록 오래전의 정보를 담은 빛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이다.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은 허블 우주망원경이 관측한 과거보다 더 이전을 보고자 파장이 긴 적외선으로 관측한다. 적외선을 꼼꼼히 모으기 위해 적외선 반사율이 가장 높은 금으로 거울을 얇게 코팅했고, 장비 자체에서 나오는 열에너지의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극저온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바로 방패처럼 생긴 다섯 겹의 차광막이다. 보통 적외선 우주망원경의 수명이 짧은 이유는 냉각제가 금방 떨어지기 때문이다.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은 태양으로부터 최대한 먼 곳에서 테니스장 크기의 차광막으로 태양빛을 막아 냉각제 사용을 줄였다. 이로 인해 최소 5년 이상 수명을 기대하고 있다.

    상상 이상의 것들을 담아낼 우주망원경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이 찍은 공식적인 첫 사진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마젤란은하. [사진 제공 · NASA, ESA, S. Beckwith (STScI) and the Hubble Heritage Team (STScI/AURA)]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이 찍은 공식적인 첫 사진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마젤란은하. [사진 제공 · NASA, ESA, S. Beckwith (STScI) and the Hubble Heritage Team (STScI/AURA)]

    1월 31일 NASA는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의 모든 관측 장비에 전원이 공급되기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장비들이 제대로 적외선을 관측하려면 극저온까지 온도를 떨어뜨려야 한다. 장비가 켜진 후에는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동안 얼지 않도록 가동되던 난방을 중단하고 냉각을 시작했다.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은 18개 거울을 사용하다 보니 하나의 천체를 찍어도 18가지 이미지가 나온다. 이제부터는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 위한 미세 정렬 작업을 해야 한다. 근적외선 카메라로 초점을 맞추기 위해 지구로부터 241광년 떨어진 큰곰자리 방향의 HD 84406이라는 항성을 촬영했고, 이를 10억 분의 1m 단위로 섬세하게 조정해 한 장의 선명한 이미지로 만들어낼 계획이다.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이 찍은 공식적인 최초 천체 이미지는 6월 말쯤 공개될 예정이다. 아마도 지구에서 16만 광년가량 거리에 있고 밝기가 균일한 대마젤란은하가 영광스러운 첫 사진의 주인공이 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여전히 내부가 베일에 싸인 은하라 숨겨진 비밀의 실마리가 밝혀질지도 모른다. 빌 넬슨 NASA 국장은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이 인류를 우주가 시작하는 시점으로 데려갈 타임머신이라며, 상상해본 적 없는 놀라운 것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거대한 인류 과학기술의 결정체를 통해 최초의 별이나 은하가 어떻게 형성됐는지도 알 수 있다. 외계 생명체의 존재나 생명의 기원에 대한 궁금증이 풀릴지도 모르는 행복한 순간이다. 어쩌면 산타할아버지가 가져다줄 예상치 못한 선물 보따리를 잔뜩 기대하며 거대한 양말을 걸어두고 잠들던 어린 시절처럼, 이미 과학자들은 크리스마스에 발사된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이 가져다줄 멋진 선물을 기대하며 마음껏 설레고 있으리라.

    궤도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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