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그룹 사옥 주변 도로가에 시위 현수막이 여러 개 걸려 있다. [독자 제공 ]
“시끄러워 못 살겠다” 민원 급증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그룹 사옥 주변에서 진행되는 시위도 피해를 끼치는 건 마찬가지다. 고음의 운동가요가 매일 흘러나오고, 도로가에는 모욕적인 표현이 담긴 현수막 여러 개가 걸려 있다. 보행도로를 가로막은 불법 천막 안에는 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휴대용 가스버너 등이 놓여 있다. 판매대리점과 판매용역계약을 맺고 신차를 판매하다 계약이 해지된 A 씨가 본인의 계약 해지와는 무관한 기아를 상대로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10여 년간 시위를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판매대리점은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A 씨는 해당 대리점의 개인사업자일 뿐 고용 측면에서 기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기아는 A 씨를 상대로 과대소음·명예훼손 문구 금지 등 가처분 소송과 민사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했다. 형사소송 1심에서도 유죄가 선고됐으나 시위는 지속되고 있다.변칙적인 시위의 대표 사례로 현수막을 들 수 있다.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현수막을 설치하려면 관할 행정청에 신고한 후 현수막 전용 게시대에 게시해야 한다. 그 외 장소에 걸린 현수막은 불법이고 철거 대상이지만 집회 용품으로 신고된 광고물은 단속에서 배제된다. 법의 이런 맹점을 이용해 30일 간격으로 집회 기간을 연장하며 현수막을 내거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법제처가 2013년 “실제 집회가 열리는 기간에만 현수막을 표시·설치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았지만 구속력이 부족해 실제 현장에선 거의 적용되지 않고 있다. 허위 사실이나 명예훼손성 현수막 문구도 문제다. 현수막에 적힌 해당 기업이 법원에 사용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해 승소해도 일부 문구만 변경해 다시 게시하는 일이 빈번하다.
집회를 위해 도로나 인도에 천막을 설치하고 각종 시위 물품을 적치하는 불법 행태도 심각하다.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의 허가 없이 인도나 차도에 천막을 설치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도로법 제75조와 제61조에 따르면 누구든지 정당한 사유 없이 도로에 장애물을 쌓아두거나, 도로 구조 또는 교통에 지장을 주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되고, 도로관리청의 허가 없이 도로를 점용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도로법 위반으로 지자체가 수차례 철거 계고장을 발부해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또 천막을 집회용품 일부라고 주장하면 지자체에서도 물리적 충돌 및 민원을 우려해 철거에 나서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과격한 시위나 집회는 북과 꽹과리 같은 시끄러운 악기를 동원하거나 대형 확성기를 통해 고성을 지르는 등 악의적 소음을 유발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따르면 1시간 동안 3번 이상 소음 기준을 초과하거나, 10분간 연속 측정한 평균 소음이 기준을 넘길 경우 경찰 개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규정을 회피하려는 각종 꼼수가 동원되고 있다. 1시간에 2번만 기준을 초과하는 큰 소리를 내거나, 5분간 강한 소음을 내고 나머지 5분은 방송을 꺼버리는 식이다. 또한 1인 시위는 집시법 적용 대상이 아니고 소음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다. 일정 지역만 정식 집회 신고를 하고, 기업 출입문 등에서 기준 이상의 소음을 발생시키는 1인 시위를 하는 것이다.
이런 막무가내식 시위는 해당 기업에 신뢰도와 이미지 하락이라는 막대한 피해를 준다. 기업 사옥 앞에서 벌이는 시위는 통상 협상 카드로 활용되곤 한다. 시위자들은 사실을 왜곡하거나 모욕적인 내용의 현수막을 내거는 등 좀 더 자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며 기업을 압박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은 자구책으로 사실 왜곡 및 명예훼손 등에 법적 대응을 적잖게 하지만, 법 절차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승소하더라도 피해가 지속되곤 한다.
법적·제도적 보완책 마련 절실
재계 및 학계에서는 법적 공백과 느슨한 행정 규제가 이런 생떼 시위의 편법·불법 행태를 적절히 제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집회·시위의 자유는 존중하되 타인의 기본권이나 공익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집회와 시위의 경우 금지 및 제한 사항을 집시법에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지자체나 경찰의 행정조치도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법조계 관계자는 “기업에 책임이 없다고 판명 나거나 시위자가 잘못된 사실을 가지고 막무가내식 주장을 펼쳐도 신고된 집회·시위는 실질적으로 제한할 근거가 없다”며 “사법부의 판단을 받았음에도 이를 무시한 집회와 시위가 만연하고, 이로 인해 일반 시민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점에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일반 시민과 기업을 볼모로 한 불법 행위나 불법 시위 시설을 근절해야 타인의 권리를 지키는 성숙한 시위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21대 국회에는 20건 넘는 집시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대부분 집회·시위의 자유와 충돌되는 다른 기본권 간 균형점을 찾기 위한 취지를 담고 있다. 이 중에는 지나친 소음과 일상 침해 등 도를 넘는 집회·시위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장치를 보완하자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강현숙 기자
life77@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강현숙 기자입니다. 재계, 산업, 생활경제, 부동산, 생활문화 트렌드를 두루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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