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아파트 단지.[조영철 기자]
최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재지정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불만의 목소리다. 서울시는 4월 5일 제5차 도시계획위원회를 열고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지구 24개 단지 △양천구 목동 택지개발지구 14개 단지 △영등포구 여의도동 아파트지구 및 인근 16개 단지 △성동구 성수전략정비구역(1~4구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재지정했다. 4월 26일 만료 예정이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 내년 4월 26일로 1년 연장된 것이다. 섣불리 규제를 풀었다가 집값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게 서울시 판단이다. 최근 안전진단 기준 허들이 낮아지는 등 규제 완화 기대감이 높아진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들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투기 차단” vs “재산권 침해”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조영철 기자]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사실상 ‘주택거래허가구역’ 제도로 전용됐다고 평가하나.
“그렇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제도는 말 그대로 토지, 특히 농지를 대상으로 하는 규제다. 가령 본래 농지였던 곳을 신도시나 대규모 택지로 개발할 때 투기를 막겠다는 취지다. 당장 가시화된 대규모 개발 계획으로 지목(地目)이 바뀌면 토지 가치가 급등하기 때문이다. 이 제도를 서울 같은 도심에 적용하자 큰 부작용이 생겼다. 아파트를 사고팔 때 건물뿐 아니라 대지지분도 함께 거래하는 것 아닌가. 그런 점에서 사실상 아파트, 상가 같은 건물 거래에 대한 규제로 자리 잡은 것이다.”
어떤 부작용이 있나.
“주택이나 상가를 거주 또는 영업 목적이 아닌, 전월세 수입을 위한 투자 차원에서 살 수도 있다. 미래가치가 상승할 지역 아파트를 일단 갭투자 방식으로 산 다음 나중에 거주하려는 이도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곳에선 이 같은 매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매도 희망자도 실거주 요건을 충족하고 공실일 때만 팔 수 있게 된다. 아파트를 사고파는 데 제약이 생기니, 의도치 않게 일시적 2주택자가 돼 무거운 세금을 떠안는 등 피해도 적잖다. 본래 토지 거래 규제를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다 보니, 생애주기에 따른 사람의 주거 조건 변화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은 물론, 각종 세법과 비교해도 예외로 허용되는 범위가 좁아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여지가 크다.”
재지정된 곳 주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현장 반응은 당연히 살벌하다. 특히 이번에 재지정된 곳들은 동(洞) 같은 행정구역이 아니라, 특정 아파트 단지를 콕 집어 규제한 모양새라 반발이 더 크다. 일각에선 서울 주요 지역과 형평성 논란도 제기된다. ‘한남동, 반포동처럼 신고가를 경신하는 곳들도 있는데 왜 우리 지역만 규제하느냐’는 것이다. 3월 서울시가 발표한 ‘한강르네상스 2.0’ 사업으로 한강변은 사실상 대부분 호재를 맞았다. ‘2040 도시기본계획’에 따라 한강변 재건축·재개발을 통한 초고층 아파트 건설도 가시화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 같은 개발 수혜지를 모두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지는 않는다.”
“시장 왜곡으로 매물 잠김 속 신고가 경신”
서울 성동구 성수전략정비구역.[[홍중식 기자]
집값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볼 수 있지 않나.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해제된 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이들 지역은 원래 수요가 많고 가치가 높음에도 각종 규제로 시세가 억눌린 곳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엄청난 특혜나 호재로 보긴 어렵다. 주민의 재산권 행사를 막았던 것을 환원하는 조치로 봐야 하지 않을까.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 오히려 인근 지역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풍선효과’로 이어진다는 우려도 있다.”
풍선효과의 구체적 사례가 있다면.
“잠실 지역 사례를 살펴보자. 이 지역 대장 아파트 단지 5곳을 흔히 ‘엘리트레파’라고 한다. 각각 엘스, 리센츠, 트리지움, 레이크팰리스, 파크리오다. 앞선 4개 단지와 달리 파크리오는 잠실권으로 묶이지만 행정구역상 신천동이다. 잠실 스포츠·마이스(MICE) 복합 공간 개발 등 호재로 잠실동 아파트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자 ‘엘리트레’ 가격 상승세는 주춤했다. 반면 잠실동보다 가격대가 낮던 파크리오 거래가가 높아지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규제가 강화되면 매물 잠김이 일어나고, 이따금 거래 가능한 물건이 나오면 신고가를 경신한다. 부동산시장이 왜곡되지 않아야 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진다. 수요와 공급이 모두 억눌린 비정상적인 상황에선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김 소장은 이번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 배경과 향후 전망에 대해 “예단하긴 어렵지만,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울 정도의 ‘당근’ 정책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면서 “가령 해당 지역에 호재로 작용할 대규모 개발 계획 발표를 예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2040 도시기본계획, 한강르네상스 2.0 등 도시 개발의 큰 그림을 발표한 데 이어 세부 계획을 하나씩 내놓을 때인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곳 중심으로 새로운 개발 계획과 호재가 나올 공산이 크다”는 전망이다. 그는 여의도, 압구정동, 목동에 대한 재건축 추진 지원책, 성수전략정비구역에 대한 인프라 개발 호재 발표를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로 꼽았다.
자세히 설명해달라.
“여의도 시범아파트의 경우 지난해 말 최고 65층 높이 재건축을 뼈대로 한 신속통합기획안이 통과됐다. 인근 다른 단지들에 대해서도 건축심의 등 절차를 빠르게 통과시키는 방안이 나올 수 있다. 서울 재건축 대장주라고 할 압구정동에서도 비슷한 조치가 가능할 것이다. 목동은 지난해 11월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서 지구단위계획이 가결돼 후속 절차가 진행 중인데, 정비구역 지정에 대한 행정 지원 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다. 개인적 전망이긴 하나, 종상향 목소리가 큰 목동 1·2·3단지의 경우 한강과 비교적 가까운 만큼 초고층 재건축을 허용하는 조치 등이 나올 여지가 있다.”
“강변북로 지하화 등 개발 호재 발표 예상”
성수전략정비구역의 경우는 어떤가.“당장 예상할 수 있는 ‘당근’은 아파트 50층 건설 허용이다. 분명 호재이긴 하나, 최근 주민들 사이에선 50층 허용이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따라서 강변북로 지하화 발표와 그 구체적인 방안에 이목이 쏠린다. 당초 지난해 말 성수전략정비구역 50층 개발 및 강변북로 지하화에 대한 용역 보고서가 발표될 예정이었지만, 최근까지 이렇다 할 소식이 없다. 이 용역 보고서를 조만간 발표해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에 따른 불만을 잠재우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강변북로 지하화의 핵심은 어느 구간까지를 지하화할지 여부다. 성수전략정비구역 1지구 일부와 2지구까지 지하화하는 방안이 거론되는데, 당초 ‘트리마제’ 아파트 인근까지 지하화하는 구상도 있었다. 이처럼 강변북로 지하화 구간을 늘린다면 성수전략정비구역에는 상당한 호재가 될 것이다. 서울시가 이미 민간자본을 유치해 강변북로 가양대교~영동대교 구간 지하화 방안을 밝힌 만큼, 성수전략정비구역도 비슷한 방식의 사업 진행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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