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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과 관련 있는 필자라면 누구에게도 낯설지 않은 장면이기는 하다. 이 같은 주장의 전제는 의견 개진이 대부분 일종의 ‘사심’에서 비롯된다는 의심이다. 비판적 의견은 자주 필자가 기획사 등으로부터 받고 싶은 유무형의 이익을 제공받지 못했거나 ‘안티’이기 때문으로 치부된다. 그리고 안티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상당 부분 이 아티스트를 깎아내림으로써 필자가 지지하는 다른 아티스트에게 상대적 이익을 가져다주고 싶은 것으로 설명된다. 과도한 진영 논리가 아니기는 어렵다. 앞의 음악평론가는 어느 글 타래에서 서너 기획사의 예닐곱 아티스트를 편애하는 것으로 지목됐다. 보통 그 정도로 많은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려야 할 만큼 경쟁심을 느끼지 않을 법도 한데 말이다.
비평가로서 책임 의식 요구돼
타인의 작품에 비평적 시선을 드리우며 의견을 개진하는 이라면, 신랄한 반박의 가능성을 피해 가기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시대 대중적 필자라면 공격적인 비난과 조롱, 때로는 노골적인 인신공격까지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위험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 보통일 법하다. 또한 한 인간으로서 관심과 취향의 편중이 K팝 산업이라는 하나의 주제 안에서도 영역이나 아티스트에 따라 전문성과 이해도 차이로 드러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비평적 의견이 경제적 이득이나 비뚤어진 팬심 이외의 동인을 갖지 않으리라는 의심, 나아가 이를 의식하는 것이 대중문화 담론의 리터러시에 가깝게 취급되는 것은 분명 건강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인터넷 문화에서는 끝없이 진영을 나누고, 진영에 기반해 사고하며, 때로 다른 진영을 사칭하거나 교묘한 프레임을 짜는 등 여론 조작을 시도하는 행위가 일상화된 측면이 있다. K팝 문화 역시 이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그럴 때 그간 직군으로서 K팝 관련 필자들이 비평의 설득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는 진단도 결국 있을 수 있겠다.비평을 업으로 삼는 이가 “팬덤 무서워 글을 못 쓰겠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부정적 피드백을 피해 표피적 비평을 아무렇게나 일삼는 건 비평가로서 책임 방기다. 그렇다고 마타도어라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비평 대상을 의도적으로 안배하며 호평을 쏟아내거나 논점을 에두르는 것도 건강하지 못하다. 인터넷 문화와 팬덤 문화의 결합이 상수인 환경에서 비평가의 건강은 차치하고, 논의의 설득력을 제고하는 데 어떤 길이 있을까.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