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컨설팅그룹 ‘민’ 박성민 대표가 4월 18일 기자와 만나 현 정치권 상황을 이와 같이 진단했다. 30여 년 동안 한국 정치를 분석하고 선거 관련 컨설팅을 해온 그다. 현실에 기반한 조언을 내놓는 것이 익숙할 텐데 이날 박 대표는 ‘초현실적’이라는 표현을 빈번히 사용하며 정치권에 대한 조언을 아꼈다. 더 나아가 “윤석열 정부와 민주당에 주문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평가까지 내놓았다. 그만큼 현 정치 상황이 그간의 경험에 비춰볼 때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총선을 앞두고 이재명 체제와 김기현 체제가 모두 붕괴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단, 붕괴 동력은 외부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그의 예상이다.
“尹, 선거연합 거칠게 해체”
박 대표는 지난해 7월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30%대에 머물자 “역대 대통령은 선거연합을 스스로 해체하며 무너졌다”면서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와의 내홍, 이에 대한 윤 대통령의 대응을 지적한 바 있다. 당시 상황을 두고 “자신이 앉은 의자 다리를 스스로 톱으로 잘라내고 있는 셈”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박 대표가 보기에 이후 상황은 더 악화됐다. 이 전 대표를 잘라낸 윤 대통령이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안철수 의원, 나경원 전 의원 등에게 날을 세워 선거연합을 추가로 해체했다. 그의 비유에 빗대자면 자신이 앉은 의자 다리를 연거푸 잘라내고 있는 셈이다.왜 역대 정권들은 선거연합 해체라는 실수를 반복했을까.
“권력이 안정기에 들어서면 대통령은 ‘자기 힘으로 대통령이 됐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레 권력을 나눌 생각도 줄어든다.”
윤석열 정부는 선거연합 해체가 이례적으로 빠르게 이뤄졌는데.
“더 거칠게 해체하기도 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련한 인물들이라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등 핵심 정책을 추진한 후 선거연합을 해체했다. 윤 대통령은 그러지 못했는데, 정치 경험이 부족한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선거연합을 해체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을 것이라 본다. 두 번째는 권력 기반의 문제다. 정치 경험이 없다는 것은 권력 기반이 취약하다는 의미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국민의힘을 자기 당으로 만들고 싶었을 테고, 주변 사람들도 이를 부추겼을 것이다. 전당대회 당시 당에 오랜 기간 뿌리내렸던 나경원 전 의원이나 대선 당시 후보 단일화를 했던 안철수 의원 모두 함께할 명분이 있었다. 그런데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이 미는 후보를 냈다. 이 시점에서 조기 레임덕에 시달릴 가능성이 생겼다. 누가 고립시켰다기보다 스스로 고립을 자초했다.”
민주당은 집권 여당도 아닌데 왜 분열하고 있나.
“민주당은 초현실적 상황을 겪고 있다. 역사적으로 당대표가 이렇게 여러 혐의로 수사나 재판을 받는 경우는 없었다. 초유의 상황이 펼쳐지다 보니 문제 해결을 위한 리더십조차 보이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모두 리더십 위기를 맞은 상황이다.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양당 모두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여당과 야당이 모두 분열한 상태로 총선을 치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보나.
“가장 크다고 보지는 않는다. 2020년 총선처럼 거대 양당 지지자들이 결집해 투표장으로 나와 투표율이 치솟으면서 완벽한 진영 대결이 펼쳐질 가능성이 20%가량 된다고 본다. 다만 원심력이 작용하는 형세다 보니 과거 국민의당처럼 제3당이 생길 가능성이 40% 정도다. 마지막으로 1996년 총선처럼 여야가 모두 분열해 선거를 치를 가능성도 40%로 전망한다. 다만 선거가 1년 가까이 남은 만큼 불확실성은 있다.”
“與, 1996년 총선보다 질적으로 나빠”
양당이 모두 분열한 1996년 총선과 비교할 때 차이점은 없나.“당시는 보수 정당이 집권했을 때라는 점에서 윤석열 정부와 비슷하다. 여권에서 쫓겨난 김종필과 정계 복귀를 원했던 김대중이라는 두 인물이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 직전 지방선거에서 손을 잡기도 했다. 전두환·노태우 구속이라는 상황과 맞물려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은 1996년 총선에서 50석을 만들어냈다. 당시 자민련은 충청도와 TK(대구·경북)에서 지지를 받은 반면, 수도권에서는 거의 영향력이 없었다. 반대로 차기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내에서 분열이 나타난다면 수도권에서 타격이 클 수 있다. 그동안 지지해오던 중도층과 2030세대가 이탈한다는 의미라 타격이 있다.”
집권 여당 입장에서 1996년 총선보다 상황이 더 안 좋게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인가.
“1996년만 해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굉장히 인기가 있었다. 비록 지방선거에서 졌지만 3당 합당(민주자유당)을 해체하면서 신한국당이라는 개혁 정당을 만들었고, 괜찮은 인물들을 공천했다. 갈등을 빚었던 이회창 전 총리도 비례대표 1번으로 발탁해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게 했다. 오히려 이 같은 점 때문에 당시 여당은 굉장히 안정적이었다. 여당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은 오히려 민주정의당출신 기득권들이었다. 개혁파들이 남아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 여당에서 분열이 발생한다면 개혁파들이 나가는 형국이 펼쳐질 것이다. 대통령의 인기, 중도 및 개혁파의 이탈 등 질적으로 훨씬 좋지 않다.”
최근 윤 대통령 지지율이 20%에 접어들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를 원했을 것이다. 하나는 ‘문재인 정부가 했던 모든 정책을 정상화해라’, 즉 되돌려 놓으라는 요구다. 한미동맹 강화, 한일관계 개선 등 윤 대통령이 최근 하고 있는 일들이다. 다른 요구는 ‘정치적 태도를 문 전 대통령과 달리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내로남불’ 하지 말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사과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눈에 윤 대통령의 태도가 오히려 더 나빠 보이는 측면이 있다. 공정과 상식을 자신의 상징자본처럼 얘기했는데 윤 대통령이 이 가치들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수사권으로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라고 얘기했는데 정작 이준석 전 대표를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해 내쫓았다.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했는데 대통령과 당대표의 관계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대선 당시 지지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린 이유다.”
민주당은 총선까지 어떤 상황에 직면할까.
“친이재명계와 비이재명계가 ‘현실적으로 이재명 대표 체제로 총선을 치를 수밖에 없다’며 ‘똘똘 뭉치자’고 할 가능성은 5%밖에 안 될 것으로 보인다. 35% 정도는 선거가 다가오면서 이재명 대표 체제가 붕괴하는 경우다. 나머지는 이 대표가 끝까지 그만두지 않되 당이 분열하는 경우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재명 대표 체제가 유지될 가능성이 65%인 셈이다. 문제는 조국 사태 때부터 민주당이 취하는 전략이 굉장히 위험하다는 점이다. 정치인은 사법 리스크에 직면하면 두 가지 전쟁을 치러야 한다. 하나는 여론전이고, 다른 하나는 법원에서 전쟁이다. 민주당이 지금 취하는 방법은 후자를 정치적으로 돌파하려는 것이다. 전형적인 1980년대 운동권 방식이다. 수사기관의 수사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재판도 인정하지 않는 등 국가 사법시스템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 경우 (지지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재판부 형량이 올라간다는 리스크가 있다.”
민주당이 갖는 다른 리스크들은 무엇인가.
“민주당은 네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대통령과 의회 권력이 지금처럼 엇갈려 비토크라시(vetocracy: 거부민주주의)가 나타날 때 국민은 ‘그래도 대통령이 일할 수 있도록 해줘야 되지 않겠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둘째로 미·중 패권 전쟁과 북핵 위협, 중국의 대만 침공 우려 등 국제정치가 민주당의 전통적 노선에서 불리하게 펼쳐지고 있다. 셋째,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마지막은 169석 정당이라는 것 자체가 리스크다. 국회의원들과 지방선거에서 당선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마련해야 할 텐데, 야당이라 쉽지 않다.”
양당이 분열한다면 어떤 식으로 상황이 전개될까.
“내부 동력은 없어 보인다. 국민의힘은 과거 이준석 체제에서 당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충돌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런 모습이 없다. 물론 내부 동력이 없기는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이재명 대표 체제의 붕괴는 법원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한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다면 김기현 체제에 대한 변화 동력은 어디서 올까. 야당으로부터 오지 않을까. 예를 들어 이재명 대표 체제에 변화가 생기면 국민의힘이 지금 상태로 선거를 치를 수 있을까. ‘민주당이 비대위 체제로 가고 있는 만큼 우리 역시 그대로 선거를 치러선 안 된다’는 말이 나올 것이다.”
“양당, 반성 담긴 백서 만들지 않아”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다. 지난 대선이 역사상 가장 비호감 선거로 치러졌다. 두 후보 모두 반성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재명 대표가 0.73%p 차로 진 것은 윤 대통령이 반성해야 할 지점이지 민주당이 위로로 삼아야 할 출발점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왜 우리는 7%p 차로 이기지 못하고 0.73%p 차로밖에 이기지 못했느냐’는 반성이 담긴 백서를 만들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민주당 역시 ‘민주화 이후 모든 정권은 10년 만에 교체됐는데 왜 우리는 5년 만에 정권을 빼앗겼을까’에 대한 반성을 담은 백서를 만들지 않았다.”
사실상 재판부발(發)로 양당이 연쇄적으로 바뀌는 경우밖에 없다는 얘기인가.
“초현실적 상황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일반 상황에서의 진단이나 전망, 조언은 의미가 없다.”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최진렬 기자입니다. 산업계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45년 흘렀어도 현재진행형인 ‘12·12 사태’
비상계엄으로 명예·자존심 손상된 707특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