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산을 따라 이어진 굽이진 도로에서 쾌적한 주행감각을 즐기기 좋은 페라리 로마.[FMK 제공]
한 번 사는 인생
페라리 고향 이탈리아의 전성기는 1950년대와 1960년대다. 경제적 황금기로 꼽히는 시기로 사람들은 자유롭고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했고, 이탈리아 영화 같은 대중문화도 함께 발전했다. 이 당시 나온 말이 ‘달콤한 인생’이라는 뜻의 ‘라 돌체 비타(La Dolce Vita)’다. 개인 휴가를 즐기고, 자동차를 몰면서 여행하는 문화도 유행했다. 그러자 자동차 제조사들은 그랜드투어러(GT)로 불리는, 장거리 주행에 적합한 스포츠카를 만들기 시작했고, 고성능 차량에 여행의 품격을 더한 우아하고 섬세한 디자인이 결합됐다. 페라리도 이 시기 GT 차량을 생산했다. 1962년 선보인 250 GT 베를리네타 루쏘가 대표적이다. 고전적인 볼륨감과 정제된 스타일링은 페라리의 DNA에 남아 지금까지 이어지며 GT 차량에 로망을 가진 자동차광들을 달콤하게 유혹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단맛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만든 그랜드투어러가 바로 페라리 로마다. 페라리 프론트-미드십 엔진 GT 특유의 비율과 간결한 형태미, 페라리의 현대적인 날렵함을 품격 있는 미니멀리즘 디자인으로 완성했다.페라리 로마는 미래적인 도시와도 어울리지만, 풍요로운 자연환경과도 조화를 이룬다. 특히 바다와 산을 따라 이어지는 굽이진 도로에서 쾌적한 주행감각을 즐기기에 좋다. 비교적 편안한 승차감을 제공하고, 울퉁불퉁한 노면에서도 제법 부드럽게 승객을 모실 줄 아는 기능도 탑재됐다. 역동적인 주행능력 같은 기본기야 탁월하지만, 고즈넉한 풍경을 감상하며 여행을 만끽하려고 가속보다는 편안함에 주안점을 두고 시승을 즐겼다. 페라리의 엔진음을 느긋하게 들으면서 해안도로를 달리는 순간은 꽤 달콤했다.
산 너머 바다로
첫 번째 목적지는 정령치휴게소였다. 지리산 자락 고리봉과 만복대 사이 높은 지대에 위치해 전망 좋은 휴게소로 알려졌다. 가는 길은 쉽지 않지만 무척 즐겁다. 좁고 가파른 헤어핀 구간이 계속돼 페라리 슬로건처럼 ‘눈은 도로에, 손은 스티어링휠에’ 집중해야 한다. 빠른 속도로 급회전 구간을 통과하며 경사를 오를 때는 균형이 중요하다. 페라리 로마에는 최신식 사이드슬립 컨트롤 6.0이 탑재돼 자세 유지가 탁월하다. 오버스티어가 발생할 찰나에 차량 미끄러짐을 예측하는 정밀한 알고리즘이 차체의 균형을 바로잡는다. 운전자는 정확히 조향하면서 적절한 속도만 유지하면 된다. 운전이 간단하니 주행 즐거움은 커진다. 스티어링휠에 장착된 기어레버를 조작하며 저단에서 RPM을 높여 엔진 힘을 끌어내기도 했다. 한편, 기어레버는 페라리의 수동식 기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게이트 방식으로 손쉽게 확인하고 조작할 수 있는 각도로 제작됐다. 신나게 목적지에 올랐으나 안개 때문에 절경을 감상하진 못했다. 그 대신 하동으로 이동해 섬진강 벚꽃길을 달리는 호사를 누렸다.서행 구간에선 차량의 인포테인먼트를 살펴봤다. 운전석의 디지털 계기판은 16인치 HD 커브드 스크린으로, 기본 화면에선 중앙의 원형 엔진 회전계 좌우로 내비게이션과 오디오 화면, 차량 정보, 주행 정보 등이 표시된다. 스크린은 운전자 취향에 맞게 구성할 수 있다. 스티어링휠에는 손을 떼지 않고 차량의 모든 부분을 제어할 수 있는 멀티터치 컨트롤이 있다. 레버로 조작하는 주행모드, 헤드라이트와 와이퍼, 방향지시등 조작 버튼, 대시보드를 조작하는 햅틱 반응의 터치 패드, 음성 및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조작 버튼이 있다. 와이퍼와 방향지시등은 레버 방식보다 확실히 조작하기 편하다.
이튿날에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경이로운 풍경을 감상했다. 해안도로에서는 속도를 낼 필요가 없다. 정거장처럼 솟아오른 섬들의 자태와 파란 바다, 먼 배경의 뭉게구름을 감상하며 여유를 즐겼다. 그제야 페라리 로마의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듀얼 콕핏 콘셉트로 운전석과 보조석이 대칭 형태로 분리돼 있다. 보조석에도 디스플레이가 설치돼 마치 부조종사처럼 속도나 엔터테인먼트 같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운전석은 아늑하다. 프라우 풀 그레인 가죽과 알칸타라, 크롬 알루미늄, 카본 파이버 등 최고급 소재로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해안도로를 따라 한참을 이동하니 목적지인 거제도에 도착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노자산 정산에 올라 파노라마로 펼쳐진 한려수도의 환상적인 풍경을 넋 놓고 바라봤다.
숙소가 위치한 기장까지는 고속도로 주행이었다. 지루할 수도 있지만 직선 구간이 많아 가속 성능을 파악하기 적합했다. 페라리 로마에는 8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가 탑재됐다. 이전 GT 모델에 사용된 7단 변속기와 비교하면 20% 작고 6㎏ 가벼우며, 터보래그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게 가속이 이뤄진다. 한편, 파워트레인은 8기통 터보 엔진으로 강력하면서도 매우 효율적이다. 소프트웨어가 기어에 맞게 토크양을 조절하며 연비를 최적화하기 때문이다. 고단 기어에서 최대토크를 전달하는데, 고단 기어에서 상향된 기어비를 사용하면 연비와 배기가스가 줄어든다. 엔진의 최대 회전속도는 7500RPM이며 최고출력은 620마력, 최대토크는 77.5kgf·m를 발휘한다.
끝까지 밟아
도로가 한산해지자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순식간에 시속 100㎞를 돌파하며 빠르게 속도가 올라갔다. 불안하진 않았다. 잘 만든 스포츠카는 고속주행에서 안정감이 느껴지는데, 페라리 로마가 그렇다. 충분히 빠른 속도로 주행했지만 차량 떨림은 없었다. 오히려 차체가 무게중심을 낮춰 노면에 바싹 붙어 가는 듯했다. 고속주행에선 공기역학이 중요한데, 페라리 로마에는 다운포스를 만들어내는 가변형 리어 스포일러가 장착됐다. 평소에는 윈드스크린 안에 숨어 있다가, 고속주행 시 펼쳐지며 자동으로 높이와 각도를 조절한다. 강력한 다운포스가 자신감으로 이어졌다.더 달리고 싶었고, 내리기 싫었다. 하지만 너무 빨리 숙소에 도착하고 말았다. 좀 더 여유를 가질 걸 그랬나. 아니다. 언제 또 페라리를 타고 남해를 달릴 수 있겠나. 달콤한 인생이란 기회가 있을 때 즐기는 것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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