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어업협정서에 서명하는 권병현 전 대사(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최근 중국이 제주도 남쪽에 있는 이어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함에 따라 한중어업협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을 대표해 협정안에 서명했던 권 전 대사의 자격에 대한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외교통상부가 한나라당 홍문표 의원에게 제출한 ‘외교통상부 인사회보’에 따르면, 권 전 대사는 협정서에 서명하기 한 달 전인 7월8일 외교통상부 근무 명령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날 홍순영 씨가 신임 주중대사로 발탁됐다. 따라서 권 전 대사는 한국 정부를 대표할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한 상태에서 8월3일 협정안에 서명한 셈이다.
정부 대표 및 특별사절의 임명과 권한에 관한 법률 제10조는 ‘특명전권대사의 직명은 해임명령을 받는 즉시 상실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당시 권 전 대사는 주중대사직과 함께 한중어업협정 수석대표직도 겸하고 있었다. 대사는 국가 간 협정 체결에서 외교부 장관을 대신해 전권을 행사하게 되며, 대사직 해임과 동시에 수석대표로서의 임무도 상실된다. 권 전 대사가 수석대표 자격으로 한중어업협정에 서명하려면 수석대표 재위임을 받았어야 한다. 그러나 권 전 대사는 이 절차도 밟지 않았다.
국회 법사위의 한 전문위원은 “특명전권대사가 해임된 상태에서 정부 대표로 서명을 한 것은 법률을 위반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통일외무통상위의 한 조사관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외교부에선 비엔나 협약 관행
그러나 외교부의 시각은 다르다. 외교부는 “통상적으로 대사의 공백기 중에는 이임 예정 대사가 국제 관례(외교관계에 대한 비엔나 협약)에 따라 대사직을 연장한다”고 해명했다. 외교관들은 인사 후 한 달여 간 해당 업무를 인수인계한다. 외교부는 “이 과정은 비엔나 협약에 따라 관행적으로 인정받는다”라고 말했다. 관행에 따른 정당한 업무 수행이라는 설명이다.
외교부의 이런 해명에도 대사 자격을 상실한 권 전 대사의 한중어업협정 체결에 대한 논란은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권병현 전 대사의 해임 내용이 실린 ‘외교통상부 인사회보’.
한국 대표의 자격 논란에 대한 중국 측의 반응도 관심거리다. 한중어업협정에 대해 중국 측은 현재까지 별 불만이 없다. 그러나 협약 내용에 불만이 있다면, 이 부분을 문제삼을 소지가 충분하다는 게 법사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이와 관련해 법제처의 한 관계자는 “애매한 부분에 대한 법률 개정이 필요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외교부가 관행적으로 그렇게 해왔다면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상대국이 있고 국익이 걸린 문제라면 좀더 본질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는 왜 국가적 주요 현안을 앞두고 수석대표를 교체했을까.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국회가 권 전 대사를 국감장으로 부를 계획이다. 과연 진실이 밝혀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