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대가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열었던 논술 관련 간담회가 화제다. 생생한 목소리가 전달되고, 혹독한 고언도 나왔다. 이번 간담회는 대학교와 고등학교 현장이 소통하고 함께 고민하는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며, 현장에서 나온 지적이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 간담회에서는 다행히 합리적인 문제 제기가 많았지만, 논술에 대한 감정적 반발도 상당한 듯해서 그만큼 걱정도 크다. 변화는 불안을 낳고, 불안은 공격성을 키운다. 공교육에서는 논술 대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논술은 공교육을 왜곡한다는 주장이 이러한 반발의 중심에 있다.
논술에 대한 공교육 차원의 대비가 지금은 걸음마 수준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계속 이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억측이다. 그동안 공교육 관계자들이 힘을 합쳐 진지하게 논술교육에 접근해본 적이 있는가? 논술교육이 실시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일부 뜻있는 학교나 교사의 선구적 노력이 산발적으로 진행된 것 외에 정책 당국이 나서서 제도적으로 접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이 급격히 번지고 있다. 아직 부족한 수준이지만 교사 연수가 현격히 늘고 있고, 교사들의 의지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논술교육의 제1막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논술교육의 의의와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지금은 어렵게 트인 물꼬를 어떻게 확장시켜 나갈지를 고민할 때이지, 근거 없는 체념으로 길을 막고 있을 때가 아니다.
논술이 공교육을 왜곡한다는 주장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대학 입시는 고등학교에서 ‘현재 하고 있는 것’을 평가하지 않는다. 고교 교과과정에서 ‘하기로 되어 있는 것’, 그래서 ‘해야만 하는 것’을 과연 학생이 제대로 했는지 평가하는 것이다. 정상이라면 ‘해야 하는 것’과 ‘현재 하고 있는 것’의 차이는 크지 않으리라 본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현재 하고 있는 교육이 정상적이고 바람직하다면 지금 변화를 일으키는 논술은 분명 왜곡의 주범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교육이 해야 할 것, 또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책을 제대로 읽고 생각한 바를 글로 표현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은 고교 교과과정에 반드시 해야 할 것으로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교과서든 서너 장 넘길 때마다 생각한 뒤 써봐야 할 문제들이 제시돼 있다. 그러나 진도를 맞춘다는 명목 하에 이런 문제들이 무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유아·초등 때부터 논술 사교육이 ‘웬 말’
이런 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면, 논술에 문제점이 있다고 제기하는 것이 마땅하다. 대입 논술도 고교 교과과정에서 해야 할 수준 이상의 문제를 출제한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과연 진실이 어떠한지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논술이 공교육을 왜곡하는가, 아니면 왜곡된 공교육이 논술을 거부하는가.
정작 심각하게 우려되는 부작용은 초등 논술 사교육에서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유아 논술반도 생겼다고 하니, 이제는 ‘유아·초등 논술’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며, 이는 대한민국이 ‘논술공화국’이라는 느낌을 풍기게 만드는 주범이다. 어학교육에서나 통용되는 조기교육 개념을 논술교육에 제멋대로 적용하는 무모함과, 여유 있을 때 미리 시킨다는 적금들기식 교육방식에 이제 도전장을 내밀어야 한다.
전문가 관점에서 볼 때 논술은 조기교육을 통해 효과를 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어느 영화 제목을 패러디하자면 “유아·초등 논술은, 미친 짓이다”. 유아·초등 시절에 맞는 사고 훈련은 꼭 필요하지만, 그것이 논술의 형태여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그 시절에는 정서적인 글쓰기가 중요하다.
부모들에게 묻고 싶다. 아이를 느끼고 느낀 바를 따질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가, 아니면 느끼지는 못한 채 따지기만 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가.
논술에 대한 공교육 차원의 대비가 지금은 걸음마 수준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계속 이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억측이다. 그동안 공교육 관계자들이 힘을 합쳐 진지하게 논술교육에 접근해본 적이 있는가? 논술교육이 실시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일부 뜻있는 학교나 교사의 선구적 노력이 산발적으로 진행된 것 외에 정책 당국이 나서서 제도적으로 접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이 급격히 번지고 있다. 아직 부족한 수준이지만 교사 연수가 현격히 늘고 있고, 교사들의 의지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논술교육의 제1막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논술교육의 의의와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지금은 어렵게 트인 물꼬를 어떻게 확장시켜 나갈지를 고민할 때이지, 근거 없는 체념으로 길을 막고 있을 때가 아니다.
논술이 공교육을 왜곡한다는 주장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대학 입시는 고등학교에서 ‘현재 하고 있는 것’을 평가하지 않는다. 고교 교과과정에서 ‘하기로 되어 있는 것’, 그래서 ‘해야만 하는 것’을 과연 학생이 제대로 했는지 평가하는 것이다. 정상이라면 ‘해야 하는 것’과 ‘현재 하고 있는 것’의 차이는 크지 않으리라 본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현재 하고 있는 교육이 정상적이고 바람직하다면 지금 변화를 일으키는 논술은 분명 왜곡의 주범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교육이 해야 할 것, 또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책을 제대로 읽고 생각한 바를 글로 표현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은 고교 교과과정에 반드시 해야 할 것으로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교과서든 서너 장 넘길 때마다 생각한 뒤 써봐야 할 문제들이 제시돼 있다. 그러나 진도를 맞춘다는 명목 하에 이런 문제들이 무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유아·초등 때부터 논술 사교육이 ‘웬 말’
이런 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면, 논술에 문제점이 있다고 제기하는 것이 마땅하다. 대입 논술도 고교 교과과정에서 해야 할 수준 이상의 문제를 출제한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과연 진실이 어떠한지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논술이 공교육을 왜곡하는가, 아니면 왜곡된 공교육이 논술을 거부하는가.
정작 심각하게 우려되는 부작용은 초등 논술 사교육에서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유아 논술반도 생겼다고 하니, 이제는 ‘유아·초등 논술’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며, 이는 대한민국이 ‘논술공화국’이라는 느낌을 풍기게 만드는 주범이다. 어학교육에서나 통용되는 조기교육 개념을 논술교육에 제멋대로 적용하는 무모함과, 여유 있을 때 미리 시킨다는 적금들기식 교육방식에 이제 도전장을 내밀어야 한다.
전문가 관점에서 볼 때 논술은 조기교육을 통해 효과를 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어느 영화 제목을 패러디하자면 “유아·초등 논술은, 미친 짓이다”. 유아·초등 시절에 맞는 사고 훈련은 꼭 필요하지만, 그것이 논술의 형태여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그 시절에는 정서적인 글쓰기가 중요하다.
부모들에게 묻고 싶다. 아이를 느끼고 느낀 바를 따질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가, 아니면 느끼지는 못한 채 따지기만 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