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강이 잘된 부위의 쇠고기.
‘상강’이 맛있는 쇠고기의 조건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육식문화가 발달한 서양에서는 상강을 그리 높이 치지 않는다. 반면 일본은 상강육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생각 없이 일본 음식문화를 좇은 결과가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과연 상강육이 맛있는 쇠고기일까?
같은 음식을 내는 식당들을 거의 동시에 취재해 비교하는 일이 간혹 있다. 한번은 같은 스타일의 고깃집을 10분 간격으로 가서 맛보기도 했다. 서울에서 등심 주물럭으로 꽤 이름난 집들인데, 두 집 음식을 연이어 먹어보니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단 두 집 다 숙성 쇠고기를 쓴다는 점은 같았다. 빛깔로 보아 일주일 정도 숙성시킨 듯했다. 쇠고기는 싱싱할수록 맛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 정도도 고기를 잘 아는 식당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맛 차이는 상상외로 컸다.
일정 기간 숙성하면 ‘붉은 고기 감칠맛’ 더 풍부
먼저 ㄱ집. 이 집 등심은 고기 질이 한결같지 않았다. 어떤 것은 곱게 상강이 되었으며, 어떤 것은 기름이 전혀 없어 목살이 아닌가 싶었다. 등심도 세부 부위에 따라 상강도가 달랐다. 그런데 상강된 고기든 상강되지 않은 고기든 다 맛있었다. 오히려 기름이 적은 고기가 감칠맛이 더 났다. 상강육이 부드럽다는 장점은 숙성육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기름 없는 고기도 충분히 숙성시키면 그만큼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름이 고기 맛을 방해하기도 했는데, 기름은 고소한 맛만 내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느끼함을 내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상강육의 미감이 떨어졌다.
다음은 ㄴ집. 이 집 등심은 겉보기에는 최상의 것이었다. 유백색의 기름이 붉은 살 사이에 촘촘히 박혀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돌았다. 고기 질도 한결같아 ㄱ집보다 나았다. 그러나 숯불에 구운 고기를 한 점 먹고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소해야 할 기름은 느끼함만 주었고, 붉은 고기 맛은 맹탕에 가까웠다.
독자 여러분도 ㄴ집 같은 상강육을 먹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겉보기에는 맛있을 것 같은데, 실상은 영 아닌 경우 말이다. 그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그 이유를 알아보기 전에 먼저 우리의 입맛에 대해 점검해보자. 상강육을 구우면 고소한 냄새부터 난다. 기름이 불길에 타면서 입에 침이 절로 고인다. 또 기름이 많다 보니 부드럽다. 고소하면서 부드러운 맛! 이게 상강육의 맛이다. 그러니까 지금 한국에서의 쇠고기 선호도는 부드러움과 고소함에 치중되어 있고, 따라서 상강이 잘된 고기가 최고의 고기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쇠고기 맛에는 고소함과 부드러움밖에 없을까? 내 경험으로는 진짜 쇠고기 맛은 ‘붉은 고기의 감칠맛’에 있다. 이 맛은 싱싱한 쇠고기보다 일정 기간 숙성한 고기에서 더 풍부하게 느껴진다. 쇠고기를 0℃ 전후에서 보관하면 카텝신이라는 자체 효소의 작용으로 육질이 부드러워지고 새로운 맛을 더하는데, 이를 숙성이라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숙성육을 파는 정육점이나 식당은 거의 없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소비자들의 기호 탓이 가장 크다. 싱싱함과 고소함, 부드러움을 쇠고기 맛의 ‘기본’으로 여기는 까닭에 숙성육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소 한 마리에서 나오는 상강육의 양은 매우 적다. 운동량이 많은 부위일수록 기름이 적은데, 상강육은 운동량이 거의 없는 안심이나 등심 같은 부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상강육이 비싸게 팔리니 축산농민들은 상강도를 높이기 위해 소에 별별 사육방법을 다 동원한다. 고단백에 고지방 사료를 먹이는 것은 물론이고, 맥주를 먹이고 마사지까지 시킨다. 인공적으로 다른 부위에도 기름이 끼게 하여 상강육을 얻는 것이다. 이런 소가 과연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육식을 선호하는 서양인들은 우리와 달리 기름이 거의 없는 붉은 고기의 맛을 즐긴다. 그들과 우리의 입맛 차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잘못 길들여진 미각으로 인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쇠고기 맛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 그 왜곡된 미각으로 인해 건강하지 못한 소를 키우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