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실험을 계기로 한반도를 둘러싼 남북한과 미·중의 물밑 계산은 한층 복잡해졌다. 아래는 10월13일 정상회담을 가진 노무현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위는 김정일 위원장(왼쪽)과 부시 미 대통령.
중국 외교부는 특정 사안에 대해 사전에 정해진 표현 외에는 절대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기관이 이번 북한 핵실험에 대해선 이례적으로 ‘비외교적’ 표현을 써가면서 비난했다. 더욱이 중국 외교부의 성명은 한국과 일본의 성명 발표보다도 신속했다. 아무리 북한이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해도, 전통적으로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라던 북한과 중국 사이에 무슨 일이 있지 않고서야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10월10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김영삼, 전두환 전 대통령(맨 왼쪽부터)을 초청해 북한 핵실험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중국 첩자들 북한서 김 위원장 안가 등 탐문하다 추방
그러면 북-중 관계는 어떤가. 그 배경을 파악하려면 최근 양국 관계의 전반적인 흐름을 일별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10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을 방문하고, 올해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양국 관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 밝았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후 주석을 만난 뒤 “북-중 간 우의를 발전시키는 일을 변함없는 전략 방침으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고, 두 달 뒤에는 중국 경제의 개혁개방 모델인 남부 광둥성 일대를 시찰했다. 중국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동해에 면한 나선항의 장기 항만사용권을 획득했고, 상당한 액수의 광산 투자계약을 여러 건 체결했으며, 북한 해저유전 개발에 참여하기로 합의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북한에 접근했다.
문제는 올해 2, 3월에 터졌다. 양국 사이에 이른바 ‘2, 3월 사건’이라고 불리는 대규모 스파이 축출사건이 벌어진 것. 북한과 중국의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정보통의 설명이다.
“중국은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한 직후 북한 내부의 첩보활동을 강화했다. 중국의 북한 내 정보망은 장쩌민(姜澤民) 전 주석 시절이던 2003년에 대거 축출된 뒤 아직 복원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후진타오 정부가 이를 복구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중국 첩자들은 북한 내 핵 및 군사시설, 전국에 산재한 김 위원장의 안가(安家) 등을 탐문했는데, 무엇보다 안가에 대한 탐문이 북한 당국을 자극했다. 북한은 중국 첩자들을 모두 추방한 뒤 중국인 입국자에 대해 비자 발급 심사를 한층 강화했으며, 중국도 상호주의에 따라 북한인의 중국 입국을 엄하게 단속하기 시작했다.”
7월에 와서야 겨우 진정된 양국 간 ‘비자 분쟁’의 발단이 바로 2, 3월에 있었던 스파이 추방 소동이었다는 것. 이후 양측은 ‘공무’ 이외의 방문일 경우 비자면제 등 모든 특혜를 폐지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국 심사 강화 이어 접경지서 중국 군사훈련으로 北 또 자극
‘2, 3월 사건’으로 북한 지도부는 중국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고 이 정보통은 덧붙였다. 장쩌민 주석 시절 중국은 ‘북한이 개혁개방을 단행할 경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터였다. 올해 1월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후 주석에게서 이 약속을 다시 확인받기 위한 의도도 있었던 것(‘주간동아’ 2006년 1월31일자 521호 참조). 그런 중국이 김 위원장의 안가까지 뒤지고 다니자 북한 내에선 ‘후진타오는 도저히 믿지 못할 상대’라는 인식이 확산됐다고 한다.
중국이 7월1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을 비난하는 유엔안보리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양국 관계를 한층 더 악화시켰다. 김 위원장은 미사일 발사 직후인 7월10일 북한을 방문한 후이량위(胡良玉)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 일행을 만나지도 않았다.
이때부터 중국 측에서 북한에 대한 강경 발언이 잇따라 나오기 시작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실험적인 프로세스까지 포함해 반대한다. 그 같은 행동에 나서면 협력할 수 없다”고 한 추이텐카이(崔天凱)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의 발언(8월23일, 일본 ‘지지통신’ 보도)이 단적인 예다. 추이 부장조리는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에 대해서도 “북한이 룰을 위반했다. 국제금융의 틀에 맞춰 북한이 활동할 수 있게 되려면 시간이 걸린다”라고 밝혔다. 이는 중국 고위 관리가 금융제재의 불법성을 인정한 최초의 발언이었다.
슝광카이(熊光楷) 전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도 일본 자민당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지하 핵실험에 대해 “북한이 그러한 폭거를 감행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며 이례적으로 강경한 어조로 밝혔다(9월2일, 일본 ‘마이니치신문’ 보도). 현재 군 학술기관인 중국국제전략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의 발언은 전체 중국군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7, 8월에 있었던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군구의 기동훈련도 북한의 심기를 극도로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7월 중순 인민해방군 선양군구의 제16집단군은 투먼·룽징·훈춘 등 북-중 접경지대에 2000명 규모의 부대를 증파했다. 7월 말에는 백두산 일대에서 대규모 미사일 훈련도 실시했는데, 인민해방군 기관지인 ‘해방군보’는 이에 대해 ‘공격훈련’이라고 못 박아 보도했다. 그동안 국내 전문가들 사이엔 이 같은 중국군의 접경지대 훈련에 대해 ‘북한의 대규모 난민 유입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소극적인 분석이 많았다. 이에 반해 이를 ‘북 체제 붕괴 시 북한 진주(進駐)계획의 일환’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핵실험은 표면상으로는 미-일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대한 협박용, 내면적으론 갈수록 멀어져가는 중국에 대한 경고용이라는 이중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이 점에 대해선 일부 미국 측 전문가들의 시각도 일치한다. “북-중 갈등이 북-미 갈등보다 훨씬 더 크다”고 한 커트 캠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의 최근 발언이 단적인 예다. 그는 “북한이 핵무기를 1개 이상 갖고 있다면 중국을 겨냥하는 핵능력도 가질 것이며, 현재 북-중 관계는 신뢰상실(distrustful) 단계에 와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양측 사이에서 북-중 관계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8월 말부터 9월 초 사이에 수차례 제기됐던 김 위원장의 방중설이 그 예다. 당시 국내외 언론은 김 위원장의 특별열차가 신의주에 도착한 첩보 등을 근거로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예측했으며, 중국 외교부도 그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흘렸지만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한 정보전문가는 ‘대중(對中) 입장을 둘러싼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 가능성을 제기했다.
중국의 대북 비난 수위, 핵실험 직후보다 대폭 낮아져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이 얼마 전 평양에서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다. 그는 북-중 관계 회복을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뛰었던 인물이다. 올해 3월에는 10박 11일간 중국을 방문해 1월에 김 위원장이 답사했던 코스를 똑같이 밟은 일도 있다. 그런 인물이 대낮에, 석연치 않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점은 북한 권력층 내에 ‘중국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놓고 심각한 갈등이 있다는 징후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핵실험 후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도 평상심을 되찾아갔다. 류젠차오(劉建超) 외교부 대변인은 10월12일 “북한 징벌을 목적으로 삼아선 안 된다”고 대북 비난의 수위를 대폭 낮췄다. 핵실험 직후에 나왔던 폭언에 가까웠던 비난이 후진타오 정부의 ‘본심’이었다면, 그 후의 절제된 발언은 북한에 대한 장기적·전략적 포석을 계산한 다음에 나온 말들이다.
중국은 또 12일 탕자쉬안(唐家琁) 외교담당 국무위원(부총리급)을 워싱턴에 특사로 파견했다. 북-미 대립구도 사이에서 적극적인 중재자로 나서겠다는 몸짓이다. 관변 연구기관에 몸담고 있는 한 중국 전문가의 말이다.
“중국은 유엔안보리가 준비 중인 대북제재 결의안에서 일방적으로 미국 편을 들 수 없는 처지다. 그렇게 되면 중국이 갖고 있던 대북 영향력을 모두 상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북한을 계속 감싸고만 돌기도 어렵게 됐다. 결국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해 중국은 미국과 북한 양쪽에서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받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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