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가을·겨울 루이비통 ‘골드 미러 라인’(좌).골드를 소재로 한 국내외 패션브랜드 광고 비주얼(우).
2006 가을·겨울 펜디 컬렉션.
골드, 금은 곧바로 ‘부’와 ‘현금’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패션계에서는 일종의 ‘금기’였다. 지나치게 번쩍거리는 데다 반(反)지성적이며 부르주아적으로 보이는 탓이다. 아니, 어쩌면 골드의 속성이 돈을 좇는 패션 비즈니스의 내면을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몇 년 전 한국과 중국 등에서 ‘금테(금색 도금) 두른 냉장고’가 유행했을 때 디자인 관계자들은 “매우 한국적인 현상”이라며 노골적으로 경멸을 표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가방 장식에 진짜 18K 쓴 경우도
올해 봄.여름 신상품 쇼에서 입생로랑, 구찌, 바바리 프로섬 같은 브랜드가 골드 컬러의 아이템들을 내놓았을 때만 해도, 골드가 대중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가을.겨울 패션쇼의 캣워크는 태양보다 더 휘황찬란했다. 대부분의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뿐 아니라 국내 브랜드들까지 ‘골드 러시’ 행렬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2006 가을·겨울 펜디 컬렉션.
2006 가을·겨울 루이비통 ‘골드 미러 라인’.
“다른 분야에서도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것이 트렌드이듯 패션에서도 최고의 계층임을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듯해요. 소녀스러운 느낌이 강조되던 ‘순수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부와 여유가 중시되는 ‘사치의 시대’가 온 거죠.”
뉴욕에 진출한 국내 브랜드 오브제의 신지은 씨는 “직접적으로는 연예인 등 트렌드세터들의 ‘골드 루킹’이 일반 소비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덧붙인다.
‘타짜’ 시사회에서의 김혜수(위). <br>오브제의 2006 컬렉션(아래).
금빛 저지 브라우스와 체인목걸이 ‘강추’
의상의 경우 금색을 더한 디자인보다 전체를 금색 천으로 만든 반짝거리는 블라우스나 눈부신 트렌치코트가 더 잘 팔리고 있어 업체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다.
갤러리아 백화점 ‘G스트리트’의 김미정 씨는 “최상위 소비자들은 부를 과시하기 위해, 다른 소비자들은 부를 ‘위장’하기 위해 골드 컬러를 선호하는 듯하다. 몇 년째 계속되고 있는 복고 무드의 하이라이트다”라고 말한다.
‘골드 러시’가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경향을 담고 있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1970~80년대는 정치적으로는 보수화 성향을 띠고, 중산층이 성장했으며, 현란한 글램 록과 마돈나가 활동하던 시대다. 뉴욕에서는 ‘스튜디오 54’라는 나이트클럽에 당대의 예술가들이 모여 마리화나와 코카인에 취해 흥청망청댔다. ‘펜디’ 같은 브랜드는 아예 로마시대 말기의 데카당스, 과장된 장식에서 영감을 얻어오기도 했다. 80년대의 골드가 반(反)사회적, 반(反)지성적 일탈의 상징이었던 데 반해, 2006년의 골드는 상류 계층에 대한 뜨거운 선망을 반영하고 있다는 차이는 존재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하면 더 번쩍거릴 것인가뿐이다. 금색을 더욱 돋보이게 할 컬러와 소재, 아이템이라면 무엇이든 환영. 마돈나의 ‘금이빨’은 좀 무리겠지만, 금색을 빛나게 해주는 블랙 컬러, 금색을 반사하는 진주 주얼리, 황금색 여우털, 금색 구렁이 가죽 등이 모두 동반 상승 중이다.
디자이너들이 추천하는 골드 아이템은 어디서나 시선을 끌 수 있는 금빛 저지 블라우스와 황금빛 체인 목걸이. 황금빛 가을 들판을 보고 마음이 더욱 허전해진다면 말이다.
골드를 소재로 한 국내외 패션브랜드 광고 비주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