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구 아파트 단지. 뉴시스
옛말 된 “조물주 아래 건물주”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40대 이하 젊은 투자자가 부동산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투자자 중 30, 40대 비중이 2022년 45.0%에서 2024년 63.7%로 급증했고, 올해 3월 기준으로도 63.3%에 달한다. 특히 요즘 눈에 띄는 트렌드가 투자상품으로서 아파트 선호 강세다. 과거 ‘주거’ 목적이 강조되던 아파트에 ‘투자’ 관점으로 접근하는 이들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거주와 별개로 투자를 결정하는 빈도가 높아진 것이다.젊은 층의 아파트 시장 유입이 가속화하면서 꼬마빌딩 등 수익성 부동산시장도 큰 영향을 받고 있다. 필자가 최근 강남 지역 부동산공인중개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들도 시장 판도가 크게 변한 것을 체감한다고 한다. “최근 3년간 꼬마빌딩 거래가 크게 감소했다” “고액 자산가를 중심으로 강남 아파트로의 투자자 유입과 투자 결정이 빨라졌다”는 게 그들의 전언이다. 하나은행이 올해 4월 발표한 ‘2025 대한민국 웰스 리포트’에 따르면 응답자의 24.9%가 올해 매입 의향이 있는 부동산으로 아파트를 꼽아 꼬마빌딩(5.4%)의 4배 이상을 차지했다. 한때 “조물주 아래 건물주”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시장을 휩쓸었던 꼬마빌딩의 매력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반면 환금성이 높고 자산가치 상승 속도가 빠른 강남 아파트가 각광받고 있다.
젊은 시기에 자산을 많이 축적한 40대 이하 ‘영리치(young rich)’의 꼬마빌딩 기피 현상은 크게 4가지 원인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꼬마빌딩이나 상가는 임대차계약 관리와 시설 유지·보수, 임차인 민원 처리 등 손이 많이 가는 투자다. 30, 40대는 직장과 가정 생활을 병행하는 세대다. 임차인 관리나 건물 유지·보수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기 어렵다. 반면 아파트는 관리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관리비에 포함된 공동관리 시스템이 있어 개인이 직접 관리할 필요가 적다.
상업용 부동산의 공실 우려도 간과할 수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오피스 시장의 불확실성이 증가한 데다, 실물경기가 위축된 상황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국 평균 공실률은 중대형 상가 13.0%, 오피스 8.9%, 소규모 상가 6.7%였다. 이와 달리 주거용 아파트는 필수재 성격이 강해 공실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다.
꼬마상가의 낮은 환금성과 높은 투자 난도도 걸림돌이다. 빌딩의 경우 실거래가를 분석할 수는 있지만 임대료나 자산에 따라 대출 활용도에 차이가 발생한다. 게다가 매각도 쉽지 않아 다른 자산에 대한 투자 시기를 놓칠 수 있다. 반대로 아파트는 상업용 부동산에 비해 유동성이 크고 매매가 용이하다. 게다가 표준화된 상품이라서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은 물론, 다양한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시세 조회를 하기가 쉽다. 데이터에 친숙한 30, 40대는 이 같은 높은 정보 접근성을 통해 분석적으로 투자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끝으로 꼬마빌딩과 아파트 투자에 필요한 자본 규모 및 금융 레버리지 접근성에도 차이가 있다. 꼬마빌딩을 비롯한 상업용 부동산은 대개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대 자본이 필요하다. 아파트는 이보다 적은 자본으로 투자가 가능한 데다, 생애 첫 주택 구입에 적용되는 각종 대출 혜택과 금융 레버리지도 활용할 수 있다. 하나은행에 따르면 30, 40대 아파트 투자자의 69.3%가 주택담보대출을 활용했으며 평균 담보인정율(LTV)은 42.8%로 나타났다. 이들 세대가 부동산 투자 시 금융 레버리지를 적극 활용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뉴시스
반포 아파트에 영리치 몰린다
40대 이하 젊은 층이 부동산 투자를 아파트에 집중하면서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갭투자로 지방이나 외곽의 저렴한 아파트를 여러 채 매입하기보다 좋은 입지의 신축 아파트 한 채에 투자하는 것이 절세나 투자가치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젊은 투자자가 선호하는 부동산 입지는 일자리와 가깝고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서울 강남 3구다. 현장에서 부유층의 자산을 관리하는 프라이빗뱅커(PB)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40대 이하는 특히 반포동을 선호한다고 한다. 반포 래미안원베일리 국민주택평형이 60억 원 이상에 거래되고 호가도 70억 원에 육박하는 이유는 ‘반포동에 위치한 신축 대단지’에 영리치의 투자심리가 집중됐기 때문이다.이 같은 40대 이하 세대의 투자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향후 부동산시장에 나타날 변화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나은행의 ‘2025 대한민국 웰스 리포트’에 따르면 영리치는 “충분히 공부한 뒤 투자를 시작한다”고 응답한 비율(45%)이 올드리치(old rich·39%)보다 높고, “일단 투자를 시작하면 수익률을 자주 확인하고 상황에 빠르게 대처한다”는 비율(30%)도 올드리치(25%)에 비해 높았다. 특히 “가능성이 있다면 대출을 통해서라도 투자금을 마련한다”는 영리치가 21%에 달해 올드리치(5%)의 4배에 달했다. 레버리지를 크게 활용해서라도 투자하려는 의지가 강한 것이다.
또한 영리치의 투자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금융사 PB(50%)이긴 했지만 올드리치가 의지하는 정도(71%)에 비하면 적었다. 그 대신 젊은 투자자는 온라인 커뮤니티·모임(47%)을 통해 투자 지식을 공유하거나 유료 서비스에 가입(7%)해 ‘차별적 정보’를 얻는 활동 빈도가 올드리치에 비해 3~4배 많았다. 금융기관뿐 아니라 다양한 정보원과 적극 소통하고 정보 획득을 위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본인의 투자 결정에 확신을 가지려는 것이다. 앞으로 부동산시장 큰손은 소수의 거대 자산가가 아니라 40대 이하 ‘젊은 군단’이 될 것이다. 시장에서 젊은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