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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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건네는 문화예술의 의미

정신적 사치나 단순한 장식 아닌, 삶의 근본적 동력

  • 김재준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입력2025-04-28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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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주인공 애순(아이유 분)의 자작시 ‘검은치마’.  디자이너 장병규 제공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주인공 애순(아이유 분)의 자작시 ‘검은치마’.  디자이너 장병규 제공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사람들은 독서를 한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우리 사회에서 문화예술이 갖는 복합적 의미를 잘 보여준다. 이 드라마 속 인물인 애순, 애순의 어머니, 양관식, 부상길과 그의 처, 금명, 은명, 그리고 ‘피카소’라는 별명을 가진 영화간판 화가 박충섭의 삶을 통해 우리는 문화예술이 단순한 장식이 아닌, 삶의 근본적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한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문화예술은 삶의 수단인가, 아니면 목적인가. 이 질문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 한국인에게 의미가 있다. 

    애순의 시는 삶을 지탱하는 목적

    드라마 속 애순에게 시는 단순한 취미나 직업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근본적인 목적이었다. 가난한 시절 시는 그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지는 못했지만 정신적 지주였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경험하는 딜레마와 맞닿아 있다. 안정적인 수입을 위해 자신의 진정한 열정을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면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추구해야 하는가. 

    누군가에게 시는 생계 수단일 수 있지만, 시인에게 시는 삶 자체의 목적이 된다. 이는 단지 예술가에게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모든 직업,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수단으로서 일’과 ‘목적으로서 일’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일은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진정한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양관식은 드라마 초반에는 예술과 거리가 멀었지만, 나중에 기타를 배우면서 음악의 세계로 입문한다. 그의 여정은 많은 한국인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학업과 직장 생활에 모든 에너지를 쏟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삶에 무언가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경험은 결코 낯설지 않다. 

    기타를 배우는 양관식의 모습은 예술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접근하고 즐길 수 있는 영역임을 상기케 한다. 또한 예술적 활동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새로운 사고방식과 문제해결 능력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부상길의 아내는 어느 날 춤을 배운다. 이 선택은 단순한 여흥이 아니었다. 억압적 환경으로부터 도피하고자 사교댄스를 선택한 것이다. 춤은 그 시대 질서로 보자면 ‘미풍양속을 해치는 행위’였지만, 그에게는 온몸으로 시대를 밀어내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모든 분야에서 국민 생활을 통제하려는 당시의 체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작은 반항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한국인은 원래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던 민족이었다. 이것이 한류의 뿌리라고 볼 수 있다. ‘피카소’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영화간판 화가 박충섭. 그는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의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의 작업은 분명 상업적 목적을 갖지만, 그 속에 담긴 창의성과 예술성은 단순한 광고물을 넘어선 가치를 지닌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문화산업과 창조경제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박충섭이 단순히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적 정체성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드라파 ‘폭싹 속았수다’에 등장하는 해녀들.  넷플릭스 제공

    드라파 ‘폭싹 속았수다’에 등장하는 해녀들.  넷플릭스 제공

    예술은 경제의 뿌리다

    애순의 어머니는 해녀였다. 바다라는 이름의 일터, 그리고 삶터. 그는 깊고 차가운 물속에서 매일을 일구었다. 반면 현대의 스쿠버다이버는 취미와 기술의 산물이다. 전통과 현대, 생존과 여가가 같은 물속에서 교차한다. 이 만남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전통과 기술, 노동과 삶의 질 사이에서 우리는 균형을 모색한다. 전통은 과거가 아니라, 다른 형태로 현재에 스며드는 미래다.

    문화예술은 결코 정신적 사치가 아니다. 디자인, 건축, 공연, 관광, 인문학 등 이 모든 것은 창조산업으로 연결돼 막대한 경제적 파급력을 낳는다. 문화는 단지 ‘더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존 산업을 다시 짜고, 감성과 이야기를 입혀 경쟁력을 만든다. 자동차의 곡선, 스마트폰의 아이콘 하나에서도 예술은 살아 숨 쉰다.

    창의적 감수성은 오늘날 모든 분야에서 필수 역량이 됐다. 기술과 기능만으로는 부족하다. 감성, 상상력, 공감 등 모든 것이 산업의 새로운 엔진이 된다.

    이는 모든 직종의 노동자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기술적 전문성만으로는 미래 산업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울뿐더러, 갈수록 창의적 사고와 문화적 감수성이 결합된 복합적 역량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경제발전 초기 단계에서는 “먼저 배를 채우고 예술을 논하자”는 접근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기본적인 생존 욕구가 충족돼야 예술적 욕구가 꽃필 수 있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경제가 일정 수준에 도달한 후에는 이 관계가 역전된다. 문화예술 발전이 오히려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K팝, K-드라마, K-영화로 대표되는 한류 콘텐츠가 한국의 글로벌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관련 산업의 수출을 촉진하는 현상이 이를 증명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이 질문이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리고 대답은 어쩌면 바다처럼 깊고 조용히 이렇게 들릴 것이다. “나는 예술처럼 살고 싶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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