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마르크스 관련 전기영화를 만들려는 시도는 욕심은 나지만 어쩌면 엄두가 나지 않을 작업일 테다. 방대한 이론과 실천, 추방과 망명으로 점철된, 굴곡진 65년간(1818~1883) 삶을 한 편의 극영화에 담는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옛 소련의 거장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이 볼셰비키 혁명 10주년(1927)을 맞아 ‘자본론’이라는 가제로 그의 철학을 다루고자 했지만 결국 완성에 이르지 못했다. 설령 만들었다 한들, 얼마나 많은 비판에 시달렸을 것인가. 이때까지 마르크스를 다룬 제대로 된 극영화가 한 편도 없었다는 게 이런 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아이티 출신인 라울 펙 감독의 ‘청년 마르크스’는 마르크스 관련 전기영화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펙 감독은 ‘지혜롭게도’ 거대한 인물로서 마르크스보다 독단과 열정이 넘치는 ‘약점 많은’ 청년 마르크스의 삶에 집중한다. 마르크스의 나이 25세부터 30세까지다. 즉 평생 동지인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만난 때부터 1848년 ‘공산당 선언’을 공동집필할 때까지를 다룬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이 나오고 한 달 뒤 유럽에선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 부르는 ‘2월 혁명’이 일어난다. ‘청년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두 사내의 브로맨스라 해도 좋을 만큼, 만남부터 2월 혁명 때까지 두 캐릭터 간 긴밀한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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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독일과 영국에 방직공장을 다수 소유한 자본가의 아들 엥겔스(슈테판 코나르슈케 분)는 귀족적인 분위기까지 풍기는 총기 있는 청년이다. 그는 공장노동자 메리 번스(해나 스틸 분)와 자유연애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프로이센 귀족의 딸과 결혼한 마르크스는 일상의 짐에 짓눌린 듯 어두워 보이는 반면, 노동자 파트너와 연인관계를 이어가는 자본가의 아들 엥겔스는 여유로운 삶을 즐긴다. ‘청년 마르크스’는 이처럼 계급과 성격마저 다른 두 청년이 서로의 지성에 반해 우정을 나누고, 죽음의 공포와 맞서며 공산주의 기치를 들어 올릴 때까지를 다룬다.
‘청년 마르크스’도 철학적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이를테면 두 사람보다 선배 사회주의자인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을 ‘순진하다’고 폄훼하는 내용이라든가, 역사를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갈등으로만 규정하려는 태도는 오늘날 현실에선 시대착오적이란 소리를 듣기에 딱이다. 하지만 이런 약점을 넘어서는 부분이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두 청년의 열정에 대한 표현일 테다. 이때까지 없던, 새로운 사유를 빚으려는 두 청년의 투지와 끈기가 영화관 공기를 뜨겁게 달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