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 ㈜판씨네마]
흑백으로 촬영된 ‘로마’는 쿠아론 감독의 고향인 1970년 멕시코시티가 배경이다. 제목은 멕시코시티 어느 구역의 이름이다. 그해는 멕시코에서 월드컵이 개최되고 국가가 세계로 뻗어갔지만, 그 내부는 어땠는지를 한 하녀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하녀 클레오(얄리트사 아파리시오 분)와 안주인 소피아(마리나 데 타비라 분)의 삶이 대조된다. ‘로마’는 이 두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소피아의 남편은 의사인데, 최근 출장을 핑계로 자주 집을 비운다. 부부관계는 파국 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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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와 소피아의 삶은 인종과 계급으로 대조돼 있다. 하녀 클레오는 농촌 출신 원주민이다. 반면 소피아는 백인에 가깝고, 친척 중엔 미국인도 있다. 클레오와 그의 친척들이 멕시코 노래를 부를 때 소피아 친척들은 미국 노래를 듣고 미국인처럼 춤추면서 즐긴다.
백인처럼 보이는 멕시코인은 지주이거나 상층계급이고, 원주민은 그들의 소작인 또는 하녀인 셈이다. 클레오의 남자친구도 지방의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멕시코시티에서 안정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동양 무술을 연마한다(그의 무술사범 중에는 한국인도 있다). 그러나 그의 뒷주머니에 꽂힌 쌍절곤이 클로즈업될 때면 왠지 클레오의 미래까지 불안해진다.
주인과 하녀, 계급과 인종이 다른 두 여성이 서로에게 단절의 벽을 세우기보다 상대의 상처에 공감하는 게 ‘로마’의 미덕이다. 남성들은 자식을 키우는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거나, 심지어 출세를 위해 자식을 죽이는 폭력 집단에 충성한다. 반정부시위를 하는 학생을 때리고, 그들에게 총을 쏘는 장면은 ‘월드컵 멕시코’의 현실이 얼마나 척박했는지 한눈에 알게 한다.
버려지고 죽는 아이들을 보듬는 인물은 두 명의 여성이다. 이 점에선 주인과 하녀, 그리고 계급과 인종의 차이를 초월한다. 쿠아론 감독은 이런 희생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영화를 찍었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자식들을 보듬고 키우는 것 말이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 수상작.
※ ‘한창호의 시네+아트’는 연재를 끝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