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 ㈜트리플픽쳐스]
신라의 수도 경주를 배경으로 꿈과 현실의 흐릿한 경계를 다룬 영화 ‘경주’(2013)를 발표하며 장률은 대중적으로도 이름을 알린다. ‘경주’ 이전과 후로 나눌 만큼 장률의 영화는 큰 변화를 겪는다. 알려진 배우들이 출연했고, 무엇보다 ‘경주’ 이후 그의 영화에서는 공간이 주인공 위치에 놓인다. ‘군산 : 거위를 노래하다’는 전북 군산이 주인공이다. 이쯤 되면 장률의 영화는 한국에 대한 인문지리학적 탐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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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은 박해일 자신이 과거에 연기했던 ‘질투는 나의 힘’(박찬옥 감독·2002)의 청년처럼 선배 여성을 나이 많은 다른 남자에게 또 빼앗길 판이다. 이 집엔 자폐증을 앓는 딸(박소담 분)이 있는데, 어떤 손님과도 접촉을 피했던 그 딸이 윤영의 주위에 가끔 나타난다. 네 사람 사이의 관계가 뒤섞이는 것이다.
민박집은 과거 일본의 적산가옥이다. 그 일대는 한국 속 일본 같다. 알고 보니 주인집 부녀는 후쿠오카 출신의 재일동포다. 남자는 사고로 아내를 잃었고, 무슨 이유인지 딸은 자폐증을 앓는다. 이들 마음속 상처는 일본에서 차별받으며 사는 한국인에 대한 비유처럼 표현돼 있다. 한국에서 조선족이 종종 마음에 큰 상처를 입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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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는 세 한국인의 정체성이 만나고 있다. 중국의 한국인, 일본의 한국인, 그리고 여기의 한국인이다. 어딘가에선 차별 주체가 되고, 또 어딘가에선 객체가 되는 존재다. ‘군산’은 그런 겹겹의 모순을 비추는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