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가평군 경춘선 가평역 옛 역사 땅에 새로 들어선 ‘음악역 1939’(위)와 내부 스튜디오에 설치된 콘솔. [뉴시스]
경기 가평군, 수도권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이들이 한 번쯤은 가봤을 곳. 비슷한 추억을 공유했을 그곳을 12월 14일 찾았다. 내년 1월 1일 개장을 앞둔 ‘음악역 1939’ 개막식과 축하 공연을 보기 위해서다.
2010년 김현철이 ‘춘천 가는 기차’로 영원히 남겨놓은 경춘선은 사라졌다. 훨씬 빠른 기차가 도입되고 훨씬 안정적인 철도가 깔렸다. 이름만 경춘선 그대로일 뿐 모든 게 바뀌었다. 청량리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용산에서 ITX-청춘을 탔더니 기차는 50분이 되지 않아 가평역에 멈췄다.
가평역 옛 역사 대지에 세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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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바람 소리를 벗 삼아 20분가량을 걸었다. 옛 역사가 있던 곳으로. 이렇다 할 식당 하나 없는 거리를 걷다 보니 ‘아, 저기구나’ 싶은 곳이 나왔다. 허름한 건물 사이로 멋진 건물 하나가 보였다. 건물 주변에는 막 단장을 끝낸 거리가 공원처럼 조성돼 있었다.
음악역 1939는 2014년 경기도 창조오디션 공모에서 대상을 수상한 ‘가평뮤직빌리지 프로젝트’의 결실로, 문을 닫은 가평역 대지 3만7257㎡에 400억 원을 들여 조성됐다. 그 이름은 경춘선 가평역이 처음 문을 연 해에서 기인했다.
외관은 내부에 비하면 차라리 검소하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공연장, 극장, 스튜디오, 레지던스를 모두 갖춘 음악역 1939는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던 초특급 품질의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담을 수 있는 곳이다.
내년 ‘음악역 1939’를 운영하는 가평뮤직빌리지의 송홍섭 대표(왼쪽)와 12월 14일 축하 공연을 펼친 가수 장필순. [뉴시스]
공연장 및 스튜디오 설계는 영국 런던 ‘애비로드’ 등 세계 유명 녹음실 300개 이상을 설계한 샘 도요시마가 맡았다. 400석 규모 공연장의 층고는 약 3층 높이. 어떤 국내 스튜디오에서도 불가능한 공간감과 규모를 자랑한다.
공연장과 광케이블로 직결된 스튜디오에는 역시 애비로드에서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영국 니브(Neve)사의 88RS 콘솔이 설치됐다. 아날로그 콘솔로는 최고가인 9억 원이다. 국내에선 불가능한 녹음을 해외 A급 스튜디오 수준으로 담아낼 수 있다.
조금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예컨대 70인조 오케스트라가 실황 음반을 취입한다고 해보자. 이들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스튜디오가 국내에는 없다. 교회나 콘서트 홀 같은 장소를 빌려 녹음해야 한다. 녹음을 하려면 장비가 필요하다. 마이크만 해도 수십 대가 동원되고, 각각의 마이크 소리를 담을 수 있는 채널도 그만큼 있어야 한다. 이 정도 크기의 장비는 당연히 이동이 어렵다.
이런 어려움이 음악역 1939를 통해 해결된다.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가장 많이 쓰는 영역인 영화음악도 같은 이유로 종종 체코 등지에서 녹음되곤 한다.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조용필, 김동률 등 최상의 사운드를 위해 녹음실을 찾아다니는 이들도 수고를 덜 수 있게 됐다. 송 대표를 비롯해 가평뮤직빌리지 프로젝트를 위해 모인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인적 자산도 충분한 듯하다.
음악이 일상인 공간을 기대
언제나 중요한 건 시작보다 지속가능성이다. 한국의 웬만한 지방자치단체는 그럴싸한 공연장을 갖추고 있다. 그 많은 공연장 중 제대로 굴러가는 곳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고개가 저어진다. 화려한 개관 공연 이후 대부분 지역 주민의 노래자랑대회나 민방위 훈련 장소로 사용되는 게 현실이다. 음악역 1939도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물론 민간위탁으로 운영되고, 공연장뿐 아니라 스튜디오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안정적이다. 여기에 몇 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가평군은 대단한 음악 자원을 가진 곳이다. 2004년부터 시작된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가을을 대표하는 음악 축제가 됐다. 공연이 열리는 자라섬뿐 아니라 가평역 일대가 가을의 재즈를 즐기러 오는 이들로 가득하다. 덕분에 ‘멜로디 포레스트 캠프’ 같은 다른 페스티벌들도 열린다. 자라섬과 가평이 하나의 브랜드가 된 것이다.
그 기간에 음악역 1939 안팎에서도 행사와 연계된 공연을 하는 식으로 이 문화적 인프라와 충분히 연동이 가능할 것이다. 상영관 2개도 갖췄으니 작은 음악 영화제도 개최할 수 있다. 레지던스 시설을 활용한 워크숍이나, 음악인과 함께하는 캠프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이다.
프랑스에서는 매년 6월 21일 ‘페트 드 라 뮤지크(Fete de la Musique)’가 열린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이 음악축제는 프랑스 전역에서 지역 주민들이 각자 다룰 수 있는 악기로 시내와 마을에서 공연을 펼친다. 이 축제 참가차 프랑스를 찾았을 때 프랑스 국민에게서 ‘음악의 일상성’을 느꼈다.
음악역 1939에 바라는 것도 비슷하다. 어쩌다 한 번 전시성 행사를 치르는 것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 외부와 단절된 녹음 공간으로만 활용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음악으로 연결되는, 온라인에서는 불가능한 체험들을 통해 관련 콘텐츠들이 지속적으로 쌓이길 희망한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더라도 주말만 되면 기차에 몸을 싣고 가평역으로 향하는 날들이 음악역 1939에서 만들어질 수 있었으면 한다. 덜컹거리는 통일호를 타는 것만으로도 설레던 옛 청춘의 기억이 지금 청춘에게도 음악을 통해 전해질 수 있길 바란다. 춘천 가는 기차에 음악이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