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철 기자]
충남 홍성군 구항면에는 ‘검고 은은한 향’의 현미흑초를 전통방식 그대로 만드는 ‘흑초 고수’가 있다. 바로 정재춘(54·사진) ‘인양양초장’ 대표다. 사방으로 논과 밭이 펼쳐진 작은 시골길을 따라 양초장 입구에 들어서면 빨간색 양귀비꽃이 바람에 살랑이며 방문객을 유혹한다. 그 뒤로는 약 1984㎡(600평) 대지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 놓은 항아리 700여 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5월 햇살을 받으며 반짝반짝 빛나는 항아리들 사이로 정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날마다 항아리 닦는 게 일이에요. 하루만 안 닦아도 먼지가 쌓여서 흉하죠. 조만간 식초를 담그려면 항아리부터 깨끗하게 준비해둬야 해요.”
5월은 식초를 담그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인양양초장 현미흑초는 노지에서 발효시키기 때문에 너무 덥거나 춥지 않은 5월과 9월에만 식초를 담근다. 이는 인공적 요소는 철저히 배제한 채 오로지 자연에만 기대 식초를 만든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식초를 담은 항아리는 땅에 묻거나 발효실에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1년 내내 자연 상태에 두고 눈과 비와 바람을 맞게 한다. 그렇기에 인양양초장 현미흑초는 전통발효식초 중에서도 ‘자연 전통발효식초’로 불린다.
현미흑초 본고장인 일본 역시 노지에서 식초를 발효시킨다. 200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일본 가고시마현 ‘식초마을’은 수천 개의 식초 옹기가 마을을 상징하는 명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일본 흑초를 교과서 삼아 제2의 인생 설계
정 대표가 흑초로 제2의 인생을 살기로 마음먹은 것 40대 초반 때였다. 대기업 위탁급식업체에 다니던 그는 입사 초기만 해도 국내에 위탁급식 시스템이 전무하던 터라 일본 급식문화와 기술을 습득해오는 일을 도맡아 했다고 한다.그러느라 수시로 일본을 오가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낸 그는 마흔 살이 되던 해 과로와 스트레스로 간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덩달아 ‘사십춘기’(40대+사춘기)까지 찾아오면서 그의 인생은 또 다른 기로에 놓였다. 정 대표는 ‘회사가 아닌, 나를 위한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인생 이모작’ 준비에 돌입했다.
“귀농하기까지 5년가량 준비 과정을 거쳤어요.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평소 농촌에 대한 환상이 있었죠. 또 제조와 유통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렇다면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제조업이 뭘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한 가지 희망적이던 건 통계상 우리나라 농촌 산업은 그동안 단 한 번도 마이너스 성장을 한 적이 없다는 거였어요. 다른 산업군에 비해 성장률이 낮을 뿐, 꾸준히 성장해오고 있었던 거죠. 그렇다면 농사의 어려움은 무엇일까 고민해봤더니 두 가지 문제점이 도출되더군요. 농산물은 출하되는 시기가 정해져 있고, 부패되기도 쉽다는 점이었어요. 시기성을 극복하려면 다른 농가와 마찬가지로 비닐하우스 등 시설농업을 하면 되는데, 그러려니 비용도 많이 들고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하고 있어 비전이 없다고 생각했죠. 1년 가까이 주말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농산물 전문점 등을 돌면서 아이템을 살피던 중 우연히 일본 흑초가 눈에 들어왔는데, 포장지 뒷면 성분표시에 ‘쌀 100%’라고 적혀 있는 걸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죠. ‘바로 이거다’ 싶었어요.”
하지만 전통식초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 정 대표는 그때부터 일본 식초 관련 책을 모조리 섭렵하고 사카모토, 가쿠이다 등 일본 유명 흑초 양초장의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며 흑초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덕분에 자료를 수집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국내 전통식초 업체 파악도 빼놓지 않았다. 초산정, 구관모식초 등 전통식초 대가들이 운영하는 양초장을 두루 견학하며 국내 사정에 맞는 제조법을 익혔다.
‘설갱’ 특수미로 누룩(이화곡) 빚어
정재춘 대표가 쌀로 빚은 누룩(이화곡)을 보여주고 있다(왼쪽). 인양양초장 현미흑초. [조영철 기자]
하지만 인양양초장은 쌀누룩(이화곡)을 직접 만들고 있다. 정 대표는 “흑초를 공부하면 할수록 일본 흑초보다 더 좋은 식초를 만들고 싶다는 오기가 생겼다. 제품을 차별화하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던 중 한상준 ‘초산정’ 대표가 밀가루가 아닌 쌀로 누룩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길로 나도 집에서 쌀누룩을 빚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여전히 직장에 다니던 정 대표는 주말마다 어머니와 함께 누룩을 빚었다. 누룩은 쌀가루에 물을 넣어 반죽한 뒤 동그랗게 빚는데, 두 사람이 쌀 10kg을 다 빚으려면 하루가 꼬박 걸렸다.
“처음에는 거의 다 실패했어요. 그때 버린 쌀이 200kg이 넘어요. 가장 답답했던 점은 과연 이게 제대로 된 누룩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거였어요. 결국 술을 담그는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계속 술을 담그다 보니 어느 순간 화장실과 밥 먹는 곳만 빼고 집 안 전체에 술항아리가 가득 차더군요.(웃음)”
술 배합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관건이었다. 일본에서는 물 ℓ당 곡물을 300g 넣는 것을 정석으로 여긴다. 하지만 정 대표는 수십 번의 실험을 통해 곡물 300g에 10g을 더한 310g을 황금비율로 정했다. 그리고 일본 흑초와 또 다른 점은 ‘엿기름’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는 “쌀누룩은 당화력(쌀을 삭히는 것)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우리나라 전통주에 엿기름이 들어간다는 사실에서 착안해 식초에도 엿기름을 넣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독학으로 누룩을 빚고 현미로 술을 담가 흑미식초를 만들어내기까지 걸린 시간이 5년이다. 정 대표는 2012년 3월 드디어 사표를 내고, 식초 항아리 13개와 컨테이너박스, 1t 트럭을 가지고 홍성으로 내려왔다. 현재 사는 집과 양초장 대지는 모두 종중(宗中) 재산으로, 그는 평생 종중 일을 맡아 하는 조건으로 집안 어른들로부터 땅과 집을 무상으로 제공받았다. 아직까지 인양양초장에는 그럴듯한 사무실이 없다. 처음 그가 가지고 온 컨테이너박스가 그의 사무실이자 흑초 완성품을 보관하는 창고다.
그 대신 식초에 들어가는 재료만큼은 최상품을 고집한다. 쌀은 ‘설갱’이라는 특수미를 쓰는데, 마을 농민들과 계약을 맺어 수매가보다 높은 가격을 쳐주고 있다. 설갱 백미는 누룩 빚는 데 사용하고 현미로는 지에밥을 지어 술을 담근다.
오래 묵힐수록 약이 되는 흑초
누룩은 4월부터 10월까지 한 달에 한 번 정도 빚는데, 그때마다 누룩이나 전통주, 전통식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일꾼’을 자처하며 양초장으로 몰려든다. 이들은 대부분 정 대표가 운영하는 인터넷 블로그를 보고 견학을 오는 것이다. 블로그에는 정 대표의 흑초 농사 이야기가 자세히 적혀 있다.“블로그에 누룩 디디는(빚는) 날짜를 공지하면 그때에 맞춰 많은 분이 팀을 꾸려 찾아오세요. 저야 일손을 덜 수 있으니 정말 고맙죠. 보통 쌀 6~7가마를 사용하는데 방앗간에서 쌀가루를 빻아 와 1차 반죽은 기계로 해요. 일정한 모양으로 반죽이 잘려 나오면 사람 손으로 오리알 크기로 동그랗게 빚어요.”
그 대신 정 대표는 이들에게 직접 농사지은 작물들을 아낌없이 퍼준다. 해마다 약 992㎡(300평) 규모의 밭에 감자, 고구마, 오이, 가지, 토마토, 수박 등 20여 종의 작물을 심는데, 그 이유는 양초장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대접하기 위해서다. 그는 “어머니의 평소 지론이 ‘우리 집에 온 사람은 서운함이 생기지 않도록 뭐라도 베풀라’이다. 먼 곳에서 애써 찾아온 분들을 위해 고구마, 감자 등은 충분히 대접할 수 있으니 이 역시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양초장 한켠에는 누룩을 빚는 컨테이너박스가 따로 마련돼 있다. 그곳에 들어서면 후끈한 열기와 함께 구수한 누룩향이 코를 자극한다. 플라스틱 상자에 얌전히 담긴 누룩에는 청색의 곰팡이균이 마치 물감을 칠해 놓은 것처럼 붙어 있다. 정 대표는 “누룩을 망치면 식초를 망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바로 버린다. 최상의 품질을 맞추려면 그 정도 손해는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8주 뒤에는 잘 빚어진 누룩의 곰팡이를 벗겨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칼을 가는 그라인더에 천연소재인 ‘삼’을 감은 버프(buff)를 달아 누룩 겉 표면을 깎아내는데, 전부 다 하려면 나흘은 족히 걸린다. 이때 방진복과 방독면을 쓰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깨끗하게 닦은 누룩은 저온냉장고에 보관했다 술 담그기 사나흘 전 꺼내서 법제한다.
정 대표는 술이 식초가 되기까지 한 항아리를 그대로 사용한다. 보통은 술이 익으면 찌꺼기를 걸러내고 다른 항아리에 옮겨 담아 식초로 발효시키지만 정 대표는 술을 거르지도, 다른 곳에 옮겨 담지도 않는다.
“항아리에 누룩, 엿기름, 현미 지에밥, 물을 넣으면 2주 뒤 바로 술이 돼요. 알코올 도수가 14%가량인데, 초산균은 알코올 도수 5~8%에서만 살 수 있기 때문에 식초로 만들려면 물을 부어줘야 하죠. 그러려면 처음부터 항아리를 가득 채워서는 안 돼요. 술로는 항아리의 3분의 1만 채우고 물과 공기로 각각 3분의 1씩을 채워야 해요.”
하지만 초산균은 휘발성이 있어 반드시 뚜껑을 밀봉해야 한다. 그 대신 수시로 항아리 뚜껑을 열어 산소를 투입하고, 긴 막대기로 항아리 바닥까지 잘 휘저으면서 숙성시킨다. 그렇게 2년은 지나야 식초 색깔이 진갈색으로 변하면서 영양소도 풍부한 명품 흑초로 변신한다.
올해로 귀농 7년째에 접어든 정 대표는 4년 전 처음 흑초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2014년 발효 개시한 흑초가 담긴 항아리 뚜껑을 열자 간장과 비슷한 검은색 식초가 시큼한 향내를 풍겼다. 정 대표는 “좋은 흑초는 향부터 다르다. 처음 맡을 때는 식초 특유의 시큼한 냄새가 코를 톡 쏘지만 다시 한 번 맡으면 역한 냄새는 사라지고 구수하고 은은한 향기가 난다”고 말했다.
“음식으로 사람을 이롭게 만드는 게 목표”
정재춘 대표가 혜전대 제빵학과 학생들에게 이화곡을 설명하는 모습. [사진 제공·인양양초장]
정 대표는 “며칠 전 자가품질위탁검사기관에 의뢰한 2015년산 흑초의 자가품질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총 산도가 5.6으로 식초 기준인 4.0을 넘었다. 보통 천연발효식초는 총 산도가 4.5를 넘기 어렵다고 하는데 3년 숙성시킨 흑초라 유기산이 풍부해 총 산도도 높게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인양양초장 현미흑초는 500㎖ 병당 1만9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입소문이 나서 대부분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전화로 주문한다. 5년 동안 꾸준히 인양현미흑초를 찾는 단골은 1000여 명. 음용법은 따로 없다. 물에 타서 먹어도 좋고, 원액을 소주잔 반잔 분량으로 나눠 마셔도 된다. 정 대표는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양만큼 마시는 게 정답”이라고 말했다.
“음식은 먹는 사람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어요. 식초가 아무리 좋다 해도 몸 상태에 따라 먹지 않는 편이 나을 때도 있죠. 고객들한테도 먹기 싫을 때는 몸이 원하지 않는 것이니 드시지 말라고 해요. 양초장 이름의 ‘인(人)양(良)’은 음식 식(食)자를 파자한 거예요. ‘음식은 사람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뜻이죠.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에게 좋은 음식, 사람을 살리는 음식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정 대표는 현재 홍성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식초기술반’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수강생이 대부분 취미가 아닌 전통식초를 이용한 창업을 목표로 하는 만큼 그 역시 후계자를 양성한다는 마음으로 강의에 임하고 있다. 또 올해부터는 충남농업기술원 농업인대에서 ‘전통누룩학과’ 강의도 시작했다. 앞으로 그의 목표는 1년에 1명씩 자신과 같은 식초 전문가를 배출해 홍성을 ‘흑초 클리스터’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일본 가고시마현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잖아요. 60~70년의 간극을 하루아침에 메우기는 어렵겠지만, 지금부터라도 많은 사람이 전통식초를 복원하는 데 동참해 농가 수익을 올리고 국민 건강 증진에도 기여하면 좋겠어요. 개인적인 목표는 죽기 전 인양양초장의 흑초 항아리 수를 2만 개로 늘리는 거예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