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국제 다큐멘터리 페스티벌 참가작 '아들의 유산'(왼쪽)과 개막작 '반 누엔의 여정'.
이스라엘 펑크록 밴드 ‘루시스 푸시‘의 보컬리스트였던 옴리골딘은 자살 폭탄테러로 죽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이자 평화주의 운동가인 아미람은 복수보다 평화를 선택한다. 그는 테러로 죽은 아들을 가슴에 묻고 팔레스타인 친구들과 함께 마음의 평정과 평화를 찾기 위한 여정에 오른다(EBS 7월12일 방송, 제3회 EBS 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 참가작 ‘아들의 유산‘).
한 살 된 아이를 둔 결혼 1년차 부부가 있다. 그러나 신혼의 단꿈도 잠시. 남편 이정래(29)씨는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다. 부인 이현주(27)씨는 직장과 병원을 오가며 남편의 치료에 전념한다. 남편 앞에선 내색을 않지만 이현주 씨는 병원 계단 구석에서 통곡한다. ”그냥 평생 제가 돈 벌고 오빠가 방에서 숨만 쉬더라도 같이 살 수만 있으면 좋겠어요…앞으로 나 살 거 반반씩 나눠서 같이 살면 좋겠어요”라며 흐느끼는 이현주 씨(KBS 7월 10~14일 방송 ‘인간극장-눈물의 파티‘).
‘아들의 유산‘을 보면서 평화의 소중함을, ‘눈물의 파티‘를 통해서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말이다.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는 이처럼 시청자들에게 드라마보다 더한 감동과 의미를 전달한다.
그러나 그동안 다큐멘터리를 보는 일반 시청자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지난 수십 년간 집계된 프로그램 시청률 상위 10위 안에 다큐멘터리가 단 한 편도 없을 정도였다. 1961년 한국 방송의 역사가 열린 이래, 이것도 전통이라면 전통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큐멘터리의 종언을 외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위기라는 말은 이제 방송계에선 관용어처럼 쓰인다. 이러한 다큐멘터리의 위기에는 제작진의 노력 부족도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재미만을 좇는 시청자의 시청 태도도 큰 몫을 했다고 본다.
‘다큐멘터리 위기의 시대‘에 열렸던 EBS 국제 다큐 페스티벌은 올해로 3회째를 맞았다. ‘화해와 공존, 번영의 아시아‘를 주제로 한 이번 행사에는 이스라엘에 정착한 베트남 난민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담은 개막작 ‘반 누엔의 여정‘ 등 좀처럼 만나기 힘든 프로그램이 포함됐다.
그러나 국내 최대의 다큐멘터리 축제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처참하리만큼 냉담했다. 대부분 작품의 시청률은 1%를 밑돌거나 겨우 넘어서는 정도였다(물론 시청률이 작품의 질이나 시청자들의 반응 등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다큐멘터리는 시청자들이 프로그램 편식을 개선할 수있는 좋은 장르다. ”한 편의 잘된 다큐멘터리가 역사를 바꾼다”는 말도 나온다.
다큐멘터리가 대중의 시선을 붙잡고, 나아가 역사를 바꾸는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해선 제작진의 노력과 함께 시청자의 관심이 절실하다. 다큐멘터리가 특정 계층의 관심 장르에 머물지 않고 대중의 시선을 붙잡는 장르로 비상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것이 프로그램의 편식을 극복하고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첫 걸음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