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다룬 영화들의 공통점은 소재가 갖는 특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불안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해외 합작영화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일본 NHK의 지원을 받아 완성된 김영남 감독의 데뷔작 ‘내 청춘에게 고함’ 역시 마찬가지다. 로카르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이 작품은 들끓는 청춘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직 자신의 길을 발견하지 못한 세 남녀를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2005년 7월1일 크랭크인해 9월4일 크랭크업을 했으니, 최근 제작되는 다른 한국 영화들에 비해 촬영 기간이 절반밖에 안 된다. 두 달 동안 모두 39회차를 촬영했다. 쉬는 날 없이 찍었다는 말이다. 속전속결 영화 찍기로 유명한 김기덕 감독도 마찬가지지만, 이렇게 하는 이유는 예산 때문이다. 순제작비 10억원이 안 되는 돈으로 영화를 찍기 위해서는 스타 캐스팅 없이 최대한 빨리 찍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두 달간 촬영 … 로카르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
‘내 청춘에게 고함’은 NHK가 지원, 제작하는 영화들을 한꺼번에 모아 상영하는 프로그램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그러나 이번에 국내에서 개봉하는 필름은 그때와 조금 다르다. 편집, 음악 등 후반 작업을 다시 하면서 4분의 1을 잘라냈다.
김영남 감독의 이력은 다소 특이하다. 전라남도 강진 출생인 그는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주대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영화 동아리에서 활동한 것도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 갑자기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 시험을 본 것이다.
“그때까지 내가 하던 일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었다. 내가 짠 프로그램을 누가 쓸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현실감이 없었다. 마치 뜬구름을 잡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삶이 흘러가면서 나에게 남는 게 없을까, 있다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았다. 바로 예술이었다. 그러나 음악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고, 무용은 신체조건이 안 좋아서 포기했다. 먹고살면서 예술도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사진과 영화에 시선이 갔다. 나이가 들수록 삶을 풀어내는 깊이와 나만의 시선이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학교를 바꾸기로 결심하고 시험을 봤는데, 대학원 사진과는 떨어졌고 영상원에 붙었다. 그렇게 영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영화는 나 개인에게도 의미가 있고 타인들에게도 즐거움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자 휴학생, 공중전화 수리 기사, 제대 앞둔 나이 든 군인
그러나 김영남에게 예술적 자양분을 제공한 것은 영화가 아니라 연극이었다. 한국종합예술학교 연극원에서 연출가인 김우옥 교수의 연극을 본 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다가 마이클 커비의 연극과 만났다.
김우옥 교수는 80년대 초반 ‘내.물,빛’이라는 작품을 드라마 센터에서 공연하면서 한국에 처음으로 마이클 커비의 구조주의 연극을 소개했다. 내가 대학원 시절에 본 마이클 커비의 연극과 김우옥 교수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자, 김 감독은 사무엘 베케트의 작품도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고도를 기다리며’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베케트는 소설뿐 아니라 단막극과 방송극의 대본도 썼다. 부조리 극작가로 알려진 베케트의 대본들은 이야기의 서사로 작품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상황으로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사건을 반복함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지고, 또 이야기 구조 방식에서 새로움이 나타난다. 나는 뭔가를 구성하는 데서 흥미를 느꼈다.”
김영남의 마지막 스승은 홍상수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홍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연출부에 참여해 스크립터로 일했다. 최근 찍는 홍 감독의 영화는 대본이 없다. 세밀한 트리트먼트뿐이다. 촬영 당일 아침,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그날 찍을 분량의 간단한 대본을 나눠준다. 그것도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수없이 고쳐나간다.
“홍상수 감독은 기술적으로 편한 상황이 생기면, 현장에서 이야기를 바꾸고 대본을 바꿔나갔다. 그런 색다른 제작 방식을 보면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 청춘에게 고함’ 시나리오는 2002년에 처음 완성했다. 20대 초반의 여자 휴학생, 20대 중반의 공중전화 수리 기사, 30대 초반의 제대를 앞둔 나이 든 군인이 각각 에피소드 하나씩을 끌고 간다. 그러나 에피소들은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에피소드들을 연결시키지 않은 이유는, 나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내러티브적으로 연결되거나 각 에피소드에 다른 파트의 인물이 등장하는 방법은 처음부터 생각하지도 않았다. 겉으로는 서로 연결되지 않지만 정서적으로는 연결되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영화가 불친절해서 관객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은 있겠지만, 각각의 요소들을 내적으로 연결되게 만들었다.”
20대 초반~30대 초반 한 사람 성장기일 수도
21세의 정희(김혜나 분)는 연극을 전공하는 휴학생.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 남자친구 옥탑 방의 잠긴 현관 유리창을 벽돌로 깨는 오프닝 신은 매우 강렬하다. 언니와 살고 있는 그녀 앞에 갑자기 자식들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가 추레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정희는 혼란스러워한다.
26세의 근우(이상우 분)는 공중전화박스를 수리하는 일을 한다. 회사는 파업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그는 유부남과 만나는 한 여자의 전화통화를 엿듣다가 그녀를 찾아가 사랑을 고백한다.
30세의 인호(김태우 분)는 제대를 열흘 앞둔 군인이다. 마지막 휴가를 나온 그는 아내를 놀래키기 위해 미리 알리지 않은 채 집에 왔지만 아내는 부재중이다. 대학동창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과 하룻밤을 보낸 인호는 아내에게 그 사실을 고백하고, 아내는 다른 남자가 생겼다고 말한다.
‘내 청춘에게 고함’은 이 세 사람이 등장하는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지만, 김 감독의 말대로 이는 어쩌면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성장기일 수도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상황까지만 보여주고, 마무리는 보여주지 않는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상황을 보여주면서 주인공들의 주체적 행동을 표현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는 부분에서 일부러 더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여러 경험을 하는데, 서로 다른 그 경험들이 우리 내면에서는 리듬감을 가지고 연결된다. 그런 느낌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김태우는 자연스러운 연기로 영화에 윤기를 더한다. 하지만 다른 두 배우, 김혜나와 이상우의 연기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물론 감독의 책임이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 찍어야 하기 때문에 촬영 도중 배우들과 대화할 시간이 적었다. 연기 지도 방식도 세 사람 다 달랐다. 김혜나의 경우, 촬영 들어가면서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 불안감을 느끼고 그것이 몸에 배게 만들었다. 이상우는 발성부터 몸동작까지 하나하나 다 이야기해줬다. 그리고 김태우는 경험이 많은 배우여서 내가 몇 마디만 해도 기술적으로 잘 풀어나갔다.”
관습적인 청춘영화를 벗어나려는 김 감독의 노력은, 조금 낯설지만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제공한다. 그런데 세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대학원 박사과정 중에 군대에 간 남자다. 그는 결혼까지 했다. 김 감독은 청춘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청춘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청춘은 나이에 상관없이 마음속에 인생의 떨림의 순간을 간직할 수 있는 어떤 힘이다. 그것이 좌절이든 기쁨이든, 단순한 감정으로 끝나지 않고 스스로 떨림의 순간으로 기억된다면 그때가 청춘이 아닐까?”
2005년 7월1일 크랭크인해 9월4일 크랭크업을 했으니, 최근 제작되는 다른 한국 영화들에 비해 촬영 기간이 절반밖에 안 된다. 두 달 동안 모두 39회차를 촬영했다. 쉬는 날 없이 찍었다는 말이다. 속전속결 영화 찍기로 유명한 김기덕 감독도 마찬가지지만, 이렇게 하는 이유는 예산 때문이다. 순제작비 10억원이 안 되는 돈으로 영화를 찍기 위해서는 스타 캐스팅 없이 최대한 빨리 찍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두 달간 촬영 … 로카르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
‘내 청춘에게 고함’은 NHK가 지원, 제작하는 영화들을 한꺼번에 모아 상영하는 프로그램에서 처음 공개되었다. 그러나 이번에 국내에서 개봉하는 필름은 그때와 조금 다르다. 편집, 음악 등 후반 작업을 다시 하면서 4분의 1을 잘라냈다.
김영남 감독의 이력은 다소 특이하다. 전라남도 강진 출생인 그는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주대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영화 동아리에서 활동한 것도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 갑자기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 시험을 본 것이다.
“그때까지 내가 하던 일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었다. 내가 짠 프로그램을 누가 쓸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현실감이 없었다. 마치 뜬구름을 잡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삶이 흘러가면서 나에게 남는 게 없을까, 있다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았다. 바로 예술이었다. 그러나 음악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고, 무용은 신체조건이 안 좋아서 포기했다. 먹고살면서 예술도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사진과 영화에 시선이 갔다. 나이가 들수록 삶을 풀어내는 깊이와 나만의 시선이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학교를 바꾸기로 결심하고 시험을 봤는데, 대학원 사진과는 떨어졌고 영상원에 붙었다. 그렇게 영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영화는 나 개인에게도 의미가 있고 타인들에게도 즐거움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자 휴학생, 공중전화 수리 기사, 제대 앞둔 나이 든 군인
그러나 김영남에게 예술적 자양분을 제공한 것은 영화가 아니라 연극이었다. 한국종합예술학교 연극원에서 연출가인 김우옥 교수의 연극을 본 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다가 마이클 커비의 연극과 만났다.
김우옥 교수는 80년대 초반 ‘내.물,빛’이라는 작품을 드라마 센터에서 공연하면서 한국에 처음으로 마이클 커비의 구조주의 연극을 소개했다. 내가 대학원 시절에 본 마이클 커비의 연극과 김우옥 교수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자, 김 감독은 사무엘 베케트의 작품도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고도를 기다리며’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베케트는 소설뿐 아니라 단막극과 방송극의 대본도 썼다. 부조리 극작가로 알려진 베케트의 대본들은 이야기의 서사로 작품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상황으로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사건을 반복함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지고, 또 이야기 구조 방식에서 새로움이 나타난다. 나는 뭔가를 구성하는 데서 흥미를 느꼈다.”
김영남의 마지막 스승은 홍상수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홍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연출부에 참여해 스크립터로 일했다. 최근 찍는 홍 감독의 영화는 대본이 없다. 세밀한 트리트먼트뿐이다. 촬영 당일 아침,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그날 찍을 분량의 간단한 대본을 나눠준다. 그것도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수없이 고쳐나간다.
“홍상수 감독은 기술적으로 편한 상황이 생기면, 현장에서 이야기를 바꾸고 대본을 바꿔나갔다. 그런 색다른 제작 방식을 보면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 청춘에게 고함’ 시나리오는 2002년에 처음 완성했다. 20대 초반의 여자 휴학생, 20대 중반의 공중전화 수리 기사, 30대 초반의 제대를 앞둔 나이 든 군인이 각각 에피소드 하나씩을 끌고 간다. 그러나 에피소들은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에피소드들을 연결시키지 않은 이유는, 나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내러티브적으로 연결되거나 각 에피소드에 다른 파트의 인물이 등장하는 방법은 처음부터 생각하지도 않았다. 겉으로는 서로 연결되지 않지만 정서적으로는 연결되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영화가 불친절해서 관객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은 있겠지만, 각각의 요소들을 내적으로 연결되게 만들었다.”
20대 초반~30대 초반 한 사람 성장기일 수도
21세의 정희(김혜나 분)는 연극을 전공하는 휴학생.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 남자친구 옥탑 방의 잠긴 현관 유리창을 벽돌로 깨는 오프닝 신은 매우 강렬하다. 언니와 살고 있는 그녀 앞에 갑자기 자식들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가 추레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정희는 혼란스러워한다.
26세의 근우(이상우 분)는 공중전화박스를 수리하는 일을 한다. 회사는 파업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그는 유부남과 만나는 한 여자의 전화통화를 엿듣다가 그녀를 찾아가 사랑을 고백한다.
30세의 인호(김태우 분)는 제대를 열흘 앞둔 군인이다. 마지막 휴가를 나온 그는 아내를 놀래키기 위해 미리 알리지 않은 채 집에 왔지만 아내는 부재중이다. 대학동창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과 하룻밤을 보낸 인호는 아내에게 그 사실을 고백하고, 아내는 다른 남자가 생겼다고 말한다.
‘내 청춘에게 고함’은 이 세 사람이 등장하는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지만, 김 감독의 말대로 이는 어쩌면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성장기일 수도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상황까지만 보여주고, 마무리는 보여주지 않는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상황을 보여주면서 주인공들의 주체적 행동을 표현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는 부분에서 일부러 더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여러 경험을 하는데, 서로 다른 그 경험들이 우리 내면에서는 리듬감을 가지고 연결된다. 그런 느낌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김태우는 자연스러운 연기로 영화에 윤기를 더한다. 하지만 다른 두 배우, 김혜나와 이상우의 연기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물론 감독의 책임이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 찍어야 하기 때문에 촬영 도중 배우들과 대화할 시간이 적었다. 연기 지도 방식도 세 사람 다 달랐다. 김혜나의 경우, 촬영 들어가면서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 불안감을 느끼고 그것이 몸에 배게 만들었다. 이상우는 발성부터 몸동작까지 하나하나 다 이야기해줬다. 그리고 김태우는 경험이 많은 배우여서 내가 몇 마디만 해도 기술적으로 잘 풀어나갔다.”
관습적인 청춘영화를 벗어나려는 김 감독의 노력은, 조금 낯설지만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제공한다. 그런데 세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대학원 박사과정 중에 군대에 간 남자다. 그는 결혼까지 했다. 김 감독은 청춘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청춘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청춘은 나이에 상관없이 마음속에 인생의 떨림의 순간을 간직할 수 있는 어떤 힘이다. 그것이 좌절이든 기쁨이든, 단순한 감정으로 끝나지 않고 스스로 떨림의 순간으로 기억된다면 그때가 청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