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선에서 e-폴리틱스에 허를 찔린 보수 진영 일각에서 나오는 포털 괴담이다. 과거 언론이 제4부로 불리며 여론을 주도했듯, 포털이 정치적 여론몰이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포털과 정권의 유착을 통한 2007년 대선에서의 진보세력 재집권설’ 등 음모론적 견해도 공공연히 회자된다. 포털 괴담은 사이버 세상으로의 출입구를 장악한 포털이 친(親)진보적이거나 친권력적이라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어젠다’로 격상되는 포털 속 정보
“지방선거 기간에 포털의 여(與) 편향성이 두드러졌다. 포털은 입맛에 맞는 매체의 기사를 골라 배치하는 등 편집권을 행사하지만 보도의 형평성 등 언론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은 지지 않고 있다.”(자유주의연대 관계자)
“포털은 성향이 다른 여러 언론사의 뉴스를 서비스하면서 표면적으로 중립 이미지를 갖지만, 실제로는 기사 선정 및 배치 과정에서 심각한 친(親)권력 경향을 보이고 있다.”(인터넷 칼럼니스트 변희재)
“메이저 언론이 ‘박 대표 피습범, 살인미수 영장’이라는 기사를 송고했을 때 주요 포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습격 목표는 박 대표가 아닌 야당 인사’라는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메인 화면에 배치했다.”(한나라당의 한 인사)
뉴스 포털은 21세기 한국에 등장한 독특한 미디어다. 포털이 간택한 정보는 덧글과 퍼가기로 상징되는 누리꾼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어젠다로 격상된다.
언론(미디어)과 권력은 역사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였다. 20세기의 거의 모든 정치세력은 미디어를 이용한 프로파간다에 의해 대중을 장악하거나 무기화했다.
6월12일 노무현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에서 열린 인터넷 포털사이트 대표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유현오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서 있는 사람)가 건배를 제의하고 있다.
과거가 그러했듯, 현재의 정치세력도 미디어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대중적 지지 혹은 정치적 명분을 확보하기 어렵다. 라디오를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삼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노변정담(爐邊情談)을 벤치마킹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라디오 주례연설(매주 토요일)도 일종의 ‘대(對)국민 선전 선동’이다.
취임 초기 주례 라디오 방송을 추진하다가 실패한 노무현 대통령은 포털을 통해 국민과의 대화에 나서고 있다. 정부의 홈페이지(국정브리핑)가 직접 기사를 생산해 포털에 제공하는가 하면, 네이버·다음·엠파스 등엔 ‘대통령의 요즘 생각’이라는 블로그가 개설돼 운용 중이다. 노무현 정부는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서 포털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포털은 2007년 대선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의 ‘파워’를 가지고 있을까?
포털은 사이버 세상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Portal’은 사전적 의미로 ‘현관문’이라는 뜻으로, 현대적 의미에선 인터넷에서 원하는 정보로 접근하기 위한 관문(關門) 구실을 하는 사이트를 말한다. 그러나 한국의 포털은 누리꾼을 성채에 가둬두는 ‘포트리스(Fortress·요새)’가 된 지 오래다. 인터넷 콘텐츠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정보와 지식을 장악해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포털은 사이버 세계의 광활한 영토를 관장하는 닫힌 성채다. 포털은 높은 성벽을 쌓고 그 안에 누리꾼들을 가둬놓는다. 그리고 사이버 세계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들을 그 안에서 충족하도록 만드는 토털(total)이 됐다.”(경희사이버대 교수 민경배)
한국에선 언론사들의 기사를 포함한 거의 모든 정보가 ‘포털 서버’에 저장된다. 포털이 정보를 집어삼키는 공룡이 된 것이다. 젊은 세대는 “신문에 실렸다”는 말보다 “네이버에서 봤다”거나 “인터넷에 떴다”는 표현에 더 익숙하며, 포털은 다양한 사이트로 통하는 관문이기보다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보의 만물상으로 변모했다.
미디어의 파워는 독자 수와 정보의 양에서 비롯한다. 한 시장조사 업체에 따르면 인터넷 이용자의 90%가 포털을 통해 뉴스에 접근하며, 누리꾼이 포털에 머무르는 시간은 총 인터넷 이용 시간의 47.8%에 달한다. 포털업계 관계자들은 “덧글과 퍼가기로 확대, 재생산되는 포털 메인 화면의 콘텐츠가 종이신문 1면의 기사보다 정보의 파급효과가 크다”고 주장한다.
3월23일 오후 1시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가 네이트, 다음, 야후, 엠파스, 파란 등 5개 포털 사이트에서 생중계되고 있다
“포털을 권력으로 키운 것은 ‘푼돈’을 받고 기사를 통째로 넘겨준 언론사들이다.
5년, 10년 전의 지적생산물(기사)도 포털이 제멋대로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언론사가 포털의 CP(콘텐츠 프로바이더)가 된 사례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 현재의 구조에서 언론사닷컴은 포털과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다.”(모 언론사닷컴 중견 간부)
1000만 명에게 ‘편집된 뉴스’ 전달
한국의 ‘뉴스 포털’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형태다. 미국의 포털들은 검색 결과에 따라 기사의 제목만 제공한 뒤 해당 사이트로 연결해주는 ‘딥링크 방식(포털에서 검색된 동아일보 기사를 클릭하면 동아닷컴으로 연결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하루 1000만 명의 독자에게 ‘편집된 뉴스’를 전달하는 매체는 전 세계에서 한국의 네이버가 유일하다. 포털은 이러한 ‘독자 수’를 무기로 영향력을 빠르게 키우고 있으며, 포털을 통한 뉴스 유통이 확대되면서 종이신문은 위기를 맞고 있다. 인터넷언론 대다수와 일부 마이너 언론은 포털의 콘텐츠 공급자로 전락하고 있다.
“제4의 권력이라고 우쭐대던 언론조차 네이버 앞에서는 입점에 목매는 납품업자일 뿐이다. 수십, 수백 명의 인력을 투입해 만든 기사와 콘텐츠를 한 달에 몇백만 원씩 받고 헐값에 넘기고 있다. 공짜로라도 실어만 달라는 곳들에 비하면 그나마 돈 몇 푼이라도 받는 경우는 행복한 축에 속한다.”(머니투데이 온라인총괄부장 김준형)
언론이 어젠다를 설정하고 여론을 주도한 것은 ‘매개 커뮤니케이션’ 덕이다. 사람들은 ‘언론이 매개한 정보’를 통해 세상을 지각했다. 포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언론이 매개한 정보’를 재(再)매개한다. 언론사들이 생산한 뉴스를 포털이 취사선택함으로써 ‘언론 위의 언론’으로 떠오른 것이다. 포털에 기사를 공급하는 일부 인터넷매체는 벌써부터 포털의 입맛에 맞춰 기사를 작성하고 있기도 하다.
언론의 두 축은 취재와 편집. 그중 편집은 취재한 자료의 가치를 판단해 어떤 지면에 어떻게 노출시킬지를 결정하는 일로, 포털은 각 언론사에서 들어온 기사를 편집함으로써 언론으로서 기능한다. 그런데 이 편집이라는 곳에 끼어드는 불청객이 ‘편향성’이다. ‘어떤 언론사의’ ‘어떤 기사를’ ‘어떤 제목을 달아’ ‘얼마나 잘 보이게 노출시킬지’는 전적으로 포털 편집자의 권한이다.
포털 편집자의 편향성이 여론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일화 한 토막. 지난해 열린우리당 W 의원은 인터넷서비스 제공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입법에 나섰다가 곤욕을 치렀다. 누리꾼들이 저작권법을 잘 몰라 범죄자로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한 법안이었는데, 이해당사자인 주요 포털에 W 의원에게 불리한 기사들만 집중적으로 게재된 것. W 의원을 비판하는 누리꾼들의 덧글이 이어졌으며, 상당수가 W 의원에 대한 인신공격이었다.
브레이크 다는 것이 시대에 역행?
현재까지는 포털의 뉴스 편집이 크게 편향돼 있지는 않아 보인다. 일부 보수인사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독특한 사례이거나 다소 과장된 것이다. 그럼에도 포털 뉴스가 앞으로 정치적, 사회적으로 편향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포털의 모기업은 정보기술(IT) 업체고, 포털이 벌이는 사업 또한 광범위해 정부와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신문법에서는 인터넷신문 등록 조건으로 독자적 기사 생산 비율 30%, 최소 취재인력 2명 및 편집인력 1명이 필요하다. 따라서 직접 기사를 생산하지 않는 포털사이트는 인터넷신문이 아니며, 언론으로서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언론으로서 권력을 누리면서도 책임은 전혀 지지 않는 것이다. 야권을 중심으로 포털의 뉴스 유통 과정을 일부 통제하는 관련 법 개정 논의가 이뤄지는 까닭이다.
심재철 의원(한나라당)의 신문법 개정안은 포털이 언론사로부터 제공받은 기사와 제목을 임의로 편집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권영세 의원(한나라당)은 포털이 언론 기사의 제목만을 제공하고 본문은 해당 언론사의 닷컴으로 연결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승희 의원(민주당)은 한발 더 나아가 포털 뉴스를 인터넷신문 범주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뉴스를 관리하는 인원이 30여 명으로 중소 인터넷매체의 기자 수를 훌쩍 뛰어넘는 네이버는 “포털은 기사를 생산하는 곳이 아니라 유통하는 곳이므로 엄밀히 말해 언론사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취재기자 6명, 편집기자 20명 등을 둔 미디어다음은 공공연히 ‘미디어’임을 표방하면서도 언론이라고 불리는 것은 부담스러운 눈치다.
포털이 법에 의해 인터넷신문으로 규정되면 검색 서비스 및 메일 서비스 무료 제공이 불공정행위(무료 경품 제공)에 해당돼 포털의 비즈니스 자체가 타격을 받는다. 예컨대 이승희 의원의 신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포털은 현재 형태의 뉴스 서비스를 중단하거나 인터넷신문으로 업태를 변경해야 한다.
인터넷의 상호작용이 펼쳐내는 ‘뷰스(View+News)’는 오프라인 매체의 ‘뉴스’보다 재미있다. 뷰스에 길들여진 이용자들은 언론이면서도 통제를 받지 않는 포털이 편향된 뉴스를 선별해 보여줄 경우 현혹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1000만 명의 독자를 가진 ‘미디어 포털’에 법으로 브레이크를 다는 것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