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5

..

축구와 ‘콜럼버스 달걀’의 공통점은?

  • 이도희 경기도 송탄여고 국어 교사

    입력2006-07-24 11:4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월드컵 축구가 갖는 문제점에 대해 질문을 던져봤다. 이어서 개선점도 발표하도록 했다. 하지만 학생들 답변은 매스컴을 통해 익히 알려진 내용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6월 한 달간 우리 사회를 잠 못 들게 했던 독일월드컵 열풍도 이제 잠잠해졌다. 월드컵 열풍은, 우리 팀의 16강 진출이 좌절되기 전까지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라는 엄청난 일조차도 그 그늘에 묻혀 있었을 정도로 대단했다. 논술시험을 준비하는 우리 학생들도 이제 월드컵 대회가 가져온 명암과, 축구라는 스포츠 자체의 의미를 정리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논술시험에서 과정과 결과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물으면 학생들은 대체로 ‘과정이 정당성을 가질 때 그 결과도 객관적으로 인정된다’는 식의 답을 쓴다. 그런데 축구에서는 이런 논리가 무시된다. 90분 동안의 경기 결과가 오로지 골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경기 내내 상대를 압도하고도 단 한 번의 실수로 골을 허용해 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축구 경기의 승부차기는 결과중심주의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결과중심주의가 현대인 삶 가치로 고착화

    이번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이 같은 결과중심주의가 현대인의 의식에 스며들어 삶의 가치로 고착화되는 측면은 없을까 생각해보았다. 논의를 더 진전시키면, 결과중심주의에선 제국주의의 냄새마저 풍긴다. 제국주의는 본질적으로 자연스러운 이치를 거부하고 인위적인 요소를 강하게 내세운다. 제국주의에는 정복의 개념이 내재돼 있는 것이다. 축구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선수들이 규칙을 어기지 않고 경기에 임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월드컵에서 우리는 선수들이 오로지 골을 넣기 위해 반칙을 서슴지 않는 모습을 숱하게 봤다.



    이번 월드컵 대회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기 위해 다음 칼럼을 보자.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콜럼버스의 달걀이 이제는 상식을 넘는 발상이라기보다는 도리어 그것이 상식이 되어버린 역사적 과정과 현실이다. 달걀의 겉모양은 어떻게 생겼는가? 그것은 타원형이다. 애초에 세울 이유가 없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둥지에서 구르더라도 그 둥지의 반경을 벗어나지 않도록 고안된 생명의 섭리가 담겨 있다. 만일 원형이었다면 굴렀을 경우 자칫 둥지에서 멀리 이탈돼버리기 십상이다. 각이 졌다면 어미 새가 품기 곤란했을 것이다. 타원형은 그래서 생명을 지키는 원초적 방어선이다.

    따라서 달걀을 세워보겠다는 것은 그런 생명의 원칙에 맞서는 길밖에 없다. 둥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만들어진 생명체를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고정시켜 장악해야겠다는 생각이 콜럼버스의 달걀을 가능하게 만든 뿌리다. 그래서 그것은 상식을 깬 발상 전환의 모델이 아니라, 생명을 깨서라도 자신의 구상을 달성하겠다는 탐욕적, 반생명적 발상으로 확대된다.” - ‘콜럼버스여 달걀 값 물어내라’(성공회대 김민웅 교수)

    우리는 그동안 콜럼버스의 달걀을 ‘창의적 사고’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왔다. 그러나 필자는 이것을 뒤집어 또 다른 의미로 재생산했다. 즉 달걀이 타원형으로 생긴 것을 생명의 신비로, 달걀을 깨뜨려 세우는 것을 반(反)생명적 발상의 제국주의적 행위로 읽은 것이다. 필자의 생각은 참신하고 통쾌하다. 관점을 달리해서 대상을 바라보면 상식이 여지없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축구공이 둥근 것은 자연적인 원리다. 콜럼버스가 달걀을 깨뜨려 세우는 것이나 둥근 공을 인위적인 반칙으로 조작해서 골을 넣는 것이 무엇이 다른가? ‘어떻게든 달걀을 세우기만 하면 된다’와 ‘골을 넣기만 하면 된다’는 두 가지 생각은 제국주의적 발상과 연결된다. ‘골인’의 환호 속에 결과가 과정을 합리화해버리는 무서움이 들어 있다.

    축구 경기에 판정승 제도를 만들자고 제안한다면 어떨까? 골도 점수로 환산해 경기 후 합산을 해 승부를 정하자는 것이다. 혹자는 ‘그게 축구냐’며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비웃는 것 자체가 고정관념에 얽매여 있다는 방증은 아닐까? 물론 연장전과 승부차기가 없어져 축구의 묘미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더 큰 것을 얻을 수도 있다.

    판정승 제도는 무엇보다 과정을 중시하게 만든다. 반칙을 밥 먹듯하던 선수들은 골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많은 의미를 두게 될 것이다. 과정을 중시하는 사고가 월드컵 대회를 통해 확산되고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자리잡는다면 그 효과는 엄청날 수 있다. 현대인을 지배해온 결과중심적 사고방식이 과정중심의 사고로 바뀌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이 축구 규칙을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님은 독자 여러분도 잘 알 것이다. 필자는 학생들이 월드컵 대회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월드컵이든 다른 어떤 사회·문화 현상이든,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평범한 생각이냐, 자신만의 독창적인 생각이냐가 결정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