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명 검찰총장
법조 브로커 김홍수 사건에 대한 전면수사를 벌이던 검찰이 5월 중순 언론에 한시적 보도 자제를 요청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일부 경찰 관계자들이 털어놓은 푸념이다. 이들은 “법원과 경찰 관계자들이 ‘김홍수 사건’에 많이 관여돼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냐”면서 기자들을 상대로 확인 취재에 나서기도 했다.
검찰이 ‘김홍수 사건’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7월13일 현재 이 사건에 연루된 간부급 경찰 관계자는 모두 2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직 총경과 경정이 김홍수 씨한테서 각각 수천만원과 수백만원의 금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고, 경찰은 이들을 이미 보직 해임 등 인사조치한 상태. 경찰 내에서는 보직 해임된 총경에 대해 “경찰의 인재였는데,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잠복되었던 갈등 불거질 소지
‘김홍수 사건’이 검찰과 경찰 사이에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동안 잠복상태였던 검찰과 경찰의 갈등이 다시 불거질 소지도 있다. 한 총경급 간부는 “검찰이 공정한 수사를 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간부는 이어 “검찰이 ‘편파수사’를 한다면 ‘윤상림 사건’ 때처럼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로선 경찰의 이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자기 식구 감싸기’ 식 수사를 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 재경 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김홍수 사건’에 연루된 검사 한 사람 살리려다 자칫 검찰 조직 전체가 죽을 수 있는데, 검찰이 그런 식으로 수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피해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윤상림 사건’ 때 ‘당한’ 경험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검찰은 최광식 차장을 샅샅이 뒤져 ‘윤상림 사건’과 관련 없는 별건으로 기소했는데, 그런 식으로 수사하면 안 걸릴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면서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한마디로 수사권 조정 문제에 강경한 태도를 보인 최 차장을 제거하기 위한 ‘과잉수사’였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들이 ‘김홍수 사건’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과는 상관없이 검경 수사권 조정은 이미 동력을 잃은 상태다. 검찰 쪽에서는 “이 정권에서는 이미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희망 섞인 관측을 하는 사람도 있다. “2년 반 동안 활동해온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당사자들이 어렵게 합의한 결과물도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고 있는데, 당사자가 합의하지 못한 수사권 조정이 쉽게 이뤄지겠느냐”는 것.
2005년 9월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검경 수사권 조정 공청회.<br>검찰 측 인사가 참석하지 않아 반쪽 공정회로 진행됐다.
경찰 수뇌부의 고민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으로 비친다. 전반적 여론이 경찰에 호의적이었던 지난해와 달리 수사권 조정 문제를 제기할 만한 상황이 좀처럼 조성되지 않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일선 경찰관들은 “이택순 청장 등 수뇌부의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이 청장은 이에 대해 “경찰이 기본 업무를 잘하면 수사권 조정 문제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 자연스럽게 커질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현재 수사권 조정 문제는 대통령 법무비서관실에서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찬 총리 시절 정부 조정안을 만드는 작업을 했던 총리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우리 손을 떠났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도 “청와대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리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작업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초 정부와 여당은 4월 중 국회 처리를 목표로 삼았다. ‘실세 총리’로 불렸던 이해찬 총리가 적극 나서 법무부 장관, 행정자치부 장관, 국무조정실장 간 조정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3월까지 정부안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던 것. 그런 다음 정부와 여당이 힘을 합쳐 국회에서 정부안을 통과시킨다는 복안이었다.
경찰 ‘공격’ vs 검찰 ‘방어’ 형국
국무조정실은 이런 계획에 따라 정부 조정안을 만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무조정실 고위 관계자는 당시 기자를 만나 “양 당사자가 있는 일인 만큼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면서도 실행 가능성이 있는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보겠다”고 의욕을 밝히기도 했다. 검찰과 경찰 모두 국무조정실 조정안에 나름대로 기대를 걸기도 했다.
그러나 국무조정실의 초안은 경찰을 실망시켰다. 경찰청 관계자는 “국무조정실의 초안이라는 게 일부 민생 범죄에 한해 경찰의 독자적인 수사권을 인정해주는 식이었는데, 이는 일반 행정 업무를 조정할 때의 방식을 원용한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는 제도 개선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그런 인식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
이해찬 총리가 ‘3·1절 골프 파문’으로 물러나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은 추진 동력마저 잃었다. 전반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열린우리당 간사였던 우윤근 의원은 “올 4월 중순 노무현 대통령이 법사위의 여야 의원들을 청와대로 불러 수사권 조정에 대한 접점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이 모임이 불발되면서 당시 국회 처리도 어렵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수사권 조정 문제는 기본적으로 경찰이 ‘공격’하고 검찰은 ‘방어’하는 형국이다. 검찰로서는 현재 상태를 고수하면 성공이지만 경찰은 검찰의 몫 일부를 뺏어와야 하기 때문이다. 검찰이 과거 경찰의 수사권 독립 요구에 무시 전략으로 일관했던 것도 이런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경찰도 많이 성장했다”는 얘기를 들을 만큼 검찰도 경찰 논리를 적극적으로 반박하는 한편 여론을 상대로 호소하기도 했다.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시간은 검찰 편이다. 어떤 정권이든 정권 말기가 가까워질수록 검찰과 같은 권력기관을 벌집 쑤셔놓듯 만들 필요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치권이 나설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정치권은 오히려 검찰과 경찰 눈치를 봐야 하는 형편이다.
국민은 수사권 조정도 좋지만 검경 간 갈등이 감정싸움으로 확대되면서 공권력 스스로 불신을 자초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다. 공권력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