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웬만한 규모의 박물관에는 고대 이집트의 관과 그리스의 항아리가 전시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루브르나 대영박물관 같은 큰 박물관은 물론이고, 이집트·그리스와 아무 상관이 없는 국가의 박물관에조차 미라와 항아리는 빠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많은 고대 유물들은 대체 어디서 흘러나온 것일까? 과연 이집트나 그리스에서 적법한 절차로 넘어온 것일까?
정답은 ‘아니오’다. 대부분의 유물은 자국에서 불법적인 경로로 반출된 것들이다. 문제는 유수의 박물관과 큐레이터들이 이 같은 불법행위를 묵인 또는 조장해왔다는 데 있다. 최근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에 실린 기사 ‘도둑맞은 역사’는 이 많은 고대 유물이 흘러나온 경로를 고발하고 있다.
기사는 고대 그리스의 크레이터(Krater·술과 물을 섞는 용도로 쓰인 단지) 하나가 어떻게 외국의 박물관으로 흘러 들어가는지에 대한 경로 추적으로 시작된다. 1972년, 미국인 딜러 로버트 헥트는 파리의 고미술상에서 기원전 500년에 만들어진 고대 그리스의 크레이터 하나를 집어들었다. 이탈리아 도굴꾼들에 의해 파리로 흘러 들어온 이 크레이터는 25만 달러(약 2억3600만원) 이상의 가치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유물 구입 대리인 헥트는 100만 달러(약 9억4300만원)를 주고 단지를 사들여 메트로폴리탄 측에 넘겼다. ‘유포로니우스 단지’로 이름 붙은 단지의 가격은 15년 만에 1800만 달러(약 170억원)로 뛰어올랐다.
이 일화는 고대 유물 거래에 그만큼 많은 자본이 투자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도굴꾼과 딜러, 큐레이터, 박물관은 유물을 사고팔며 가격을 천문학적으로 끌어올리기 일쑤다. 도굴꾼들의 유물이 거래되는 블랙마켓의 자금 규모는 연 40억 달러(약 3조77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고가 거래 유물들 출처 불분명
이처럼 고가에 거래되는 유물의 출처는 대부분 수상쩍다. 유포로니우스 단지의 경우처럼 유명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유물 중 적지 않은 수가 도굴꾼들에 의해 해외로 밀반출된 것들이다. 최근 유럽 박물관들이 보유하고 있는 이집트와 그리스 유물 546점을 조사한 영국 고고학회 조사팀은 그중 82%의 출처가 수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조사를 진행한 케임브리지 대학 고고학과 크리스토퍼 치펜데일 교수는 “유물 암거래의 진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리스·이집트·이탈리아·터키 등은 1970년 문화유산의 불법 거래를 막는 협정을 체결했지만, 이런 규제들은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유물의 불법 거래는 이외에도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 도굴꾼들이 유물을 찾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유적을 파헤치는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유물의 밀반출 못지않게 유적 훼손을 걱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고고학의 발견은 출토된 유물뿐만 아니라 발굴 상황 그 자체에서도 많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도굴꾼들이 마구 땅을 파헤치는 와중에 소중한 현장이 망가지는 거죠.” 치펜데일 교수의 설명이다.
최근 이탈리아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였다. 이탈리아 사법 당국은 몇 년에 걸쳐 여러 박물관들과 저명한 딜러들, 그리고 유물 거래의 큰손들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로버트 헥트와 로스앤젤레스 폴 게티 미술관의 고대유물 책임 큐레이터인 마리온 트루 등 쟁쟁한 인사들이 줄줄이 법정에 서게 됐다.
또 이탈리아 사법 당국은 피렌체의 유서 깊은 메디치 가문에 대한 압수수색을 해 수많은 유물을 찾아냈다. 메디치가의 창고에는 ‘프레스코화와 도자기, 청동조각, 대리석 등이 마치 알라딘의 보물동굴처럼 쌓여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메디치가의 골동품 거래인인 자코모 메디치는 유물 밀수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탈리아의 강경한 태도에 용기를 얻은 그리스와 이집트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스가 약탈해간 자국 유물들을 되찾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박물관들 역시 이 국가들의 노력에 조금이나마 반응을 보이고 있다. 폴 게티 박물관은 이미 세 가지의 유물을 이탈리아에 반환했으며, 몇 가지의 유물을 추가로 반환하는 절차를 놓고 그리스와 협상 중이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도 장기임대 조건으로 이탈리아 유물 21점을 반환할 예정. “사실 이것은 상당히 민감한 문제입니다. 자칫하다가는 박물관들이 밀반출로 의심되는 모든 유물을 다 내놓아야 한다는 뜻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메디치가의 음모’ 저자인 피터 왓슨의 말이다.
지금까지 박물관이 보유하고 있는 유물을 되찾는 일은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였다. “특정 유물이 밀반출됐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하겠습니까? 대부분 증거를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카트린 툽 교수의 말이다.
“박물관 태도 확실히 하면 불법 근절”
실제로 미국 박물관장 연합회는 ‘유물이 어떤 경로로 입수되었든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있다면 박물관에 계속 전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필립 드 몬테벨로 이사는 “대중이 역사적인 유산을 보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분명히 했다. 이 같은 논리에 의해 박물관들은 지금껏 출처가 불분명한 유물을 사들여왔고, 수요가 있기 때문에 도굴이 끊이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져온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당국이 규제 의지를 강하게 표명함으로써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왓슨은 “밀반출된 유물은 절대 사지 않는 박물관들의 태도가 문제 해결에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탈리아 당국의 조사가 시작된 뒤로 블랙마켓의 규모는 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범국가적인 노력 속에서도 끈질기게 ‘장사’를 계속해온 도굴꾼과 딜러들이 이제는 정말로 직업을 바꿀 때가 왔는지도 모르겠다.
정답은 ‘아니오’다. 대부분의 유물은 자국에서 불법적인 경로로 반출된 것들이다. 문제는 유수의 박물관과 큐레이터들이 이 같은 불법행위를 묵인 또는 조장해왔다는 데 있다. 최근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에 실린 기사 ‘도둑맞은 역사’는 이 많은 고대 유물이 흘러나온 경로를 고발하고 있다.
기사는 고대 그리스의 크레이터(Krater·술과 물을 섞는 용도로 쓰인 단지) 하나가 어떻게 외국의 박물관으로 흘러 들어가는지에 대한 경로 추적으로 시작된다. 1972년, 미국인 딜러 로버트 헥트는 파리의 고미술상에서 기원전 500년에 만들어진 고대 그리스의 크레이터 하나를 집어들었다. 이탈리아 도굴꾼들에 의해 파리로 흘러 들어온 이 크레이터는 25만 달러(약 2억3600만원) 이상의 가치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유물 구입 대리인 헥트는 100만 달러(약 9억4300만원)를 주고 단지를 사들여 메트로폴리탄 측에 넘겼다. ‘유포로니우스 단지’로 이름 붙은 단지의 가격은 15년 만에 1800만 달러(약 170억원)로 뛰어올랐다.
이 일화는 고대 유물 거래에 그만큼 많은 자본이 투자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도굴꾼과 딜러, 큐레이터, 박물관은 유물을 사고팔며 가격을 천문학적으로 끌어올리기 일쑤다. 도굴꾼들의 유물이 거래되는 블랙마켓의 자금 규모는 연 40억 달러(약 3조77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고가 거래 유물들 출처 불분명
이처럼 고가에 거래되는 유물의 출처는 대부분 수상쩍다. 유포로니우스 단지의 경우처럼 유명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유물 중 적지 않은 수가 도굴꾼들에 의해 해외로 밀반출된 것들이다. 최근 유럽 박물관들이 보유하고 있는 이집트와 그리스 유물 546점을 조사한 영국 고고학회 조사팀은 그중 82%의 출처가 수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조사를 진행한 케임브리지 대학 고고학과 크리스토퍼 치펜데일 교수는 “유물 암거래의 진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리스·이집트·이탈리아·터키 등은 1970년 문화유산의 불법 거래를 막는 협정을 체결했지만, 이런 규제들은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유물의 불법 거래는 이외에도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 도굴꾼들이 유물을 찾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유적을 파헤치는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유물의 밀반출 못지않게 유적 훼손을 걱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고고학의 발견은 출토된 유물뿐만 아니라 발굴 상황 그 자체에서도 많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도굴꾼들이 마구 땅을 파헤치는 와중에 소중한 현장이 망가지는 거죠.” 치펜데일 교수의 설명이다.
최근 이탈리아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였다. 이탈리아 사법 당국은 몇 년에 걸쳐 여러 박물관들과 저명한 딜러들, 그리고 유물 거래의 큰손들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로버트 헥트와 로스앤젤레스 폴 게티 미술관의 고대유물 책임 큐레이터인 마리온 트루 등 쟁쟁한 인사들이 줄줄이 법정에 서게 됐다.
또 이탈리아 사법 당국은 피렌체의 유서 깊은 메디치 가문에 대한 압수수색을 해 수많은 유물을 찾아냈다. 메디치가의 창고에는 ‘프레스코화와 도자기, 청동조각, 대리석 등이 마치 알라딘의 보물동굴처럼 쌓여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메디치가의 골동품 거래인인 자코모 메디치는 유물 밀수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탈리아의 강경한 태도에 용기를 얻은 그리스와 이집트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스가 약탈해간 자국 유물들을 되찾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박물관들 역시 이 국가들의 노력에 조금이나마 반응을 보이고 있다. 폴 게티 박물관은 이미 세 가지의 유물을 이탈리아에 반환했으며, 몇 가지의 유물을 추가로 반환하는 절차를 놓고 그리스와 협상 중이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도 장기임대 조건으로 이탈리아 유물 21점을 반환할 예정. “사실 이것은 상당히 민감한 문제입니다. 자칫하다가는 박물관들이 밀반출로 의심되는 모든 유물을 다 내놓아야 한다는 뜻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메디치가의 음모’ 저자인 피터 왓슨의 말이다.
지금까지 박물관이 보유하고 있는 유물을 되찾는 일은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였다. “특정 유물이 밀반출됐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하겠습니까? 대부분 증거를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카트린 툽 교수의 말이다.
“박물관 태도 확실히 하면 불법 근절”
실제로 미국 박물관장 연합회는 ‘유물이 어떤 경로로 입수되었든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있다면 박물관에 계속 전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필립 드 몬테벨로 이사는 “대중이 역사적인 유산을 보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분명히 했다. 이 같은 논리에 의해 박물관들은 지금껏 출처가 불분명한 유물을 사들여왔고, 수요가 있기 때문에 도굴이 끊이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져온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당국이 규제 의지를 강하게 표명함으로써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왓슨은 “밀반출된 유물은 절대 사지 않는 박물관들의 태도가 문제 해결에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탈리아 당국의 조사가 시작된 뒤로 블랙마켓의 규모는 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범국가적인 노력 속에서도 끈질기게 ‘장사’를 계속해온 도굴꾼과 딜러들이 이제는 정말로 직업을 바꿀 때가 왔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