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패삼겹살
학창 시절 과학시간에 배웠던 열역학을 기억하는가. ‘열의 이동 방식에는 대류, 전도, 복사가 있다’는 명제도 떠오를 것이다. 고기를 굽는 방식도 이 열역학 안에 있다. 즉 대류, 전도, 복사라는 열의 이동 방식에 따라 고기를 굽는 것이다. 여기에서 대류란 열원에서 나오는 뜨거운 공기에 고기를 익혀내는 것을 말한다. 전도란 구이판에 올려 굽는 방식이며, 복사란 열원에서 방사되는 열이나 전자파로 고기를 익히는 방식을 말한다. 대류와 복사는 불의 종류에 따라 어느 방식이 주가 되고 보조가 되기도 하는데, 대체로 가스는 대류 방식, 숯이나 연탄은 복사 방식으로 굽는다고 볼 수 있다.
고기의 질보다 굽는 방식이 더 중요
삼겹살을 굽는 방법 중 가장 흔한 것은 구이판을 이용한 전도다. 그 다음이 숯불을 이용한 복사와 가스불을 이용한 대류다. 직화로 구울 때 가스불보다 숯불로 굽는 삼겹살이 더 맛있다는 사실은 경험상 누구나 알고 있다. 이에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숯불로 구우면 열과 원적외선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순식간에 삼겹살의 속까지 익어 육즙이 고기 안에 온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맛이 살아 있게 된다. 그러나 가스불은 복사가 극히 적게 일어나 삼겹살을 일시에 익히지 못해 육즙이 빠져나옴으로써 맛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또 가스가 새는 것을 쉽게 알기 위해 가스에 독특한 냄새를 집어넣는데, 이 냄새가 삼겹살에 배어 맛을 떨어뜨린다. 반면에 숯은 타면서 독특한 향기를 삼겹살에 더해 맛을 더 좋게 한다.
자, 그렇다면 숯불에 굽는 삼겹살이 가장 맛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다!? 불행히도 꼭 그렇지만은 않다. 특히 건강에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석쇠+숯불, 불판+숯불, 불판+가스불 등 세 가지 방식으로 조리한 결과를 예전에 발표한 적이 있는데, 육류를 직접 불에 구우면 발암물질이자 환경호르몬인 벤조피렌이 많이 생성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석쇠와 숯불을 쓴 돼지고기의 평균 벤조피렌 함량이 2.9ppb(ppb는 10억분의 1)로 가장 높았는데, 이는 유럽연합이 정한 훈연식품의 벤조피렌 허용 기준(1ppb)의 3배 가까이 되는 수치다. 그러나 불판 위에 놓고 구운 돼지고기의 벤조피렌 함량은 0.02ppb(불판+숯불), 0.004ppb(불판+가스불)로 극히 낮은 수준이었다.
여기에 숯불이 위험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국내 음식점에서 사용하는 숯의 대부분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수입한 것인데, 나무에 불을 지펴 굽는 숯이 아니라 톱밥 등을 태워 굳힌 조형탄이다. 이 숯에는 화공약품이 섞여 있다. 숯의 화력을 높이기 위해 바륨이라는 물질을 넣는데, 이것의 독성이 상당히 높다고 알려져 있다.
숯불구이에 또 하나 딴지를 걸자면, 숯불의 향이 진정한 고기의 맛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된다. 고기 냄새를 숯불 향이 잡아버리기 때문이다. 삼겹살 특유의 맛을 즐기자면 숯불구이를 피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삼겹살 맛의 포인트는 돼지 지방이 불에 타면서 내는 고소함과 적당히 익은 고기의 쫄깃한 촉감이다. 두툼한 삽겹살은 숯불이나 연탄불로 구워야 식감이 살아난다. 그런데 이 방식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니, 내가 권하고 싶은 방식은 전도열로 굽는 것이다. 두꺼운 고기판을 사용하면 복사열도 함께 얻을 수 있다. 얼린 삼겹살을 얇게 썰어 불판에서 잽싸게 구워 먹는 방식이 내가 보기에는 최상이다. 흔히 대패삼겹살이라고 불리는 얇은 고기가 제일 좋다.
최근 삼겹살 가격이 올라 ‘금겹살’이라 불린다. 게다가 장마라 상추 가격도 만만치 않다. 이럴 땐 수입 냉동 삼겹살을 얇게 썰어 구운 뒤 파채를 곁들이면 어떨까 싶다. 원가 때문에 걱정하는 삼겹살집 주인장분들의 견해는 어떠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