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새순이 돋기 시작한 아그로상생 농장의 콩밭.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으로 짐짝처럼 실려간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팽개쳐졌다. 당시 끌려간 고려인은 18만여 명. 그들 대부분은 손발이 닳도록 피땀 흘리며 열심히 일군 눈물의 연해주 땅을 살아서 밟지 못했다.
2006년 7월, 연해주 아그로상생 루비노브카 농장과 주변 7곳의 농장은 온통 초록으로 물들었다. 따가운 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들판엔 끝이 보이지 않는 벼와 옥수수, 보리, 밀, 귀리, 콩밭이 이어졌다. 습기가 거의 없는 상쾌한 바람은 야생화를 흔들고, 초원은 지평선까지 가물가물 펼쳐져 있다. 여기가 바로 한국인의 대륙영농 꿈이 실현되고 있는 곳이다.
아그로는 ‘농업’, 상생(相生)은 ‘함께 산다’는 뜻으로, 이곳은 대순진리회(종무원장 이유종)가 설립한 연해주 한국영농법인이다.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서 북쪽으로 5시간 차를 달렸다. 우수리스크를 지나 초원으로 접어들자 세월이 정지된 듯한 낡은 집이 띄엄띄엄 있을 뿐 사람 모습도 찾기 힘들다.
49년 임대계약 ... 모든 것 갖춘 천혜의 땅
아그로상생이 10여 곳의 농장에서 경작하는 농지 면적은 4억2000만 평, 서울 여의도 면적(300만 평)의 약 140배 규모다. 연해주 농장은 옛 소련이 아시아 진출을 위해 농장원과 군인을 동원, 대규모 관개수로와 도로·전기 시설 등을 완벽하게 갖춘 천혜의 농지다. 비옥한 땅과 극동 러시아의 최대 호수인 항카호의 풍부한 물 등 어떤 작물도 생산할 수 있는 조건을 두루 갖췄다. 또한 추운 겨울 날씨는 병충해를 막기 때문에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기에 적합하다는 게 아그로상생 측의 설명.
1.고려인들이 강제 이주를 떠났던 라스돌리냐 간이역.<br>2.아그로상생 루비노비카 농장 직원들과 대순진리회 관계자들.
보재 이상설 선생 유허비.
농장은 49년간 임대된다. 하지만 수로 등 기반시설을 인수했기 때문에 땅은 영구 임대나 다름없다. 아그로상생 농장이 제자리를 찾아가자 이곳을 떠났던 고려인들이 조상의 터전인 연해주를 다시 찾고 있고, 마을을 떠났던 러시아 사람들도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그로상생 농장이 지역경제를 살리는 구세주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루비노브카 농장을 책임지는 관리인은 고려인 3세 양 일리야(57) 씨다. 그의 깊게 패인 주름은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 후손의 어려웠던 삶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을 거쳐 1995년 연해주로 돌아와 나홋카 근처에서 채소농사를 짓다 실패해 실의에 빠졌었다. 다행히 지금은 두 아들, 처남과 함께 아그로상생에서 일하고 있다. “전에는 러시아 사람들이 우리를 한 수 낮게 평가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우리가 러시아 사람들을 관리하고 있어 신분이 역전된 셈이다. 아그로상생 농장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연해주에 사는 고려인들에게 자부심 그 자체다.”
2002년부터 본격적인 농사를 짓기 시작한 아그로상생은 곡물창고, 정미소, 주유소, 건조시설, 기숙사, 메주 제조시설 등을 하나 둘 갖추며 대규모 영농 기반시설도 착실히 마련하고 있다. 트랙터, 콤바인, 트럭, 자동차 등을 이용한 기계화 농업 덕분에 드넓은 농장의 영농 인원은 733명에 불과하다. 올해 아그로상생 농장에 파종된 콩은 500t에 이른다. 날씨만 좋다면 1만t을 수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곳 콩은 작고 단단하며 고소하다. 미국이나 유럽의 유전자 변형 콩과는 차원이 다르다. 올해부터는 발해농원(대표 황교익)이 아그로상생과 대두분말 공급계약을 맺고 연해주 콩을 본격적으로 들여오고 있다. 호롤제분공장에는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발한 3단 냉각기류식 분쇄기를 설치했다. 기계가 돌아가자 1t짜리 포대에 담긴 콩은 석별, 탈피, 정미기를 거쳐 순식간에 초미세 대두분말로 변했다.
단단하고 고소한 콩 전두부 원료
연해주 대두분말은 전부두의 원료다. 전두부는 콩을 미세분말화해 비지를 제거하지 않고 굳히는 차세대 두부로, 전 세계 식품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발해농원은 7월부터 전두부 제품을 출시, 본격적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갈 예정이다. 또 대두분말과 전두부 제조기술을 기존 두부업체에 공급해 두부시장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한다는 전략도 세우고 있다.
아그로상생에서 생산된 각종 농산물은 ‘민족의 곳간’ 역할은 물론, ‘발해’ 상표를 달고 세계 유명 식품업계와 당당하게 경쟁하는 날을 꿈꾸고 있다. 황 대표는 “연해주 콩뿐만 아니라 지난해 국산 콩 200t을 농협 등을 통해 수매했고, 올해는 콩 농가와 계약 재배를 통해 1000t을 수매할 계획”이라며 가공산업을 통해 유명 식품브랜드로 성장시키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해마다 인구가 줄어드는 연해주 정부는 더 많은 외국 자본과 인력을 기다리고 있다. 그만큼 농장 운영이 순조롭다는 이야기다. 아그로상생 안치영 전무는 “우리 농업도 공세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 개방 확대가 불가피하다면 해외농장 개척 등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며 “자국영농법인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식량주권을 지키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농장에서 돌아오는 길, 우수리스크 인근 수이폰 강가에는 보재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가 따가운 햇볕 아래 서 있었다.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를 찾았다가 결국 ‘돌아오지 못한 밀사’가 된 선생의 유해는 이곳 강물에 뿌려졌다. 민족의 한과 눈물을 뒤로하고, 두만강으로 흘러드는 연해주 강물 위로 대륙영농 꿈은 차근차근 영글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