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1일 서울극장에서 열린 ‘눈눈이이’ 시사회에 참석한 곽경택 감독.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형사의 활약이 돋보인다. 힘의 중심축이 범죄자에서 형사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극과 극으로 대치하던 두 사람의 날카로운 감정이 의외의 방향으로 변모되기도 한다. 팽팽한 라이벌 의식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미묘한 우정까지 형성되는 과정이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눈눈이이’는 이렇게 범죄영화의 클리셰를 적극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이 영화가 매우 대중적인 플롯에 따라 만들어졌음을 방증한다.
“예전부터 돈과 욕심, 복수가 어우러진 범죄수사극이나 액션수사극을 만들고 싶었다. ‘눈눈이이’는 경쾌하고 스피디하며,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장르영화다.”
서울 도심에서 일어난 신용금고 수송차량 강탈사건과 제주도 공항에서 발생한 밀수금괴 도난사건의 주인공은 뛰어난 지능의 안현민(차승원 분). 그는 대담하게도 신용금고 수송차량 강탈사건에서 검거율 100%를 자랑하는 수사반장 백성찬을 사칭해 돈을 빼돌린다. 이에 사직서를 내고 바퀴벌레 잡는 살충회사로 이직을 결심하고 있던 백성찬 반장(한석규 분)은 안현민 검거에 나선다.
한석규·차승원 냉정과 열정의 연기 대결
이야기는 먼저 미끼를 던진 안현민의 페이스대로 흘러간다. 그러다 백 반장의 노하우가 발휘되면서 안현민이 궁지에 몰리고 그 과정에서 안현민의 진짜 복수 대상이 밝혀진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인류 최초의 성문법전인 함무라비 법전의 한 구절을 인용한 영화 제목은 복수의 뜻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차승원은 차가우면서도 복수에 사로잡힌 안현민이란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검은색 머리와 슈트로 날카로움을 만들었고, 동물적 본능과 직업적 감각으로 집요하게 범인을 추적하는 백발의 한석규는 능글맞으면서도 강인한 백 반장 캐릭터를 완성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부딪치는 장면을 보면, 역시 한석규의 내공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믹의 제왕에서 연기 폭을 넓히고 있는 차승원은 아직 2% 모자라고 좀더 수련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석규 씨가 ‘연기자에게 변신은 형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석규와 차승원이라는 배우의 관록은 엄청나다. 신인배우들은 흉내낼 수도 없는, 하나의 표정에서도 여러 개의 메시지가 뿜어져 나온다. 한석규 씨는 사납게 생긴 눈이 마치 사자 같다. 머리 색깔도 백발로 해서 수사자 같은 느낌을 만들었다. 차승원 씨는 젠틀하고 스타일이 좋다. 훤칠한 키와 스타일리시한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했다.”
‘눈눈이이’는 감각적 편집의 속도감에 모든 것을 의지한 속도의 영화다. 처음에는 ‘우리 형’의 안권태 감독이 영화를 만들다가 제작사와의 관계가 어려워지자 ‘친구’ ‘태풍’의 곽경택 감독이 투입돼 후반 촬영을 맡았다. 따라서 이 영화의 크레디트에는 두 명의 감독 이름이 올라가 있다.
후반 편집을 주도한 곽 감독은 자신의 다른 영화들보다 한 템포 빠른 편집으로 영화를 마무리했다. 이야기의 양에 비해 상영시간은 100분이 안 될 정도로 편집이 군더더기 없다. 숨 돌릴 틈 없이 전개되는 편집은 상투적인 이야기 전개의 단점을 어느 정도 가려준다.
안현민이 백 반장에게 미끼를 던지는 방법은, 그가 강탈한 현금 수송차량의 현금 일부를 백성찬에게 소포로 배달하는 것이다. 백 반장은 안현민을 조사하면서 그의 다음 범행이 금괴 밀수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대대적인 작전을 펼치지만, 안현민은 백성찬과의 맞대결에서 압승한다. 백 반장 눈앞에서 500kg의 금괴를 빼돌린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백 반장은 안현민의 핵심 부하를 사로잡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모진 심문으로 안현민의 뒤를 캐낸다.
‘눈눈이이’는 안현민과 백 반장의 머리싸움에 이야기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서로간의 일진일퇴가 반복된다. 안현민이 백 반장을 따돌리고 한 건 올리는가 싶으면 곧바로 백 반장이 안현민의 뒤를 따라붙는다.
‘눈눈이이’의 진짜 재미는 안현민과 백 반장 사이에 정서적 소통이 시작되면서부터다. 흔한 범죄영화 아류에 불과했던 이야기들은 안현민의 공격적 접근으로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된다. 왜 안현민은 백 반장에게 자신의 목숨이 걸린 뜻밖의 제안을 하는가. 백 반장은 안현민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두 남자 사이의 소통이 이뤄진다. 마치 ‘쇼생크 탈출’의 후반부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이어지지만, 속도감 있는 편집은 관객들이 자신의 기억을 헤집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얄미운 놈 때리기 시원한 대리만족 느낄 것”
백성찬 반장 역의 한석규(왼쪽)와 지능범 안현민 역의 차승원. ‘눈눈이이’는 철저하게 백성찬과 안현민의 버디무비다.
‘눈눈이이’는 철저하게 안현민과 백성찬의 버디무비다. 물론 낮에는 금은방 사장이며 밤에는 트랜스젠더 클럽 마담인 안토니오(이병준 분)의 연기가 웃음을 주고, 기업체를 움직이는 물욕의 화신인 냉혈한 김현태 역의 송영창이 카리스마를 발휘하지만 ‘눈눈이이’는 차승원과 한석규에게 거의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다. 188cm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도시적 감성의 차승원과 능글맞으면서도 범죄자 추적에 몸을 던지는 한석규는 영화의 시작이며 끝이다.
하지만 단역들의 연기 조련이 덜 돼서 전체 흐름을 깨고 이야기의 치밀한 전개를 방해한다. 또 설정 자체가 낯익은 방식이어서 캐릭터에 새로움을 주는 것도 한계가 있고 반전효과도 신선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눈눈이이’가 장르영화의 아류에서는 가까스로 벗어났지만, 새로운 재미나 충격을 주지 못하고 익숙한 공식의 변주에 그치는 이유다.
“세상 살다 보면 법에 호소하기 전에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 실제로는 그럴 수 없지만, ‘눈눈이이’를 보면 시원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