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주 ‘Wormhole’, 형광아크릴판에 형광색실, 블랙라이트 조명(2008)
크게 보아 추상미술에 속하는 옵티컬 아트는 색채의 대비, 패턴, 숨은 이미지 등을 이용해 착시 현상을 유도하는 미술사조다. 1950년대를 장악했던 추상표현주의가 제1,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실존과 삶을 강조하며 작가 개인의 주관적 경험을 중시한 데 비해, 옵티컬 아트는 순수한 시각적 반응만을 추구했다. 대표작가로는 빅터 바자렐리(Victor Vasarely), 브리짓 라일리(Bridget Riley)가 있으며, 이후 움직임과 관련된 뉴미디어 아트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시는 21세기 들어 한국에서 펼쳐지는 옵티컬 아트의 새로운 흐름을 점검한다. 과거 옵티컬 아트가 단순히 시각적 효과와 지각 현상에 치중했다면, 최근의 디지털 시대에서 옵티컬 아트는 색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시각적 이미지가 범람하고,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보여주는 하이퍼 리얼(hyper-real) 시대를 맞아 사람들이 사물과 현상을 인지하는 상황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디지털 옵티컬 아트 현주소 확인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기하학적 상상(Geometric Illusions)’이다. 이 섹션에는 기하학적 형태로 망막에 잔상 효과를 유발하는 작품이 전시된다. 작품 속의 선들은 실제 움직이지 않지만 요동치고 휘어 보인다. 고낙범, 탐리, 이중근은 각각 색점, 색면, 독특한 형상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시각적 경쾌함과 운동감을 흥미롭게 표현하고 있으며, 김순희와 나인주는 거울과 형광물질을 활용해 왜곡된 입체 공간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이정승원은 ‘포스트잇’이라는 특이한 재료를 벽에 무수히 붙였는데, 이는 디지털 이미지의 기초 단위인 픽셀을 연상하게 한다.
이정승원 ‘Gigantic facade’, 포스트잇(2008)(왼) 이창원 ‘Shadow of Heroes’, 나무, 철판에 찻잎(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