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란 ‘재미를 통한 창조적 활동의 모든 것’이다. 여름철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어린이들.
왜 갑자기 동화 이야기인가 하고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의 교육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아직도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기기 어려운 싸움에서 이겨내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 이 이야기가 먼저 떠오른다. 토끼는 달리기를 잘하고 거북이는 수영을 잘하는데 그 둘에게 하나의 경기를 붙여 못하는 것을 잘할 때까지 하도록 강요하고, 둘 중 하나는 낙오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동화에서 중요한 대목 중 하나는 거북이가 자신의 신체조건이 수영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아니면 수영을 잘하면서도 그것이 장점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놀토에 가장 하고 싶은 여가활동은 ‘부모와의 여행’
‘school’이 학교를 뜻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school의 어원인 schole(스콜레)가 여가를 의미하는 ‘leisure’의 또 다른 어원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가(leisure)라는 단어의 어원은 그리스어인 schole(scole)(자기 생활공간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와 라틴어 licere(자유롭게 되다)에서 유래했다. 이렇게 어원을 따라가다 보면 학교는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생활방식을 배우는 곳이며,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놀이를 통해 이러한 생활방식을 배워가야 함을 알 수 있다. 학자들이 아동 시기를 ‘놀이 시기(toy age)’라고 부를 정도로 어린이들에게는 놀이를 통한 학습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의 교육환경은 다양한 놀이를 통해 학습경험을 제공하지 못한 채 오히려 동화에서처럼 달리기만 강요해 수영선수로 클 수 있는 아이들을 좌절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이유가 뭘까. 여가가 배제된 학습환경 때문이다. 여기서 여가란 한마디로 ‘재미를 통한 창조적 활동의 모든 것’을 말한다. 그 어원처럼 억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활동을 통해 재미를 느끼고 이것이 창의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뜻한다. 아이들의 게임중독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세미나에서 한 교육 전문가가 “아이들은 게임 자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게임의 자율 측면을 좋아하는 것이다. 아마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현재의 학교교육 제도 안에서 수업으로 가르친다면 아이들은 더 이상 그것에 중독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말한 게 기억난다. 현 교육환경이 아이들에게 재미와 자유를 주지 못하고 획일적인 학습과정만 제공한다는 사실을 비판한 것이겠지만, 그 이상의 중요한 점을 시사했다. 즉 우리는 ‘자유로운 무엇인가’를 통해 재미와 창의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아이들은 더욱 그러하다.
우리나라 10대 청소년들의 여가활동을 조사해본 결과 10명 중 6명은 TV를 시청하며, 10명 중 5명은 게임을 하고, 10명 중 6명은 컴퓨터를 통해 미니홈피 관리나 인터넷 서핑을 한다고 응답했다. 예상대로 다른 연령대보다 인터넷 환경에 익숙하며 온라인 여가문화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놀토(주5일 수업제)에 가장 하고 싶은 여가활동을 질문했을 때 가장 많은 10대 청소년들의 대답은 ‘부모와 함께 여행하기’였다. 10대 청소년들이 대부분 친구들과 또는 혼자서 온라인 게임 등을 즐기며, 놀토에 부모와 함께 하는 활동으로는 외식·목욕·등산 등임을 감안할 때 매우 놀라운 대답이다. 우리 아이들은 부모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여행을 통해 체험하고 싶어하지만, 현실 속에서 거북이로 살도록 강요받으며 해방감이나 자유로움을 게임 같은 온라인 가상공간에서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부모와 어떤 여행을 원하는 것일까? 여러분의 가족여행을 기억해보자. 일단 부모인 내가 예산과 휴가일에 맞춰 여행지를 선택하고 숙박을 예약한 뒤 아이들에게 알려주지는 않았는가? 여행장소로 가서 가족이 함께 한 새롭고 재미난 활동은 무엇인가? 여행 간 경험은 있지만 무엇을 했는지 기억에 없다면 문제가 있다. 앞서 말했듯 여가는 재미를 통해 창조적 활동을 만들어낸다. 즉 여가적 경험이란 즐겁고 새로운 체험을 늘려가는 것이다. 원하지 않은 여행이나 내 의사가 포함되지 않은 계획은 새롭거나 즐겁지 않다. 여행을 다녀본 사람들은 안다. 여행을 통해 얻는 기쁨과 놀라움보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계획하고 기다리는 즐거움이 더 크다는 것을!
그렇다면 한 가지 답이 나온다. 자녀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물론 자녀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른다면(거북이처럼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원하는지 모르는 경우)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맞는 것을 찾아줘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여가적 경험이다.
여가적 경험은 어릴 때부터 놀이 통해 자연스럽게 접해야
여기서 두 번째 답이 나온다. 여가적 경험은 어릴 때부터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아이들이 안타까운 것은 놀이도 학습한다는 것이다. 국어나 수학처럼. 바둑을 학원에서 배우고 바이올린, 플루트 같은 악기 하나는 배워야 하며, 체육활동도 학교 체육교과에 맞춰 선행학습을 하는 아이들이 즐겁고 창의적인 여가적 경험을 늘려간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주위의 새로운 물건을 탐색하고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놀이이며 즐거운 여가적 경험이다.
최근 대안학교를 찾고 귀농하는 젊은 부모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아이들에게 그들만의 즐거운 놀이문화를 찾아주자는 의식이다. 이들에게 ‘앎’은 곧 ‘놂’이다. 다양한 여가적 체험을 통해 창의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실천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최연소(19세)로 당선된 홍지현(성균관대 약학과) 양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마무리하려 한다. 어릴 때부터 수학적 상상력을 키워 수학영재란 말을 듣던 홍양에게 여가시간에 즐거움을 주는 것은 연극을 보고 희곡을 읽는 것이었다. 1년에 144편의 연극을 보고 100편의 희곡을 읽는 집중력으로 창작희곡을 발표했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것은, 자신이 잘하는 수학적 능력으로 수열의 법칙을 찾듯 연극이나 희곡 속 규칙성을 발견해 극작가로서의 상상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 학생이 영재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당신의 아이도 잘하는 일을 통해 즐겁게 할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준다면 어느 분야에서나 영재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수학이나 영어가 아니라 만화 그리기, 농구, 게임 분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