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국가기상센터. 이곳에서 모든 기상예보가 만들어진다.
휴가철을 맞아 산으로 바다로 떠났던 국민은 기상청에 욕을 해댔다. 주말을 망쳤다는 원성이 기상청에 메아리쳤다. 국민의 질타는 장마전선을 탄 듯 전국으로 확대됐고 급기야 정부도 기상청에 등을 돌렸다. “해외에서 기상예보 전문가를 영입하겠다”는 이만의 환경부 장관의 발언까지 나왔을 정도다. 자신감도 의욕도 잃은 기상청의 기상도는 오늘도 ‘흐림’이다.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서울에 부슬비가 날리던 7월23일 오후,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 자리한 기상청을 찾았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기상청의 요즘이 궁금했다.
지형지세 특성상 정확한 예보 어려워 … 평균 적중률 85% 상회
예상던 대로 기상청은 북새통을 이뤘다. 기상청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기자들과 이에 대응하는 기상청 직원들의 발걸음이 바빴다. 기자들의 질문은 대충 이랬다. “일기예보가 틀린 이유는 뭡니까?” “대책은 있나요?” “외국 전문가 영입에 대한 기상청 입장은?”
기상청 직원들은 한숨부터 내쉰다. 이미 답이 없는 질문들…. “우리가 일부러 잘못된 일기예보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는 하소연이 목까지 차오르지만 기상예보를 맞히지 못한 ‘죄인’에겐 이미 입이 없다. 기상청 대변인실 김용진 기상사무관의 말이다.
“우리도 할 말은 많아요. 하지만 기상예보가 틀린 건 사실이니 무슨 말을 하겠어요. 더 정확한 예보를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죠. 그래도 굳이 한마디 한다면 국민의 요구 수준이 최근 많이 높아졌어요. 주 5일 근무가 일반화되면서 특히 주말 일기예보가 중요해졌죠. 국민의 생명과 재산 지키기를 존재 이유로 하는 기상청이 이제는 국민의 웰빙(참살이)까지 책임지는 관청이 된 거예요.(웃음)”
기상청 직원들의 고민을 듣고 싶었다. 하늘만 쳐다보고 사는 사람의 남모를 속병. “힘들죠?”라는 질문에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푸념을 쏟아냈다. 20년 넘게 예보관 생활을 해온 양진관 기상청 예보상황 2과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대화 내내 “하루 24시간을 뜬 눈으로 지샌 지난 세월, 그리고 지금의 처지가 안타깝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국민 생활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보니 ‘국민의 외압’이 때론 힘이 되지만, 요즘 같은 때는 세상 무엇보다 무거운 짐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기상청이 내걸고 있는 캐치프레이즈 ‘하늘을 친구처럼 국민을 하늘처럼’이 요즘처럼 무거운 적이 없다”며 양 과장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양 과장은 예보가 틀린 이유, 예보관들의 고민을 조목조목 들려줬다. 그의 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우리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그의 요즘 심경을 대변했다.
“우리나라 지형지세의 특성 때문에 예보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기상청은 평균 85% 이상의 적중률을 보이고 있지만 국민은 그렇게 느끼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가 다 잘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기상예보가 많이 틀렸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보관들의 심정도 좀 이해해줬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3주 전 주말에도 비가 온다고 했는데 서울 대부분 지역에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서울 북부와 경기도 일부 지역에는 잠시 비가 왔지만…. 당시 강수 확률이 40% 정도였는데 예보관은 이 수치를 놓고 ‘비가 안 올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던 겁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결정이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주말에 내린 100mm 넘는 비를 예측하지 못한 게 결정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잘했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다만 예보를 결정하는 우리의 고민도 이해해주길 바란다는 겁니다.”
예보관들 ‘결정’해야 할 순간 되면 초긴장 스트레스
기상예보가 빗나가자 많은 언론은 기상청의 장비, 특히 슈퍼컴퓨터를 문제 삼았다. 예보관의 자질도 도마에 올랐다. 예측 모델이 잘못됐느니, 관측소가 턱없이 부족하다느니 하는 말도 언론에 등장했다. 그러나 정작 기상청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현재 기상청은 5개 기상예보팀을 운영 중이다.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며 하루 네 번 기상예보를 전한다. 예보관의 예보 권한은 누구의 침해도 받지 않는다. 비가 온다 안 온다, 날씨가 흐리다 맑다는 결정이 예보관의 분석과 판단에 맡겨지는 것이다. 이들의 업무평가도 예보 적중률에 의해 결정된다. 예보관들이 입을 맞춘 듯 “결정(decision)을 해야 하는 순간이 되면 피가 마르고 입이 바짝바짝 탄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권한과 자유만큼 책임이 따르는 직업.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상청이 제공하는 인터넷 일기예보 방송 모습(왼쪽)과 일기도를 그리고 있는 예보실 직원.
24시간 운영되는 기상청 내 국가기상센터는 예보관들에겐 전쟁터나 다름없다. 사흘에 한 번꼴로 밤샘 근무를 해야 하는 어려움보다 예보를 위해 마이크를 잡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고 한다. 5000만 국민을 시청자로 둔 예보관, 외로운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취재 중에 만난 한 예보관은 “나는 여름이 싫다. 기상이변이 속출하는…”이라고 말하며 국가기상센터로 종종걸음을 쳤다. 예보관실 책임자 김식영 예보총괄과장은 “통계는 없지만 아마 예보관 수명이 평균보다 짧을 것이다. 예보관의 판단이 옳았는지의 여부가 짧게는 12시간, 길게는 24시간 안에 판명나니 피가 마르지 않을 수 없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최근의 오보 논란에 대해 기상청은 “기상예보의 정확도를 제고하기 위한 대책은 단기적으로 마련되는 게 아니지만, 첨단 날씨예보 장비를 도입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함으로써 ‘오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공은 이미 정부와 언론에 넘어간 상태. 이희구 기상청 정보인프라기술과장도 기자를 붙잡고 속상함을 토로했다. 그는 “우리 이야기도 좀 써달라.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신신당부하며 해외 전문가 영입 문제에 대해 조심스럽게, 그러나 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게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국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기상예보의 변수와 방법이 다양해 적응하는 데만 최소 1년은 걸립니다. 그만큼 아무리 유능한 외국 전문가가 온다 해도 기상예보 정확도를 높이려면 최소 몇 년은 한국 상황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과를 바로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정치적 판단일 뿐입니다.”
볼멘소리를 늘어놓지만 기상예보에 문제가 있음을 부인하는 기상청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다만 “몇 번의 실수나 오판으로 기상청이 뭇매를 맞는 일이 억울하다”고 할 뿐이었다. 많은 국민은 기상예보가 틀리면 부리나케 기상청으로 전화를 걸고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 비판을 쏟아낸다. 이런 민원이 하루에도 수백 통은 넘는다.
국민의 항의를 받는 부서 가운데 하나인 기상산업생활본부 자료관리서비스팀은 요즘 기상청에서 가장 바쁜 부서로 통한다. 전쟁을 치르듯 하루 수백 통의 민원전화와 인터넷 질의를 받아내기 때문이다. 국민과 살을 맞댄 최전선. 고작 6~7명으로 구성된 부서가 감당하기엔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팀장 오용해 사무관의 말이다.
“때로는 너무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기상예보도 인간이 하는 일인데…. 육두문자를 써가며 항의하는 사람과 통화할 때면 가슴이 아플 정도예요. 대부분 여직원이라 어려움도 많고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데 기상청 예보가 잘못돼 일을 못했다’는 식의 전화를 받으면 우리도 못내 미안해요. 하지만 항의를 하더라도 제발 욕을 하거나 비방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기상청의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는 사람은 하루 평균 60만명이 넘는다. 어느 정부부처와 비교해도 많은 숫자다. 그만큼 기상청은 국민의 가까운 곳에 있다. 하늘만 바라보며 비, 바람과 싸우는 사람들. 기상청은 오늘도 하늘과 싸우며 국민과 소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