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국내 기술로 제작한 한국형 최초 우주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6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사진 제공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6월 21일 누리호가 굉음과 함께 발사대를 떠난 후 42분 만에 남극 세종기지에서 첫 번째 교신에 성공했다. 그로부터 1시간가량 지난 뒤에는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지상국에서 다시 교신했다. 저녁에는 다시 세종기지와 세 번째 교신이 있었고, 이후 대전과 남극을 오가며 교신하는 과정에서 모든 위성의 부품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파악됐다. 이제 위성에 간단한 명령을 내리거나 정보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위성이 발사체로부터 얼마나 깔끔하고 안정적으로 분리됐는지 처음 분리된 성능검증위성 상태도 굉장히 좋았다.
이제 곧 성능검증위성 안에 포함된 4기의 큐브위성이 이틀 간격으로 하나씩 사출된다. 미세먼지를 관측하는 연세대 미먼(MIMAN)은 이름에 여러 가지 귀여운 중의적 표현을 담았다. 가장 무겁고 큰 조선대 스텝큐브랩 2호(STEP Cube Lab-II)는 백두산 천지를, 서울대 스누그라이트 2호(SNUGLITE-II)는 날씨와 대기를 관측한다. KAIST의 랑데브(RANDEV)는 한국 지형을 만날 예정이다. 작은 수박 크기만 한 초소형 위성들은 각 대학의 젊은 연구자들이 주축이 돼 만들었다. 크기도 작고 수명도 6개월에서 1년 정도라 길다고 보긴 어렵지만, 향후 민간에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지도 모를 가능성을 담고 있다.
이제 우리는 원하면 언제든 우주로 실용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는 나라가 됐다. 예전 나로호 발사 때와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이것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 연구소와 기업들이 셀 수 없이 다양하고 복잡한 작업을 전부 달성해 이룬 성과하는 점이다. 이 말은 곧 발사 과정에서 어떤 결과가 나와도 모든 정보와 데이터를 꼼꼼하게 얻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세부적인 여러 분석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오직 대한민국 독자 기술이라 가능한 일이다.
우리 머리 위에는 매일 수많은 위성이 지나간다. 이제 현대 사회는 위성 없이는 생활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위성 기술이 삶의 세밀한 부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중계되는 경기를 보거나 내일 날씨를 미리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위성이 필요하고, 길을 찾거나 긴급한 조난 상황에서 통신할 때, 심지어 자연이 던지는 궁극적인 질문을 과학으로 답할 때도 위성을 활용한다. 이미 한국은 인공위성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아무리 위성을 잘 만들어도 다른 나라 발사체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쇼핑몰에서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도 배송 시스템이 없다면 팔 수 없다. 외부업체에 위탁해도 언제 배송이 중단될지, 배송비가 얼마나 오를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불안하기 마련이다. 이럴 때 만약 우리가 직접 배송할 수 있다면, 주도권을 갖고 원할 때마다 만들어서 팔 수 있다. 우주탐사에 대한 모든 선택에서 자유로워지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모두가 숨죽여 지켜본 누리호 발사
두 번째 도전 끝에 발사에 성공한 누리호. [뉴스1]
발사체를 개발해 우주로 올리는 건 마치 흔들리는 배 위에서 완벽하게 도미노를 세우는 일과 같다. 완벽하게 방음 처리된 거대한 무진동 공간에서 도미노를 세워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까딱 잘못하면 전부 무너질 수 있다. 도미노 수천 개를 끝까지 세워야 드디어 완료되는 것이다. 그럼 물 위에 떠 있는 배에서는 어떨까. 아무리 집중하고 노력해도 방해 요인이 많아 끝까지 세우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바람, 습도, 낙뢰, 구름뿐 아니라 우주물체 충돌 가능성이나 심지어 태양 활동까지 확인해야 한다. 만약 센서 부품에만 문제가 있어 단순 교체나 수리로 해결 가능하면 예비일인 6월 23일 전에 발사할 수 있었다. 발사 예비일 안에 발사가 어렵다면 다시 국제적으로 통보 절차를 거쳐야 하기에 꽤 늦춰질 상황이었다. 연구진은 침착하게 정확한 원인을 파악했고, 빠르게 환경을 보완했다.
이윽고 6월 21일, 발사의 날이 밝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송부터 기립, 점검, 연료 주입까지 모든 과정이 너무도 순조로웠다. 발사 10분 전이 되자 발사 자동 운용 프로그램에 진입했고, 이제 사람의 손을 떠나 초읽기가 시작됐다. 10초 전, 긴장한 음성이 생중계 화면에서 흘러나왔고, 2초 전 점화를 시작한 1단 로켓은 곧 멋지게 한 편의 수묵화처럼 하늘을 가로질렀다. 1단 로켓 분리와 페어링 분리, 그리고 2단 분리 이후 성능검증위성과 위성모사체가 분리될 때까지 16분이 조금 넘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아름답고 완벽한 대한민국 연구진과 마음을 모아 응원한 국민의 승리였다.
두 번째 시도 만에 이룬 믿기 힘든 결실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한국은 세계 7번째로 1500㎏급 실용위성을 지구 저궤도(600~800㎞)에 수송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게 됐다. [뉴스1]
이번 2차 발사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산화제 레벨 센서와 관련된 부품을 빠르게 교체할 수 있었던 것도 3차 발사용 부품을 미리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비 부품들도 이미 있고, 세 번째 누리호를 조립하는 상황이라 내년 상반기에 예정된 발사도 멋지게 해내리라 믿는다. 다만 이번에 완벽한 성공을 거뒀다고 3차 발사도 멋지게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가 아플 때 병원에서 치료받고 낫는다 해도, 똑같은 부위 혹은 조금 다른 증상으로 또 아프고 고생할 수 있지 않은가. 아무리 꼼꼼히 검토하고 노력해도 예기치 않은 문제는 반드시 생긴다. 물론 이번 누리호 2차 발사의 무결점 성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성과다. 처음으로 우리는 100점을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고, 만점짜리 시험지와 답안지를 갖게 됐다. 이번 경험을 토대로 나아갈 다음 단계 역시 많은 기술적 도전이 필요하며, 모두의 지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계속 그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도록 아낌없는 응원을 부탁드린다.
이번 발사는 얼마나 정확히 목적지에 물건을 배달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성능 점검 시간이었다. 발사 직후 창공으로 멋지게 날아오른 배송 차량은 완벽하게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신호를 여러 차례 보내왔고, 지상국에서는 소비자가 ‘구매 확정’ 버튼을 눌렀다는 희소식을 전해왔다. 대한민국 우주산업은 이제 별점 다섯 개를 확인했으며, 국제사회에 더 많은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경이로운 기술을 선보이고자 신중한 발걸음을 천천히 옮길 것이다.
궤도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