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K-풍수 스토리, 관광 상품으로 키워야

[안영배의 웰빙 풍수] 기천석, 성제정, 정독도서관은 터 기운 다양하게 느낄 수 있는 풍수 학습장

  • 안영배 미국 캐롤라인대 철학과 교수(풍수학 박사)

    입력2024-09-2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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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독도서관에서 공부하거나 소원을 빌면 고시 등 시험에 합격하거나 학문적 성취를 이룬다고 전해진다. [안영배 제공]

    정독도서관에서 공부하거나 소원을 빌면 고시 등 시험에 합격하거나 학문적 성취를 이룬다고 전해진다. [안영배 제공]

    서울 경복궁 옆 동네인 북촌은 한국 전통문화를 이어오며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잘 보여주는 명소다. 최근에는 국내 MZ세대는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로 늘 북적거리는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북촌은 한옥 스테이와 한식 등 한국인의 삶을 직접 즐겨보려는 외국인들의 수요에 부응해 다양한 문화상품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아쉬운 점은 조선 권력층이 대거 모여 살던 북촌에서 풍수 명당 문화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북촌의 진수인 풍수 명당은 외국인의 주목을 끄는 강력한 K-컬처가 될 수 있다.

    필자는 올해 서울시가 운영하는 북촌문화센터의 북촌마을여행 체험 프로그램을 두 차례 이끌면서 북촌의 이곳저곳을 자세히 둘러봤다. ‘기운탐방’이라는 프로그램 취지에 맞춰 답사팀을 이끌고 북촌의 풍수 명당을 체험해보는 행사였다. 결론적으로 북촌은 ‘터 기운’을 다양하게 느낄 수 있는 훌륭한 풍수 보고(寶庫)였다. 쾌적한 가을 날씨가 이어지는 요즘, 그간 극한 무더위로 지쳤던 몸과 마음을 힐링할 수 있는 북촌 명당을 소개한다.

    하늘 기운 담긴 돌계단과 우물

    하늘 에너지를 담고 있는 기천석. [안영배 제공]

    하늘 에너지를 담고 있는 기천석. [안영배 제공]

    북촌 북쪽 끝에서부터 시작해보자. 북악산자락 칠보사(종로구 삼청동)를 지나 고갯길을 좀 더 올라가다 보면 기천석(祈天石)이라고 쓰인 커다란 바위와 맞닥뜨리게 된다. 지금은 가수 전인권 씨 자택의 담장 역할을 하는 이 바위는 이름 그대로 ‘하늘에 기원하는 돌 제단’이다.

    바위에는 ‘祈天石 康日菴 徐月堂 咸豊三年癸丑仲春書(기천석 강일암 서월당 함풍삼년계축중춘서)’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 조선 철종 3년(1852) 2월 당시 정권 실세였던 김좌근, 김재근 등 장동 김씨들이 대대손손 권력을 누리기를 하늘에 빌며 새긴 글이라고 전해진다. 또 기천석은 선교(仙敎), 강일암은 불교, 서월당은 유교를 상징하기에 유불선 삼교를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분명한 것은 기천석이 기도 혹은 제의 장소로 쓰일 만큼 풍수적으로 하늘의 에너지(기운)를 머금고 있는 혈석(穴石)이라는 점이다. 오행으로는 금(金) 기운이 강해 권력이나 명예 운에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북촌 토박이 정도만 알고 있는 이 영험한 바위에 잠시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충전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기천석에서 30m가량 내려오면 성제정(星祭井)이라는 우물이 있다. 별에 제사를 지내는 우물이라는 뜻으로, 이 역시 하늘 기운이 담긴 곳이다. 안내판은 이 우물의 물이 조선 후기 정조의 수라상에 진상됐다고 소개하고 있지만, 이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성수(聖水)로 대접받아온 듯하다. 조선 전기에 국가 차원의 제사를 관장하는 소격서에서 하늘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물이라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소격서는 고려시대에는 개경에 있다가 조선의 한양 천도와 더불어 성제정 인근(현 삼청파출소 부근)으로 이사 왔다.

    오래전부터 성수(聖水)로 인정받아온 성제정. [안영배 제공]

    오래전부터 성수(聖水)로 인정받아온 성제정. [안영배 제공]

    ‌흔히 명당 터에서 나오는 물은 건강에 좋은 육각수 구조로 알려져 있다. 정조가 성제정 물을 마시고 피부병이 나았다는 설화도 이런 배경과 관련 있을 것이다. 지금 성제정 물은 음용수로 사용할 수 없어 손을 씻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이처럼 옛 사람들은 기천석에서 하늘에 소원을 빌고, 그 아래 성제정에서 물을 마심으로써 자연으로부터 좋은 기운을 받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촌에는 공부가 잘 되는 빼어난 명당 터도 있다. 바로 정독도서관으로, 학문 기운이 강한 곳이다. 터의 내력이 이를 증명한다. 대한제국 시절인 1900년 10월 우리나라 최초로 관립중학교가 이곳에 건립된 이후 수많은 인재가 배출됐다. 관립한성고등학교, 경성고등보통학교,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경기중·고등학교로 개칭되면서 나라의 동량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 곳이다. 1976년 경기고교가 강남으로 이전한 후 서울시가 이곳을 매입해 현재 시립도서관인 정독도서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학문 기운 넘쳐나는 정독도서관

    정독도서관 터는 학교로 사용되기 전까지 조선에서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살았다. 도서관 앞마당 정자와 물레방아가 설치된 쪽은 조선 전기 사육신의 한 사람이자 훈민정음 창제에 공헌한 성삼문이 살던 집터였고, 도서관부설 서울교육박물관은 갑신정변 주역인 김옥균의 집이었으며, 도서관 입구 쪽에는 조선 말 독립신문을 발행한 서재필이 살았다고 한다. 한편 정독도서관 뒤쪽 언덕배기는 조선 초 청백리로 널리 알려진 맹사성 대감과 그 후손들이 살던 터라고 해서 ‘맹현’으로 불리고 있다.

    정독도서관이 명당 터라는 점은 주변 지형에서도 확인된다. 경복궁 안산인 남산이 가장 수려하면서도 안정된 모습으로 보이는 곳이 이곳 정독도서관이다. 도서관에서 남쪽을 바라봤을 때 종을 반듯하게 엎어놓은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남산이 더 멀리 남쪽 관악산 화기(火氣)를 잘 갈무리하며 터를 편안하게 해주는 게 인상적이다.

    정독도서관은 이곳에서 공부하거나 소원을 빌면 고시 등 시험에 합격하거나 학문적 성취를 이룬다는 소문이 나 있다. 그래서인지 마치 탑돌이처럼 도서관 내 터를 돌면서 마음속으로 성공을 기원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담벼락으로 나뉜 양기와 음기 터

    북촌에서는 길흉 기운을 한꺼번에 체험할 수 있다. 양기가 충만한 곳과 음기가 흉흉한 곳 등 다양한 ‘풍수 학습장’이 갖춰져 있다. 정독도서관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만나는 윤보선가와 헌법재판소 일대가 대표적이다.

    먼저 윤보선가는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을 지낸 윤보선이 어린 시절부터 지냈던 곳이다. 민간가옥으로는 가장 큰 규모인 99칸 저택으로 유명한데, 1870년대 여흥 민씨 집안이 지었다고 한다. 1918년 윤 전 대통령의 아버지 윤치소가 매입한 후 현재도 그 혈족이 살고 있다. 사적 제438호로 지정된 윤보선가는 풍요와 명예의 기운을 고루 갖춘 부귀쌍전(富貴雙全) 명당으로 유명하다. 다만 비공개 가옥이어서 일반인은 대문 앞에서 쳐다만 봐야 한다.

    그런데 윤보선가에서 동남쪽으로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헌번재판소 부지 내 개화파 홍영식이 살던 집터는 그 반대 기운이 강하다. 홍영식은 1884년 김옥균, 서광범, 박영효 등과 함께 나라를 개화하고자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역모로 몰려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홍영식이 치른 대가는 컸다. 그의 아버지 홍순목은 “늙은 신하가 역적을 키웠으니 나라에 큰 죄를 지었다”고 한탄하면서 손자와 함께 독약을 먹고 이 집에서 자결했으며, 그의 아내는 강에 몸을 던지는 참화를 겪었다. 한마디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 그 후 이 집은 국가에 몰수당했다. 고종은 후에 이 집을 미국 선교사 앨런에게 주었고, 앨런은 근대식 종합병원인 광혜원을 세웠다. 현재 헌법재판소 부지인 이곳은 홍영식 집터라는 간판이 새겨져 있는데, 터 기운은 생기(生氣)와는 거리가 먼 음기가 가득하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처럼 극명하게 대비되는 곳도 찾아보기 드물다. 기운에 민감한 체질들은 양기와 음기에서 인체가 각각 어떻게 반응하는지 느낄 수 있다. 좋은 기운에서는 머리가 상쾌하거나 기분이 유쾌하고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끼는 반면, 좋지 않은 기운에서는 두통 같은 머리 아픈 현상이나 불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윤보선가와 광혜원 터(홍영식 집) 사이에는 천연기념물인 백송이 있다. 수령 600년이 넘어가는 백송은 북촌에서 벌어진 격동의 역사를 지켜봤다. 이 백송은 명당 터에 자리 잡고 있다. 나무도 명당 터에 있어야 오랜 기간 잘 자라고 사람들로부터 사랑도 받을 수 있다.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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