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58

..

작은 그림 한 점 사서 집에 걸어두기

[김재준의 다빈치스쿨] 집 안 그림은 일상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활력 불어넣어

  • 김재준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입력2024-10-02 09:00:03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화내지 마.”

    ‘작곡하는 경영학자’로 유명한 김효근이 푸시킨의 시에 곡을 붙여 만든 한국 가곡의 가사 일부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위로받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삶은, 세상은 나를 속이지 않는다. 따라서 화를 낼 필요도 없다. 그저 나를 슬프게 만들 뿐이다.”

    많은 사람이 집을 꾸밀 목적으로 그림을 구매한다. [GETTYIMAGES]

    많은 사람이 집을 꾸밀 목적으로 그림을 구매한다. [GETTYIMAGES]

    그림은 인테리어 ‘끝판왕’

    너무나 슬플 때 위안을 주는 것들이 있다. 세상이 불완전하니 예술이 있다. 슬플 때 슬픈 노래를 들으면 치유가 된다. 그간 슈베르트의 독일 가곡,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들으면서 위안을 받는 사람은 많지만, 집에 걸어둔 그림을 보면서 위로를 받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9월 4일부터 나흘간 열린 ‘프리즈 서울 2024’에 사람들이 몰린 것을 보고 놀랐다.

    오늘의 주제는 ‘그림을 사는 이유’다. 그림을 구매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의문을 나타낸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얼마든지 감상할 수 있는데 굳이 큰돈 들여 집에 그림을 걸어둬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집에 그림을 걸어두는 행위는 단순히 감상 차원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행위는 일종의 순간적인 충격을 줄 뿐이다. 짧고 강렬하지만 이내 끝난다. 그러나 집 안에 그림이 걸려 있으면 매일 마주하면서 천천히 음미할 수 있다. 가까이에서 빈번하게 그림을 본다는 것은 작품과의 관계를 점진적으로 깊게 만들고, 그 과정을 통해 더 깊은 감상을 가능하게 한다.
    그림은 실내 인테리어에서 다른 어떤 물건보다 우위에 있다. 미술 작품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다. 가구나 조명처럼 실용적이지 않지만 공간을 채우고 집 안 분위기를 결정짓는다. 작은 그림을 구입한 뒤 다른 소품들과 함께 배치해보라. 아이가 그린 그림이나 자신이 찍은 사진, 아트 포스터와 함께 벽에 걸어도 좋다. 유명 작품의 복제본은 좋지 않은 선택이지만, 거장의 미술관 전시 포스터는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포스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희소성이 생기고 가격이 오를 가능성도 있다. 필자는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회 포스터를 갖고 있는데, 그 자체로도 매우 의미 있는 소장품이다.

    예술 작품은 공간의 중심이 되며,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창의성을 자극한다. 일상에서 그림을 마주할 때마다 틀에 박힌 일상을 넘어 생활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영감이 생기곤 한다. 특히 미술 작품이 걸린 공간에서 음악을 들으면 창의적인 자극을 받는 일이 흔하다. 이처럼 미술품이 있는 공간은 일상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활력을 불어넣는다. 필자는 비싼 호텔 뷔페를 한 끼 먹는 대신, 작은 그림 한 점을 사서 집에 걸어두는 것이 나은 선택일 수 있다고 가끔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그림을 사는 것은 투자라고도 볼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품 가치가 상승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지나치게 가격에 집착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림을 바라볼 때마다 앞으로 시세 변동만 생각한다면 그림이 주는 본연의 즐거움은 퇴색하기 마련이다. 물론 “나만 좋으면 되지”라는 생각에도 문제는 있다. 처음에는 가격보다 취향과 감상을 우선시하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취향도 변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의 말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많은 사람이 미술품 컬렉션을 시작할 때 신진 작가의 작품이나 유명 작가의 인쇄판을 추천받는다. 그러나 이는 현명한 선택이 아닐 수 있다. 오해하지 말라. 미술품 컬렉션을 시작할 때 거액을 투자할 필요는 없다. 가능하다면 유명 작가의 캔버스 소품, 수채화나 드로잉을 구입하는 것이 훨씬 나은 출발점이다. 유명 작가의 초기 작품은 의외로 저렴하게 구매 가능한 경우가 많고, 작가의 성장 과정과 개성을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

    인쇄판은 그림이 처음이라면 추천하지 않는다. 인쇄판은 작품의 개별적 특성을 약화하며, 진정한 예술적 감동을 줄 가능성이 적다. 미술 작품을 자주 가까이에서 감상할 때 그 안에 담긴 작가의 손길과 감각을 직접적으로 느끼는 것은 중요하다. 그 감각은 인쇄판보다 원화, 특히 수채화나 드로잉에서 더욱 생생하게 전달된다. 인쇄판을 아예 사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돈이 없으니 인쇄판부터 시작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라는 의미다. 특히 사후 대량으로 인쇄된 유명 작가의 작품은 피하는 것이 좋다. 오히려 작은 크기의 유화, 수채화, 드로잉 등이 초보 수집가에게 적합하다.

    동양화 대가 작품, 의외로 싸다

    한국 미술시장에서 서양화는 압도적 인기를 얻고 있다. 이 흐름은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과 유사한 구조다. 특히 강남 아파트 시장과 서양화 시장은 비슷한 양상을 띤다. 반면 동양화는 지방 소도시 주택처럼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있다. 서양화의 인기는 아파트에서 시작됐다. 많은 사람이 아파트 거실에 놓인 소파 뒤 빈 벽을 채우려고 서양화를 찾았다. 하지만 동양화는 그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졌으며, 특히 상하로 긴 동양화는 소파 뒤에 두기 적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평가받았다. 그 덕분에 동양화 대가들의 작품을 의외로 저렴하게 손에 넣을 수 있다. 동양화는 서양화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에 구매가 가능하며, 20만~50만 원으로도 훌륭한 작가의 작품을 소유할 수 있다. 다만 구매 전 동양화는 환금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미술품 수집을 시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많이 보는 것이다. 갤러리와 아트 페어, 경매장을 자주 방문해 다양한 작품을 접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온라인 강의를 통해 미술사 공부도 손쉽게 할 수 있다. 서울옥션이나 케이옥션 같은 경매에서는 저가 경매도 진행하니 이를 통해 소규모로 시작해보는 것도 좋다. 일단 한 번 저질러보자.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