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4일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에서 8월 1일 발생한 화재 피해를 복구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임경진 기자]
8월 1일 지하 주차장 전기차 화재로 큰 피해를 입은 인천 서구 청라동 제일풍경채2차 아파트 주민 A 씨가 전한 생활상이다. 9월 24일 오후 이곳을 찾은 기자에게 A 씨는 “피해 상황을 사진으로 찍어두기는 했지만 사용하지 못하게 된 살림살이는 어디서 얼마나 보상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친척 집 전전하는 아파트 주민들
9월 24일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에서 작업자들이 보수 공사를 하고 있다. [임경진 기자]
지하 주차장은 분진 청소를 마무리하지 못해 화재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틀 전인 9월 22일 기자가 불이 시작된 지하 1층 주차장을 찾았을 때는 바닥에 까맣게 깔린 분진 때문에 걸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주차장 천장에 달린 배수관에서는 물이 떨어졌고 천장에서 내려온 전선은 기자 머리에 닿을 정도로 축 늘어져 있었다. 주차장 출입문 바로 앞에 설치된 게시판은 분진으로 뒤덮여 게시판에 붙은 안내문의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주차장에서 이어지는 아파트 계단에는 분진으로 생긴 얼룩이 물결 모양을 그렸다.
화재가 발생한 지 두 달이 다 돼가지만 입주민 다수는 아직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만난 주민 B 씨는 “집 보수 공사를 하느라 아직 오피스텔에서 지내고 있다”며 “화재로 인한 누수로 마루가 침수돼 썩고 곰팡이가 펴서 온 집 안 벽지와 마루를 뜯어낸 상태”라고 말했다. 주민 C 씨는 “집 안에 남은 분진이 유치원생 딸의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아 도배를 새로 하려는데 옆집, 아랫집, 윗집이 모두 누수 검사를 하고 있어 도배 공사를 시작도 못 해 가까운 친정집에 머무는 중”이라고 밝혔다. 세대 내 누수 공사를 하고 있는 한 업자는 “집에 들어온 주민들도 공사를 위해 1~2주간 다시 집을 비워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이번 주 토요일에도 누수 공사를 해야 해 이사를 나가는 집이 있어요. 공사하는 소리가 두 달 내내 이어지고 있어 주민들도 굉장히 불편할 텐데 서로 이해하며 참고 있는 거죠. 한 번 공사를 시작하면 7~8가지 공정을 거쳐야 하고 8~10일가량 걸려요. 옆집처럼 공사 중간에 누전이 발견되면 기간은 더 길어지고요. 앞으로 공사를 해야 하는 집이 더 생길 수도 있어요. 누수로 젖은 벽지는 마르고 나면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는데 벽지와 석고를 뜯어내면 그 안에 곰팡이가 있거든요.”
청소업체 써도 집 안 틈새마다 분진 끼어
9월 22일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게시판에 까만 분진이 묻어 있다. [임경진 기자]
“에어 프라이어, 전자레인지 등 음식을 조리하는 기구는 전부 버렸어요. 냉장고는 새로 사기에는 너무 비싸고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가 확실하지 않으니 우선 쓰고 있는데 찝찝해요. 얹혀살던 친척집들이 다 멀어서 이 집에 다시 들어오기는 했지만 분진이 나오는 집에서 사는 게 아이들 건강에 장기적으로 해가 될 것 같아 이사를 나갈 생각입니다.”
주차장과 계단에 남아 있는 분진이 집 안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8월 말 집에 들어왔다는 김모 씨(39)는 “더는 집 안에서 분진이 나오지 않지만 현관문을 여닫을 때마다 엘리베이터나 아파트 복도에 있는 분진이 집 안으로 들어온다”며 “주민들이 지하를 왔다 갔다 할 때 신발에 묻은 분진이 아파트 엘리베이터와 복도에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씨가 사는 아파트 동 각 세대 문 앞에는 집에 들어가기 전 신발에 묻은 분진을 닦아내려고 현관문 앞에 깔아둔 수건이 다수 눈에 띄었다.
주민들은 화재 트라우마를 호소한다. 분진, 누수, 누전 등 화재 피해가 심했던 아파트 동 3층에 사는 허모 양(12)은 “불이 난 날 자고 있었는데 화재 경보가 울려 부모님과 동생을 깨워 대피했다”며 “또 불이 나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이 되고 특히 집에 혼자 있을 때 무섭다”고 말했다. 주민 E 씨는 “화재 피해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파 진정되려면 시간이 더 흘러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마무리되지 못한 보상 문제와 보수 공사가 남아 있어 주민들의 생활이 안정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D 씨는 “이번 화재로 소유 차량 한 대가 전소됐는데 화재 대응 과정에서 아파트 관리사무소 과실이 있었다는 얘기가 나와 벤츠사에 소송을 걸어도 보상받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며 “보상을 기대하지도 않고 그저 날벼락 맞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60대 강모 씨는 “보험 계약 기간이 남은 차량 한 대를 폐차시켰는데 보험사에서 남은 계약 기간에 해당하는 보험료를 돌려주려면 화재 원인이 명확하게 규명돼야 한다고 해 아직도 돈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답답해했다. 현재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발화 원인을 조사 중이지만 불이 난 전기차의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이 심하게 파손돼 원인 규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임경진 기자
zz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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