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치솟으면서 직장인 밥값 지출도 크게 늘었다. 6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서 직장인들이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기자가 종종 가는 한식 백반 식당이 최근 메뉴 가격을 2000원씩 올렸다. 식당 주인에게 이유를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실제로 주변 식당 중 일부는 메뉴판에 스티커를 붙이고 가격을 올린 상태였다. 이 식당만 어느 날 갑자기 가격을 올린 건 아니라는 얘기다. 한때는 ‘만 원의 행복’이라는 예능프로그램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1만 원만 가지고는 외식하기가 쉽지 않다. 분식집에 가도 기본 김밥이 3500원, 참치·치즈김밥은 4500~5000원이라 몇 줄 안 시켜도 1만 원이 훌쩍 넘는다.
‘갈비탕(1만5000원), 샐러드(1만2000원), 설렁탕(1만1000원), 파스타(1만6000원), 한식 백반(1만4000원), 냉면(1만3000원)….’
한 끼에 1만 원으론 턱없이 부족
서민 음식으로 여겨지던 냉면 값도 크게 올라 한 그릇에 1만 원을 넘긴 지 오래다. [뉴시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서비스 참가격에 올라온 5월 기준 서울 냉면 가격은 1만269원으로 2021년 5월(9346원)보다 9.9% 올랐다. 삼겹살은 6.12% 오른 1만7595원, 짜장면과 칼국수는 각각 15.56%, 10.8% 오른 6223원, 8269원이었다. 김치찌개 백반은 2021년 5월(6769원)보다 오른 7308원을 기록했다.
밥 먹기가 점점 겁나는 수준으로 물가가 치솟고 있다. 실제로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가공식품 물가는 10년 4개월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외식 물가도 높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5월 가공식품지수는 109.19(2020년=100)로 1년 전보다 7.6% 올랐다. 2012년 1월(7.9%)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비교 시점의 물가지수는 기준 시점을 100으로 할 때 비교 시점 물가의 높고 낮은 정도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현재 물가지수가 109.19라는 의미는 기준 연도와 동일한 품질의 상품, 서비스를 동일한 양만큼 소비한다고 가정했을 때 예상되는 총비용이 기준 연도에 비해 9.19%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가공식품 73개 품목 중 69개 품목의 가격도 상승했다. 품목별로 보면 국수(33.2%), 밀가루(26.0%), 식용유(22.7%) 등이 크게 올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주요 외식 품목의 원재료 가격이 오르면서 음식 가격 상승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식초(21.5%), 부침가루(19.8%), 된장(18.7%), 시리얼(18.5%), 비스킷(18.5%), 간장(18.4%) 등 22개 품목은 10% 이상 올랐다. 편의점 도시락(0.0%), 홍삼(0.0%), 고추장(-1.0%), 오징어채(-3.4%)는 하락하거나 보합세였다.
치킨 가장 많이 올라
외식 물가지수도 올랐다. 가장 많이 오른 건 치킨.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5월 외식 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7.4%, 지난해 12월 대비 4.2% 올랐다. 전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각각 5.4%, 3.4%)을 웃돈 수치다. 통계청이 조사하는 39개 외식 품목 가격이 모두 지난해 말보다 올랐는데, 치킨 가격 상승률이 6.6%로 가장 높았다. 이어 짜장면(6.3%), 떡볶이(6.0%), 칼국수(5.8%), 짬뽕(5.6%) 순으로 나타났다. 김밥(5.5%), 라면(5.2%), 볶음밥(5.0%)과 된장찌개 백반·해장국·탕수육(각 4.7%)도 많이 올랐다. 소주와 맥주 가격은 각각 4.9% 인상됐다. 김치찌개 백반·햄버거(각 4.5%), 냉면·돈가스·피자·도시락(각 4.4%) 등도 많이 올랐다.소비자물가지수는 5월 107.56으로 전월보다 0.7% 상승했다.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5.4% 상승하면서 전월(4.8%) 대비 상승폭이 0.6%p 확대됐다. 이 중 식료품과 비주류음료 관련 항목들만 살펴보면 농축수산물의 경우 농산물은 0.6% 하락했지만 축산물이 11.1% 오르면서 전체적으로 4.2%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산물은 과실, 채소 등은 상승했지만 곡물과 기타 농산물 가격이 내리면서 0.6% 하락했다. 축산물은 수요 증가와 수입단가 상승 등으로 돼지고기, 수입쇠고기, 닭고기 등을 중심으로 12.1% 올랐다. 생활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6.7% 상승했는데 식품이 7.1%, 식품 이외가 6.4%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신선식품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5% 인상됐다.
통계청 관계자는 “이번 달은 국제유가 상승이라든지 국제 곡물 가격 상승,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 영향으로 석유류, 가공식품 같은 공업제품이 높은 오름세를 지속했고, 수요 증가와 재료비, 배달비 인상 등으로 개인서비스 가격도 높은 오름세를 유지했다”며 “축산물을 중심으로 농축수산물 가격에도 오름세가 확대되면서 높은 상승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외적 물가상승 요인들이 완화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물가 오름세가 둔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점심과 물가상승을 합친 ‘런치플레이션’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이 때문에 집에서 도시락을 싸서 출근하거나, 외식이나 배달음식을 줄이고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이가 늘었다.
‘런치플레이션’ 대안은…
저렴한 편의점 도시락으로 한 끼를 때우는 직장인도 늘고 있다. [뉴시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식비 절약을 위한 ‘냉장고 파먹기’나 ‘일주일 식비 ×만 원으로 버티기’ 같은 콘텐츠가 인기다. [인스타그램, 캡처, 유튜브 캡처]
편의점 도시락으로 한 끼를 때우는 이도 늘었다. 편의점 도시락은 별도의 구내식당이 없는 경우 많은 직장인이 찾는 대안이다. 가격대가 높은 특선 도시락을 제외하고 일반 백반 도시락을 고르면 4000~6000원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5월까지 CU·GS25 등 국내 주요 편의점의 도시락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0.7~48.2% 늘었다.
편의점 브랜드 CU는 월 구독료를 결제하면 인기 상품을 할인해주는 구독 쿠폰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올해(1~5월) 쿠폰 누적 사용량이 지난해 대비 49.3%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만 보면 쿠폰 사용량은 전년 대비 68.9% 증가했다. 멤버십 앱 ‘포켓CU’에서 구독을 원하는 카테고리의 월 구독료(1000~4000원)를 내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정해진 횟수만큼 할인받을 수 있다. 최근 인기인 카테고리는 도시락, 삼각김밥, 샌드위치 등 간편식. 한 달 동안 20% 할인된 가격으로 10회 이용할 수 있어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직장인과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