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유가가 요동친 3월 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서부텍사스산 원유(WTI)와 브렌트유 선물 가격이 표시돼 있다. 뉴스1
이번 충돌 배경에는 수년간 누적된 핵 갈등이 자리한다. 먼저 이스라엘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의 고농축우라늄 확보와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경고하자 이를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실존적 문제로 규정했다. 미국 역시 강경 노선을 택하며 제재 수준을 넘어 핵시설 무력화 및 정권교체 가능성까지 언급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이란 내부에서도 물가 급등과 경제난으로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면서 정치적 불안이 커진 상황이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러한 이란 내부 불안과 핵 갈등을 고려해 군사 행동을 결정했고, 이란 수도 테헤란을 포함한 핵심 군사시설에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하자 이란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를 중심으로 중동 내 미군기지와 이스라엘을 상대로 미사일 공격을 단행하며 보복에 나선 상황이다. 37년간 이란을 통치해온 최고지도자의 사망은 이란 정치 체제에도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현재 이란은 대통령 중심 비상 통치 체제로 전환된 상태이며, 동시에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는 등 국제사회에 강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기업 수익성 압박
이번 사태가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보다 국제유가 움직임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가 상승은 곧바로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이어지고, 이는 중앙은행 통화정책과 금융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에너지 시장 불안은 크게 확대될 수 있다.호르무즈해협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는 좁은 해상 통로로,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핵심 요충지다.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6%, 액화천연가스(LNG)의 약 23%가 이곳을 통과한다. 해협 폭은 약 50㎞지만 실제 유조선 항로는 약 10㎞ 내외에 불과하고 대부분 이란 영해에 속한다. 국제유가는 과거 이란-이라크 전쟁이나 서방의 대(對)이란 제재 국면 등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급등한 바 있다.

전쟁 이전 국제유가는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기준 배럴당 60달러 초중반 수준에서 움직였다. 하지만 3월 9일에는 선물 가격이 장중 30% 폭등해 118.46달러(약 17만5000원)를 기록했다. 만약 국제유가가 2분기 내내 배럴당 100달러 넘는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높게 유지된다면 전년 대비 상승률이 다시 플러스로 전환되면서 인플레이션 기대를 자극할 수 있다.
한국 경제 역시 에너지 가격 상승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은 원유의 약 70%, LNG의 약 20%를 중동에서 수입하고 있어 호르무즈해협의 긴장이 고조될 경우 에너지 수급 불안이 확대될 수 있다. 또한 에너지 가격 상승은 물류비와 생산비 상승으로 이어져 기업 수익성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경우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운신 폭도 좁아질 우려가 있다.
한국 실물경제 영향, 단기적으로는 제한적
다만 한국 경제에 미치는 직접적인 충격은 아직 제한적이다. 한국의 대중동 수출 비중은 약 3% 수준으로 높지 않고, 주요 공급망 역시 중동 의존도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해상 물류 측면에서도 2023년 홍해 사태 이후 주요 선사들이 수에즈 운하 대신 희망봉 우회 항로를 활용하고 있어 일정 부분 대응력이 확보된 상태다.정부 역시 시장 불안 확대에 대비해 대응 체계를 점검하고 있다. 시장 변동성이 급격히 확대될 경우 100조 원 규모의 시장 안정화 프로그램을 가동할 계획이며, 약 9600만 배럴 규모의 전략 비축유를 확보해 단기적인 에너지 수급 충격에 대비하고 있다. 수급 위기가 발생할 경우 약 120일 동안 국내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비축유를 단계적으로 방출할 방침이다.
수출 측면에서도 상황은 비교적 안정적인 편이다. 한국의 대이란·대이스라엘 수출 비중은 0%대 초반에 불과하다. 특히 최근 한국 수출이 반도체 중심의 정보기술(IT) 경기와 인공지능(AI) 투자 사이클에 의해 견인되고 있다는 점은 중요한 변화다. 과거에는 글로벌 소비 둔화가 반도체 수요 감소로 이어졌지만 최근에는 기업들의 AI 투자 확대가 반도체 수요의 주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2월 한국 수출은 설 연휴로 조업일수가 감소했음에도 전년 동월 대비 29% 증가한 674억5000만 달러(약 99조6000억 원)를 기록하며 역대 2월 기준 최대 실적을 나타냈다. 일평균 수출 역시 전년 대비 약 49% 증가한 35억 달러(약 5조1000억 원) 수준을 기록했다. 반도체 수출이 크게 증가하면서 전체 수출을 견인한 결과다.
종합적으로 보면 이번 중동 사태는 국제유가 상승과 금융시장 변동성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 대응 여력과 반도체 중심 수출 구조 등을 고려할 때 한국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적으로 제한적 수준에 머물 가능성도 있다. 다만 향후 국제유가 방향성과 중동 지역 내 긴장 확산 여부가 글로벌 경제 및 금융시장에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