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 공군의 F-14 전투기. X(옛 트위터) 캡처
이스파한에는 이란 최대의 원자력 연구시설인 이스파한 핵기술센터가 있다. 중국이 공급한 연구용 원자로 3기를 비롯해 이란 핵무기 개발의 핵심인 고농축 우라늄 제조를 위한 주요 설비가 있다. 이곳에서 우라늄 광석을 정련하고 농축에 적합한 형태인 육불화우라늄(UF6)로 변환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이란은 이곳에서 UF6를 대량 생산해 나탄즈, 포르도에 있는 농축 시설에서 농축한 뒤, 다시 이스파한으로 가져와 지하 저장고에 보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란이 핵무기 제조 바로 직전 단계인 60% 고농축 우라늄 440.9㎏을 보유하고 있고 이 중 절반을 이스파한에 숨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 핵·드론 중심지 이스파한
이스파한은 오늘날 이란의 군사력을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거점이기도 하다. 이란이 보유한 주요 무기 중 사실상 유일하게 제 역할을 하는 샤히드 계열 드론이 생산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스파한에는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가 통제하는 국영 항공기 개발·제작업체인 이란 항공기 제조 산업회사(HESA)가 있다. HESA는 이란이 자체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코우사르나 아자라크시, 카헤르-313 등 전투기는 물론 이란의 핵심 장거리 타격 수단이자 수출 효자 상품인 샤히드 131·136 자폭 드론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기업이다.이란은 전략적 중요성이 큰 이스파한을 방어하기 위해 오랫동안 만반의 준비를 했다. 이란이 애지중지하던 러시아제 S-300PMU-2 방공 시스템이 이곳에 우선 배치됐다. 구형이지만 이란제 방공무기보다 성능과 신뢰성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S-200 장거리 방공 시스템도 이스파한 방공의 한 축을 맡고 있었다. 중거리 방공무기인 이란제 코르다드 3, 러시아제 단거리 방공무기 SA-15도 함께 배치돼 다층·밀집 방공망을 구성했다.

최근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이란 이스파한의 공군기지와 F-14가 파괴됐다. 뉴시스
신정 체제인 호메이니 정권은 미국 뿐 아니라 신을 부정하는 소련도 악마로 규정해 극도로 증오했다. 1980년대에는 양국이 국경에서 여러 차례 물리적인 충돌을 겪기도 했다. 이란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발발하자 무자헤딘을 지원했다. 이란은 호메이니 정권 출범 후 인접한 이라크와 무려 8년 동안 쉴 새 없이 싸웠는데 이때 소련이 이라크에 무기를 대량 공급했다. 이란과 소련 관계가 결정적으로 파탄한 배경이다.
미국 싫지만 美 전투기 포기 못 한 호메이니 정권
호메이니는 집권 후 팔레비 왕조 때부터 존재해 온 이란 정규군을 대규모로 숙청했다. 이때 지휘관·조종사 등이 모두 사라져 이란군은 오합지졸로 전락했다. 이란과의 전쟁에서 이라크군은 소련과 프랑스에서 도입한 신형 무기로 이란군을 압도했다. 체계적인 전투 기술이나 현대적 무기 운용 경험이 없는 이란의 신생 군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호메이니는 감옥에 갇혀 있던 팔레비 왕조 시절의 전투기 조종사와 정비사들을 사면하고 일선에 복귀시켰다. 동시에 그들이 그토록 혐오하던 미국이 만든 전투기를 전투에 투입하기 시작했다.반미주의로 똘똘 뭉친 호메이니 정권은 미국산 전투기 특히 F-14의 능력에 큰 충격을 받았다. F-14를 투입한 뒤 이란 공군이 단숨에 제공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이란 F-14는 이라크 공군 전투기를 일방적으로 격추시켰다. 이라크가 이란 F-14에 잃은 전투기만 MIG-21 23대, MIG-23 58대, MIG-25 9대, 미라지 F1 33대 등 160대에 이른다. 반면 이 과정에서 이란 F-14의 공식적인 피해는 단 3대에 불과했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치러진 1980년대 기준으로 MIG-23과 MIG-25, 미라지 F1은 결코 뒤떨어지는 전투기가 아니었다. MIG-23은 1970년대 소련군 주력 전투기로 쓰였고 1980년대에도 여전히 쓸만한 성능을 갖췄다. MIG-23은 사피르-23 레이더로 최대 60㎞ 거리의 적 전투기를 탐지해 R-23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로 35㎞ 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초반 미국과 유럽의 주력 전투기 F-16A는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운용 능력이 없었던 것에 비해 뛰어난 성능이다. MIG-25는 당대 전투기 가운데 가장 빠른 고속·고고도 요격기였다. 프랑스제 미라지 F1도 슈퍼 530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로 25㎞ 밖 적기를 공격할 수 있는 준수한 성능의 전투기였다.

미국 해군에서 운용하던 F-14. 위키피디아
대형 쌍발엔진 가변익 설계를 채택한 F-14는 최대이륙중량 34t에 달하는 덩치에도 마하(음속) 2.38이라는 높은 속도를 냈다. 강력한 엔진 덕분이다. 가변익 설계도 우수한 기동성을 발휘하는 데 한몫했다. 이착륙 또는 저속 비행 때는 날개를 펴고 고속 비행에선 날개를 접어 공기 저항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F-14가 당대 최강의 전투기로 이름을 날린 최대 요인은 당시의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장거리 공중전 능력이었다.
F-14에 탑재된 AN/AWG-9 레이더의 탐지거리는 무려 213㎞에 이르렀다. 당시 다른 전투기의 탐지거리가 50~80㎞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해 막강한 성능이다. F-14는 레이더로 적기를 먼 거리에서 먼저 탐지한 뒤 무려 150㎞의 사거리를 가진 AIM-54 피닉스 미사일로 공격할 수 있었다. 미국과 소련의 다른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사거리는 기껏해야 30~40㎞ 정도였다. 게다가 피닉스 미사일은 기동성이 뛰어나고 탄두 중량도 60kg에 이르러 강력한 파괴력까지 지녔다. F-14에는 이 미사일이 6발이나 탑재됐다. 당시 소련의 전투기 중 F-14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기종은 없었고 같은 미국 전투기 F-15도 장거리 공중전에선 한 수 밀렸다.
이라크 전투기 160대 잡은 이란 F-14
호메이니 정권은 이란-이라크 전장에서 F-14가 보인 눈부신 전공이 반가우면서도 불편했다. 전장에서 적을 무찌른 주인공이 이슬람 정신으로 무장한 전사가 아니라 이교도가 만든 전투기와 왕정 시대의 파일럿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란은 전쟁 내내 F-14의 활약을 감추려 애썼다. 소련 붕괴 후에는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다양한 전투기를 싼값에 구매해 대량 배치하며 F-14의 역할을 축소하려 했다. 하지만 새로 도입한 전투기들의 성능은 20년 전 도입한 F-14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결국 이란은 F-14를 계속 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란 공군의 고난은 이때부터 시작됐다.F-14는 대단히 강력한 성능을 갖췄지만 정작 미 해군의 종합적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다. 유지비가 비싸고 정비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 쓰듯 국방비를 쓴 냉전 때 무기체계는 성능만 좋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탈냉전으로 국방비가 크게 줄어든 1990년대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미국은 성능은 조금 떨어져도 가성비 좋은 F/A-18로 함재기를 통일했다. F-14는 2006년까지 전량 퇴역시켰다.

미군의 공습으로 이란군이 보유한 미국제 C-130 수송기가 불길에 휩싸였다. 미국 중부사령부 X(옛 트위터) 캡처
문제는 러시아가 갖가지 핑계를 대며 Su-35 공급을 미뤘다는 것이다. 러시아에는 이집트 납품용으로 생산됐다가 구매가 취소돼 남은 Su-35 24대가 있었다. 이란은 미국·이스라엘과 긴장이 고조되자 이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러시아와 오랫동안 협상했다. 그런데 이란은 구매 계약을 체결한 뒤 러시아에 인수팀까지 보냈지만 3년째 Su-35를 받지 못했다. 대체기가 없는 상황에서 F-14가 퇴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란은 테헤란과 이스파한 방공용으로 F-14를 운용했다. 이번 전쟁에서 두 도시에 있는 공군기지가 대대적인 공습을 받아 이란의 F-14는 모두 파괴됐다. 한때 중동 하늘은 물론 영화 ‘탑건’으로 스크린까지 지배했던 최강 전투기는 미국-이란 전쟁에서 최후를 맞았다.















![[영상] 새벽 5시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헬멧 쓴 출근 근로자 8열 종대로 500m](https://dimg.donga.com/a/380/253/95/1/ugc/CDB/WEEKLY/Article/69/b1/2f/08/69b12f0800eaa0a0a0a.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