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78

2023.02.24

전세 세입자 모시기 전쟁 벌어진 4가지 이유

[황재성의 부동산 맥락] 주택 공급 증가와 미분양 확산 탓… 급격한 금리인상과 월세 선호도 역전세 부추겨

  • 황재성 동아일보 기자

    jsonhng@donga.com

    입력2023-02-26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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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대차시장에서 역전세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GettyImages]

    임대차시장에서 역전세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GettyImages]

    2월 초 인천 서구에 위치한 A 아파트 전세매물을 소개한 네이버 부동산 코너에 “전세대출 가능. 임대인(집주인) 대기업 다녀요”라는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해당 아파트에 매매가 대비 30% 수준의 대출이 있어 임차인(세입자)이 기피할까 싶어 부동산공인중개사가 덧붙여 높은 메모였다. 집주인이 대기업 직원이라 융자가 있어도 걱정할 필요 없고,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을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갈수록 증가하는 역전세, 경매도 늘어

    최근 임대차시장에 ‘역전세’ 현상이 심각하다. 역전세란 집값이 급락하면서 전세금이 계약 당시보다 떨어져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기존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전세를 찾는 사람보다 신규 주택 공급이 늘거나 입주 물량이 증가하면서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워진 경우도 포함된다.

    이로 인해 최근 주택시장에서 세입자 확보 전쟁이 펼쳐져 평소 접하기 어려운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집주인의 경제 능력 공개는 당연하고, 전세금 대출 이자를 지원해주겠다거나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가방을 주겠다는 경우도 있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월세처럼 매달 일정액을 지급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전세금이 떨어진 상태에서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자, 기존 세입자에게 전세금 차액에 대한 이자를 주는 것이다.

    지은 지 10년 넘은 주택의 경우 세입자를 모시기 위한 인테리어 리모델링도 활발하다. 이른바 ‘세입자용 인테리어’다. 집주인이 거주하지 않기 때문에 전체 수리보다 주방과 욕실 등 일부 공간만 업그레이드하는 식이다. 한샘에 따르면 전체 리모델링 매출에서 ‘올수리’(집 전체 수리)의 비중은 지난해 30%로 전년(42%)보다 12%p 줄어든 반면, 부분 공사 비중은 58%에서 70%로 12%p 늘어났다.

    역전세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최후 수단으로 경매법정을 찾는 일도 많아졌다. 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수도권에서 아파트 등 주거시설 세입자의 신청으로 진행된 경매(강제·임의경매 포함)는 모두 87건(유찰로 인한 중복 집계 제외)으로 전년 동기(54건) 대비 61.1% 증가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수도권에서 세입자의 신청으로 열린 경매(978건)가 전년(824건) 대비 18.7% 늘어나는 데 그친 점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증가세다. 게다가 경매 낙찰자가 없어 세입자가 본인이 살던 집을 떠안는 경우도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지난해 서울에서 세입자가 직접 낙찰받은 경매 건수는 105건으로 전년(66건)보다 59.1% 증가했다. 낙찰금액도 지난해 196억3083만 원으로 전년(101억5815만 원)의 2배 가까이 급증했다.



    역전세 현상으로 전세금 하락이 이어지면서 ‘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전세금 비율)도 10년 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아파트 전세금 비율은 68.2%로 전년(68.9%)에 이어 2년 연속 60%대에 머물렀다. 전세금 비율은 2014년 이후 2020년까지 꾸준히 70%대를 유지했다. 특히 서울(55.9%·이하 2022년 12월 기준), 부산(64.8%), 대구(71.3%), 세종(46.9%) 등 주요 대도시 지역은 전세금 비율이 2012년 이전 수준으로 내려갔다. 낮은 전세금 비율은 집값 상승의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고금리에 전세시장도 휘청

    이러한 역전세 현상은 왜 일어난 것일까. 한국지방세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부동산시장동향-‘역전세’와 주택가격’)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은 역전세 현상의 원인으로 공급 상황과 제도적 문제, 고금리 여파 등 3가지를 꼽았다.

    우선 주택 공급 측면이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입주 물량이 크게 감소하면서 주택 공급 부족에 따른 전세금 상승 요인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 주택 공급이 증가하고 이에 따른 미분양 물량도 크게 늘면서 역전세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전국 미분양 주택 수는 6만8107채로 전월(5만8027채)보다 17.4% 늘었다. 이는 정부가 미분양 주택 규모 위험선으로 보는 6만2000채를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두 번째는 임대차 정책이다. 2021년 7월 전월세 신고제가 시행되면서 그해 하반기부터 전세금이 급등했다. 당시 급등한 전세금을 전세자금 대출로 충당하면서 전세시장이 시장금리 변동에 큰 영향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전세자금 대출제도는 2014년 도입됐는데, 매년 대출 규모가 크게 늘면서 전세시장이 시장금리 변동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세 번째는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환경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1년 동안 미국 기준금리를 0.25%에서 4.75%까지 4.5%p 인상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행도 국내 기준금리를 2022년 4월 1.50%에서 올해 1월까지 3.50%로 2%p 올렸다. 이러한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저금리 환경에서 형성된 자산가격(집값)과 전세금이 큰 폭으로 조정받으면서 역전세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붙인다면 월세 선호 현상이다. 고금리 등으로 월세 선호도가 올라가는 상황에서 최근 전세 사기 등 여파로 월세 선호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 아파트 월세 거래는 모두 8277건으로 전체 전월세 거래(1만6805건)의 49.3%를 차지했다. 2010년 관련 통계가 공개된 이후 최고 수준이다. 서울 아파트에서 월세 비중은 2020년(31.4%)과 2021년(38.5%)까지만 해도 30%대에 머물렀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40%에 진입한 뒤 마침내 절반을 넘보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문제는 역전세 현상이 당분간 지속되고, 세입자에 대한 집주인의 구애 작전은 더 뜨거워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물가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집값이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기 어려운 점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황재성 기자는… 
    동아일보 경제부장을 역임한 부동산 전문기자다. 30년간의 기자생활 중 20년을 부동산 및 국토교통 정책을 다루는 국토교통부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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