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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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유력한 용인 봉수대가 사유지에 자리한 까닭

[황재성의 부동산 맥락] 일제강점기 전근대적 측량기술로 제작된 지적도 오류 탓

  • 황재성 동아일보 기자 jsonhng@donga.com

    입력2023-06-2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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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용인시가 2021년 4월에 발견해 5월에 발표한 건지산 봉수 원위치. [용인시 제공]

    경기 용인시가 2021년 4월에 발견해 5월에 발표한 건지산 봉수 원위치. [용인시 제공]

    “경기 용인시가 126년 만에 ‘건지산 봉수’ 원위치를 찾았다.”

    용인시는 2021년 5월 10일 “처인구 원삼면 건지산에서 1895년 이후 멸실된 것으로 알려진 건지산 봉수의 흔적을 발견했다”며 이같이 발표했다. 봉수는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로 변방의 급한 소식을 한양에 알리는 국가 통신시설이었다. 조선 초기인 세종대왕 때 설치된 뒤로 1895년(고종 32년) 공식적으로 사라질 때까지 약 450년간 사용돼 주요 국가시설로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경기 안성시 망이산 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처인구 포곡읍 석성산 봉수로 신호를 전달했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남아 있다. 특히 건지산 봉수는 조선의 5개 봉수 노선 가운데 부산에서 한양으로 올라오는 제2거 직봉(直烽) 노선의 42번째 내지(내륙)봉수로서 의미가 있다. 용인시는 당시 보도자료에서 봉수 전문가 김주홍 박사의 말을 인용해 “건지산 봉수는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형태”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봉수 제도가 사라진 후 봉수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서 산 정상 부근에 있었다고 추정만 될 뿐 정확한 위치는 파악할 수 없었다. 이에 용인시는 2020년부터 현장답사를 진행했고, 이듬해인 2021년 4월 22일 위치를 확인한 것이다.

    용인시는 “이번 건지산 봉수 원위치 발견으로 관내 2개 봉수를 모두 확인하는 큰 성과를 거뒀다”며 “올해(2021) 안에 건지산 봉수터 발굴조사에 착수하고, 결과를 토대로 문화재 지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머지 하나는 석성산 봉수다. 서울 남산(목멱산)∼성남 천림산∼용인 석성산으로 이어지는 주요 봉수로에 위치해 역사적·지정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0년 11월 경기도문화재(기념물 제227호)로 지정됐다.

    그런데 용인시의 이 같은 계획에 급제동이 걸렸다. 현장조사를 위한 측량을 실시한 결과 봉수 위치가 사유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때 작성된 토지공부(公簿: 정부·지방자치단체 등이 법규에 따라 작성 비치하는 장부)에는 국유지로 돼 있다. 하지만 국제표준에 따라 재측량한 결과 40m가량 오차가 있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건지산 봉수 위치 사유지로 드러나

    결국 사유지 소유자의 동의를 받는 절차를 거쳐야 했는데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고, 1년 6개월 이상 늦어진 지난해 말 현장조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조동우 용인시 문화재팀장은 “연말까지는 조사를 마무리 짓고, 그 결과를 토대로 문화재 보호구역 지정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지켜봐야 했던 문화재청도 한동안 속앓이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봉수 유적을 국가 사적으로 지정한 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을 우려해서다. 한국 봉수는 수가 많지 않은 데다, 신호전달체계로서 연결성이 중요하기에 일부가 빠지면 문화재적 의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될 가능성이 큰 국가 유물이 위치한 땅이 왜 국유지가 아닌 사유지로 바뀌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을까.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전근대적인 측량기술로 제작한 지적도가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즉 110여 년 전인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일본 도쿄를 기준(원점)으로 대나무자나 평판(平板: 땅 모양을 직접 재어 그리는 나무판) 등을 이용해 측량한 뒤 손으로 작성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오류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종이로 제작한 탓에 마모로 변형된 데다,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손실되는 경우도 적잖았다. 지진이나 홍수, 태풍 같은 자연재해로 토지 경계가 달라지는 경우도 빼놓을 수 없다. 2017년 발생한 포항지진이 대표적이다.

    지적불부합지로 토지 경계 분쟁 잇따라

    정부는 실제 국토 이용 상황과 지적공부 등록사항이 일치하지 않는 ‘지적불부합지(地籍不符合地)’가 전체 국토 3700만여 필지 가운데 554만 필지(약 15%)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GettyImages]

    정부는 실제 국토 이용 상황과 지적공부 등록사항이 일치하지 않는 ‘지적불부합지(地籍不符合地)’가 전체 국토 3700만여 필지 가운데 554만 필지(약 15%)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GettyImages]

    이는 여러 문제를 낳고 있다. 우선 실제 국토 이용 상황과 지적공부 등록사항이 일치하지 않는 ‘지적불부합지(地籍不符合地)’가 적잖다. 정부는 전체 국토 3700만여 필지 가운데 554만 필지(약 15%)가 이에 해당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서울시 면적의 10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시도별로 보면 전남이 82만2000필지로 가장 많고 강원(72만 9000필지), 경남(58만3000필지), 충북·전북(55만7000필지), 경기(55만 필지), 충남(42만2000필지), 경북(40만 필지), 제주(20만 필지) 순으로 뒤를 이었다. 또 광주(18만5000필지), 부산(17만 필지), 서울(14만9000필지) 등도 10만 필지 이상이 지적불부합지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로 인한 국민의 경제적 손실도 막대하다. 한국국토정보공사(LX)에 따르면 토지 경계 분쟁으로 매년 3800억 원 소송비용과 900억 원 경계측량비용이 발생할 정도다. 재산권 행사에도 걸림돌이다. 지적공부 등록사항에 대한 정정 작업이 끝날 때까지 토지 거래나 건물 신축 같은 개발 행위를 할 수 없다.

    실제로 서울을 포함한 주요 대도시 도심 지역에 새 건물을 올리려다 이웃들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MBC가 최근 보도한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이 모 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50년 넘게 해당 지역에 거주하던 이 씨는 살던 집을 헐고 새 건물을 올리기 위해 측량을 실시한 결과 이웃집 경계를 2m가량 침범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이 씨가 수천만 원을 배상하고 마무리하려 했지만 사건은 또 다른 소송으로 이어졌다. 이 씨에게 배상을 받았던 이웃 역시 다른 이웃의 땅을 2m가량 침범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LX의 조사 결과 해당 필지는 지적도상 경계와 실제 점유 상황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 서로 달라지는 이른바 ‘편위형’ 지적불부합지였다.

    이 밖에 지적불부합지에는 지적도와 달리 △실제 토지가 겹쳐 있는 ‘중복형’ △이웃한 토지 경계가 떨어져 있는 ‘공백형’ △위치가 아예 다른 ‘위치오류형’ 등이 있다. 지적도가 아예 실제 지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불규칙형’이나 재난·재해로 지형이 바뀐 ‘지형변동형’ 등도 있다.

    지적불부합지의 또 다른 문제는 국토의 활용 가치 저하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토지개발사업 시 토지 이용 현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사업비용이 증가하고 개발사업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국공유지의 비효율적인 활용이나 정책 집행의 비효율성 등 손실도 발생한다.

    정부 지적재조사 진행 중이나 예산 부족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2012년부터 지적재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2030년까지 1조3000억 원(2012년 예타 기준)을 투입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종이 지적공부를 최신 기술로 새롭게 등록하면서 지적불부합지를 바로잡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최첨단 위성장비와 정보기술(IT)로 측량하고, 토지 경계를 효율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하는 한편, 종이 대신 디지털로 지적정보를 저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적재조사가 완료되면 적잖은 효과가 기대된다. 우선 지적불부합지 정리로 자유로운 재산권 행사가 가능해진다. 토지 경계 확정으로 고질적인 토지 경계 분쟁도 줄일 수 있다. 강원 양구군 해안면 일대 무주지(無主地: 주인 없는 땅) 6200만㎡가 대표적이다. ‘펀치볼’로 불리던 이 지역은 6·25전쟁 이후 피란민 대부분이 북한으로 넘어가 돌아오지 못했고, 대규모 무주지가 발생했다. 이후 약 70년간 소유권과 경작권을 둘러싼 분쟁이 이어졌으며, 제대로 된 재산권 행사도 어려웠다. 이에 정부가 2020년 6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20억 원을 투입해 지적재조사를 실시해 관련 민원을 모두 해결했다.

    토지 경계 조정을 통한 토지 활용도 증대와 그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1930년대 개설된 전남 여수시 덕양시장의 경우 토지 소유권은 여수시가, 건물은 개인이 각각 보유하면서 91년간 민원이 계속됐다. 이에 2021년 9월부터 2022년 말까지 국유지 경계를 재조정하는 등 지적재조사를 진행했다.

    이 밖에 디지털 지적이 구축돼 정부의 디지털 플랫폼 기반이 조성되고 언제 어디서나 토지 정보 확인이 가능해지는 등 부동산 관련 행정 서비스의 선진화도 기대할 수 있다.

    이런 효과에도 지적재조사는 기대만큼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142만 필지(25.7%)에 머물러 있다. 사업 종료 시점까지 8년밖에 남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특히 서울(1.5%)과 부산(14.2%), 울산(17.7%), 광주(18.9%) 등 대도시 지역과 제주(8.6%), 경남(19.7%) 등은 사업 진행률이 매우 낮다.

    1차적 원인은 지적재조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토지 분쟁이나 소송에 따른 시간 지연이다. LX 관계자는 “지적재조사를 통한 토지 경계 확정 과정에서 발생한 주민 간 분쟁이나 소송이 정리되는 데 평균 2년 정도 걸린다”고 말했다. 여기에 분쟁을 우려한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관련 예산 확보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것도 문제를 키웠다. 일부 지자체는 토지 경계 확보에 필요한 비용(지자체 조정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크게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정부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2030년까지 사업 완료를 위해 매년 1200억 원가량 예산이 필요하다. 그런데 국토교통부는 올해 지적재조사에 542억 원을 편성했다. 이는 전년(716억 원)보다 24% 줄어든 규모다.

    황재성 기자는… 
    동아일보 경제부장을 역임한 부동산 전문기자다. 30년간의 기자생활 중 20년을 부동산 및 국토교통 정책을 다루는 국토교통부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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