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빅테크도 걸리는 비상식적 국내 투자경고 종목 요건

시가총액 2위 SK하이닉스 지정에 투자자 반발… 거래소 “개선에 시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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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입력2025-12-19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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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하이닉스의 투자경고 종목 해제 여부가 12월 24일 결정된다. SK하이닉스 제공

    SK하이닉스의 투자경고 종목 해제 여부가 12월 24일 결정된다. SK하이닉스 제공

    “12월 24일에 투자경고가 풀려도 그 뒤 10일 안에 다시 급등하면 또 투자경고다. 내년 1월에 투자경고가 해제돼도 주가가 50만 원을 넘으면 언제든 지난해 대비 종가 3배 이상이라 뜬금없이 공시가 뜰 수 있다.”

    “투자경고만 아니었어도 지난주 전 고점은 넘겼을 것 같다. 전 고점도 못 가고 나스닥 반도체 조정이 오니 폭락했다. 12월은 버리는 달로 봐야 할 듯하다.”

    주식 온라인 커뮤니티에 12월 15일 올라온 게시 글들이다. 시가총액 2위인 SK하이닉스가 투자경고 종목으로 12월 11일 지정되자 투자자들 불만이 쏟아졌다. 한국거래소는 SK하이닉스가 △1년 전(2024년 12월 10일) 종가 대비 200% 이상 상승했고 △최근 15거래일 종가 중 최고가를 기록했으며 △최근 15거래일간 시세 영향력을 고려한 상위 10개 계좌의 매수 관여율이 일정 수준 이상인 날이 4일을 넘었다는 점을 투자경고 종목 지정 사유로 들었다.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되면 매수 시 위탁증거금을 100% 납부해야 하고, 신용융자 매수는 불가능하다. 대체거래소인 넥스트레이드(NXT)를 통한 거래도 제한된다. 2023년 ‘라덕연 사태’와 영풍제지·삼천리 등 중소형주 장기 시세조종 사건 이후 주가조작을 막고자 도입된 제도다. 그런데 이 같은 우려가 거의 없는 초대형 우량주에까지 기준이 기계적으로 적용되면서 증시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래소 “제도 개선 내부안 마련 중”

    올해 국내 증시가 급등하면서 투자경고 종목 지정 요건에 걸리는 대형주가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12월 10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된 건수는 72건이다. 지난해 연간 건수(44건)를 이미 넘어섰다. 시장 경보 단계 중 가장 높은 등급인 투자위험 종목 지정도 지난해 1건에서 올해 7건으로 증가했다.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2월 12일 오후 8시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됐다.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우주탐사 기업 스페이스X가 2026년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주가가 급등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 밖에도 SK스퀘어, 현대로템, 현대약품 등이 투자경고 종목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투자경고 종목 지정 요건 가운데 하나인 ‘1년 새 200% 이상 상승’ 기준만 놓고 보면 미국 빅테크 상당수도 해당한다. 엔비디아는 2024년 한 해에만 약 190% 급등했다. 2024년 1월 2일 종가 약 49달러에서 그해 12월 31일 종가 약 142.90달러(약 20만 원)로 마감했다. 팔란티어는 더 가파르다. 2024년 11월 5일 종가 51.28달러에서 올해 11월 3일 종가 207.24달러(약 30만6000원)로 상승했다. 1년 기준 상승률은 약 304%에 달한다.



    투자자 반발이 커지자 한국거래소는 제도 개선 검토에 나섰다. 거래소는 “투자경고 종목 지정 요건을 단순 수익률이 아닌, 주가지수 대비 초과 수익률 기준으로 바꾸고, 시가총액 상위 종목을 제외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제도 개선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규정 개정에는 내부 절차와 외부 의견 수렴, 금융위원회 인가가 필요하다. 거래소 관계자는 “담당 부서 간 협의를 거쳐 내부안을 마련 중이며 빠른 시일 내 개정할 계획”이라면서도 “연내 세칙이 개정돼도 SK하이닉스 등에 소급 적용되진 않는다”고 전했다.

    SK하이닉스의 투자경고 종목 해제 여부를 판단하는 날은 12월 24일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9일이다. 거래소 공시에 따르면 투자경고 종목에서 해제되려면 △해제 판단일 종가가 5거래일 전 종가 대비 45% 이상 오르지 않아야 하고 △15거래일 전 종가 대비 75% 이상 상승하지 않아야 하며 △최근 15일 종가 중 최고가가 아니어야 한다. 즉 주가가 덜 올라야 풀리는 구조다.

    미장 상장 카드 꺼내나

    SK하이닉스는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핵심 이유는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SK하이닉스는 올해 3분기에만 11조 원 넘는 영업이익을 냈다. 경쟁사인 미국 마이크론의 같은 기간 실적보다 3배 이상 많지만, 시가총액은 두 회사가 비슷한 수준이다. 국내 기업 주가가 글로벌 경쟁사 대비 저평가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에 국내 기업들의 미국 증시 진출도 잇따르고 있다. 네이버웹툰은 지난해 나스닥에 상장됐고, 패션 플랫폼 무신사와 핀테크(금융+기술) 기업 토스 역시 미국 상장을 추진 중이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자사주를 활용한 미국 증시 상장, 즉 미국 ADR(주식예탁증서) 발행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ADR은 주식을 본국에 보관한 채 이를 담보로 미국시장에서 거래하는 방식이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미국 투자자들이 해당 주식을 간접적으로 거래할 수 있어 사실상 미국 상장과 유사한 효과를 낸다. 대만 TSMC와 네덜란드 ASML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도 같은 방식으로 뉴욕증시에 상장돼 있다.

    SK하이닉스는 12월 10일 조회공시 요구에 대한 답변에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나 현재까지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ADR을 발행하면 마이크론과 밸류에이션 격차를 단숨에 좁힐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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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채원 기자

    윤채원 기자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윤채원 기자입니다. 눈 크게 뜨고 발로 뛰면서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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