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법스님은 탁발순례를 통해 생명과 평화를 일상적으로 가꾸는 문화를 일구려 한다.
얼마 전 주지 자리를 내놓고 3월1일부터 생명ㆍ평화를 위한 탁발(托鉢)순례에 나설 도법스님과 마주앉았다. 스님은 따뜻한 물에 국화를 우려낸 국화차를 한 잔 가득 내놓았다. 방안이 금세 국화 향기로 그윽해졌다. 때맞춰 밖은 굵은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도법스님은 1998년 조계종 분규 당시 총무원장 권한대행을 맡아 분쟁을 해결하고 홀연히 산사로 돌아갔던 이다. 그동안 실천불교 실현에 앞장서 왔던 그는 실상사 작은학교를 통해 대안학교 운동을 일궜고, 인드라망생명공동체 활동을 통해 도·농공동체운동을 펼쳤으며, 최근에는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평화결사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런 그가 산중을 벗어나 가시밭길인 세속의 거리로 나가려 한다.
수많은 사람과의 ‘만남’ 무기한 일정
그가 탁발순례를 결심하게 된 데에는 우리 사회가 비인간화와 생명 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함이 작용했다. 그동안 눈부신 과학발전과 경제성장을 이뤘음에도 우리의 삶이 병들고 황폐화되며, 모순과 혼란, 타락과 불신, 갈등으로 이어지는 것은 잘못된 세계관과 가치관 탓이라는 것.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자기중심의 논리, 자연과의 관계에서는 인간중심의 논리가 이 모든 위기의 원인이라는 게 스님의 지적이다.
“본질적인 원인을 바로잡지 않고선 근본적인 전환이 불가능합니다. 더 많이 갖고 더 편리해지려는 부자의 논리는 힘과 공격을 필요로 합니다. 더욱더 많이 채우려고만 하는 이기적 욕망의 논리를 비워내야 합니다. 비움은 곧 나눔입니다. 나 아닌 다른 이를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고 나눔으로써 생명과 평화는 자연스럽게 살아납니다. 그래서 탁발순례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배고픈 이들을 위해, 우리 사회를 위해 따뜻한 마음을 내놓으시오’라고 청할 작정입니다.”
탁발순례단(이하 순례단)은 3월1일 지리산 노고단의 기도단에서 천도재를 지내고 지리산 일대를 돈 다음 제주도로 건너가 서서히 북으로 발길을 옮길 예정이다. 순례단은 사람들을 만나고, 경우에 따라 행사에도 참가하고, 갈등의 현장도 방문할 것이다. 그러나 새만금을 살리기 위한 삼보일배나 낙동강 도보순례처럼 대규모로 조직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그와 동행하는 이들은 수경스님, 지리산 시인 이원규씨 등 6~7명 정도. 중간 중간 구간별로 그와 뜻을 같이하는 평화결사 ‘등불(회원)’이 함께 길을 걷고, 탁발을 할 계획이다.
그가 이번 탁발순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만남’이다. 그는 상인, 농부, 거지, 회사원, 사장, 지주, 실업자, 장관, 사기꾼, 주정뱅이, 목사, 신부를 가리지 않고 두루 만날 계획이다. 그들에게 밥도 빌어먹고, 돈도 빌리고, 땅도 빌리고, 마음도 빌릴 작정이다. 그렇게 해서 소통과 통합의 장을 마련하려 한다.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갖고 다른 방식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 생명과 평화라는 공통의 가치이자 이상을 실현하려 한다.
실상사 들머리에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기한은 없다. 생명과 평화가 넘치는 사회로 가는 토대를 마련할 때까지 순례는 계속된다. 도법스님은 가능하다면 백두산까지도 걸어가, 평화통일을 위한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좌우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희생된 이들을 위한 1000일 기도를 시작했던 것도 평화통일의 기운을 마련하려는 차원에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 한반도가 위기상황을 겪고, 이라크 전쟁을 바라보면서 더 이상 비인간적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뜻을 모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지난해 지리산평화결사를 만들었습니다.”
‘수행하는 걸인’의 청을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의 탁발순례는 인도의 영적 지도자 비노바 바베의 순례를 연상케 한다. 인도의 독립과 가난한 사람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던 바베는 1951년 ‘부단 양가(토지헌납운동)’를 전개했다. 20년 넘는 긴 세월 동안 그는 인도 전역을 걸어다니며 지주들을 만났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땅을 내주도록 설득해 스코틀랜드만한 거대한 토지를 헌납받았다.
실상사 주지·귀농학교 등서 손떼
원래 탁발이란 수행자가 대중에게 밥을 빌어먹어 육신을 유지하고, 스승에게서 진리를 빌리는 불교의 한 수행방법을 말한다. 부처님도 일생을 탁발승으로 살았다. 그러나 수행자들이 수행보다는 생계수단으로 악용하거나 혹세무민하는 경우가 생겨 조계 종단에서는 요즘 이를 금하고 있다. 그럼에도 도법스님이 굳이 탁발이라는 방법으로 생명ㆍ평화운동을 펼치려는 이유는 비워내고 나누는 것이 바탕인 탁발이 적합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수많은 선지식을 만나며 구도행각을 벌였던 ‘화엄경’의 선재동자처럼, 파계한 뒤 탁발하며 ‘일체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한 길로 생사를 벗어나도다’라는 무애(無碍)의 길을 걸었던 원효대사처럼 그도 탁발의 길을 선택했다.
탁발순례를 위해 그는 1월19일 실상사 주지 노릇도 그만뒀다. 두 번 연임하기도 했지만 후임자가 나타나 그에게 물려주기로 한 것이다. 자신이 가려는 길이 곧 체념과 포기의 길이기 때문에 그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내놓으려는 뜻도 있다. 그는 깨달음이라는 환상을 좇아온 그간의 삶을 포기하고, 부처라는 꿈을 좇아온 집념을 내려놓으며, 훌륭한 수행자라는 허상을 좇아온 꿈을 접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체념(諦念)은 단념과 같은 뜻이지만 도리를 깨닫는 마음이라는 뜻도 담고 있습니다.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 태어난 자는 죽고,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진다는 등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달관의 의미도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욕망의 논리를 체념하고 일상 삶에서 생명과 평화의 논리를 가꾸며 살아가는 삶이 올바른 삶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는 그동안 깊이 간여해왔던 인드라망생명공동체와 작은학교, 한생명귀농학교에서도 이제 손을 떼려 한다. 이 조직들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정상 궤도에 올라 스스로 굴러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생협으로까지 발전한 공동체운동과 귀농학교는 도시와 농촌을 이어주고 있으며, 작은학교는 제도권 교육이 변화 발전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대안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높은 사상과 전통을 가진 불교집단에서도 잘 다루지 않던 공동체니 생명이니 하는 화두를 붙잡고 씨름해와 뭇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던 그다. 그러나 그는 이제까지의 활동이 ‘한줌’에 지나지 않는다며 자신을 낮추고 탁발순례를 통해 조직적인 생명ㆍ평화의 문화를 일궈낼 발심(發心)에 묵묵히 3월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