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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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사업 전문가들 귀하신 몸 될까

남북 직교역 경험 통해 북한 인맥·노하우 축적 … 기업체 컨설팅·협력자 알선 등 역할 톡톡

  •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입력2004-01-29 1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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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북사업 전문가들 귀하신 몸 될까

    1998년 6월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은 남북교류의 획기적 전환점이 됐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북한은 일반인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금단의 땅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북한을 제집 드나들듯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최근 통일부가 밝힌 2003년 남북교역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남북교역액은 7억2422만 달러로 우리 돈으로 약 8700억원에 이른다. 이는 2002년 6억4173만 달러에 비해 12.9%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남북한 교역에 참여한 업체는 481개사로 품목 수는 588가지였다. 2002년과 비교해 참여업체는 49곳이 늘었고 교역 품목수도 16가지가 늘었다. 1989년 1900만 달러어치의 북한 물품 반입을 계기로 시작된 남북한 직교역은 해마다 꾸준한 성장을 보여왔고 그 규모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남북교역이 대중화 시대를 맞고 있지만 일반 국민에게 대북사업은 여전히 먼 얘기다. 금강산 관광사업을 하는 현대아산이나 평양에 자동차조립공장을 세운 평화자동차처럼 대북사업은 대기업의 전유물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행법상 북한 주민과의 접촉 힘들어

    하지만 남북한 직교역이 시작된 지 10년이 지나면서 ‘자수성가’, 대북사업의 주역으로 떠오른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북한 내 협력파트너를 찾아내 자신들의 대북사업을 성사시킨 것은 물론 북한 진출을 원하는 국내 기업에 북한 협력사업자를 찾아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10년 전이었다면 ‘이적단체와 회합·통신’ 등의 죄로 국가보안법의 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엿한 대북사업가로 활약하는 민간인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대북사업가이자 국회 야당의원의 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는 박경은씨. 그는 군 시절 정훈장교로 근무하면서 사병들에게 반공교육을 시켰던 이력의 소유자. 하지만 제대 후 IT(정보기술)관련 벤처사업을 하면서 대북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 경험을 살려 ‘김정일과 IT혁명’이라는 책도 냈다. 지금은 주로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일하고 있지만, 그는 좌충우돌하며 뚫은 북한 내 인맥과 대북사업 경험을 활용, 북한 진출을 원하는 국내 기업을 상대로 컨설팅도 하고 북한 내 협력자를 알선해주기도 한다.



    박씨는 “대북사업을 하려는 국내 기업이 꼭 갖춰야 할 두 가지 지식이 있다”고 말한다. “북한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있어야 하고, 동시에 자기 사업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 1997년 북한 진출의 문이 본격적으로 열린 이후 무수한 기업이 북한에 진출했지만, 대부분 망하거나 부도 직전까지 내몰린 데는 의욕만 앞서 북한에 대한 이해와 자기 사업에 대한 전문성 확보 노력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범훈 훈넷 사장도 ‘자수성가형’ 대북사업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2000년부터 대북사업에 나선 김사장은 북한 내 파트너를 찾아 중국을 헤매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사기도 당하는 등 대다수 대북사업가들과 비슷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던 중 2002년 말, 10개월 가까이 북한에 체류하면서 현지인들과 머리를 싸맨 끝에 마침내 북한 당국을 설득해 공동출자로 조선복권합영회사를 설립하고 주패닷컴(jupae.com)이라는 사이트를 개설했다.

    김사장은 또 북한 당국을 설득, 평양과 신의주 중국을 잇는 인터넷망을 까는 데도 역할을 했다.

    하지만 1월19일 통일부는 주패닷컴 사이트가 ‘도박사이트로 공공질서를 저해한다’는 이유로 훈넷의 남북경제협력사업자 승인을 취소했다. 그러자 통일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이 통일부의 결정에 대한 네티즌들의 찬반 논쟁으로 도배가 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김사장은 “통일부에 북한주민 접촉을 신청하면 만나고자 하는 이의 구체적 인적사항을 적으라고 한다. 만나지 않은 북한주민의 인적사항을 어떻게 알겠느냐. 통일부는 또 대북사업을 하려면 북한당국의 승인부터 받아오라고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북한주민과의 자유로운 접촉이 보장돼야 하는데 현행법은 그걸 막아놓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대북사업가들은 위법인 줄 알면서 통일부 승인 이전에 북한주민을 접촉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는 것. 김사장은 “인터넷 남북 개방은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이 실제 북한을 오가며 대북사업의 물꼬를 튼 민간인들이라면, 대북사업 진출을 도모하는 국내 기업들의 자문역을 하며 남북교역에 긍정적 기여를 하는 이들도 있다. 그 대표적 인물들이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와 조동호 한국개발연구원(KDI) 북한경제팀장. 현재 대북사업을 하려는 기업인들의 친목 및 정보교류 단체로는 남북경협협의회와 남북경협포럼 등 다양한 모임이 있다. 두 사람은 이곳 모임에 참석하는 대북진출 기업인들 사이에 “대북사업을 하려는 기업인들에게 제대로 된 대북 사업관을 심어주고 구체적 실무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대표적 컨설턴트”로 알려져 있다.

    수백개 기업 남북교역하다 쓴 잔

    이들 대북사업 전문가들은 1997년 본격적인 대북교역시대 개막 이후 대북사업은 크게 3단계를 거치며 발전해왔다고 분류한다. 1990년대 말 황무지 개척에 나섰던 1세대에 이어 2000년 전후 북한진출이 ‘붐’을 이뤘던 2세대를 거쳐 지금은 결실을 맺는 3세대에 들어섰다는 것. 하지만 1, 2세대 대북사업자 대부분이 지금은 대북사업을 그만두거나, 대북사업의 여파로 기업마저 도산하는 고통을 겪고 있는 게 현실. 지금은 이런 어려움을 겪고 살아남은 기업과 기업인을 중심으로 3세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그동안 수백 개 기업이 남북교류를 하다 망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본격적으로 남북 모두가 이익을 내는 대북사업 시대가 되려면, 우리가 필요한 것보다 북한이 필요한 아이템을 갖고 북한시장을 공략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한의 처지에서 판단해 그들이 필요로 하는 사업부터 시작해야 뒷돈 요구나 일방적 약속파기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제는 대북사업에도 열정보다 이성적 판단이 앞서는 시기가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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