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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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 개구리’ 한국 AI 산업이 나아갈 길

HBM 및 AI 데이터센터 투자, AI 서비스 개발에 박차 가해야

  • 김지현 테크라이터

    입력2025-02-1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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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픈AI가 지난해 5월 13일(현지 시간) 공개한 최신 인공지능(AI) 모델 ‘GPT 4o’가 생성한 이미지. 이 글 내용을 형상화해달라고 요청해 받은 결과물이다. [김지현 제공]

    오픈AI가 지난해 5월 13일(현지 시간) 공개한 최신 인공지능(AI) 모델 ‘GPT 4o’가 생성한 이미지. 이 글 내용을 형상화해달라고 요청해 받은 결과물이다. [김지현 제공]

    인공지능(AI) 시장이 격변하고 있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내놓은 AI 모델 ‘R1’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너도나도 R1을 서비스하고 있다. R1이 공개된 지 일주일 만에 마이크로소프트(MS)는 자사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애저(Azure)와 소프트웨어 개발자 도구 깃허브(GitHub)에 R1을 적용했다. 이어 아마존도 생성형 AI 플랫폼 베드록(Bedrock)에 R1을 추가했다. 엔비디아와 메타 역시 자사 서비스에서 R1을 곧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딥시크가 오픈소스 영역에서 새로운 리더로 우뚝 서는 양상이다. R1이 오픈소스로 공개되기 전까지 오픈소스 AI 모델계의 선두 주자는 메타의 언어모델 라마(LLaMA)였다. 오픈AI와 구글은 자사 AI 모델의 작동 방식을 외부에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AI 리더, 딥시크

    R1은 코드가 공개돼 있으면서도 라마보다 추론 성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R1의 코드와 가중치가 완전히 공개돼 개발자들이 이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것도 라마와의 차별점이다. 라마는 코드에 접근하려면 메타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제한적 오픈소스 모델이다.

    딥시크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에 의존해 AI 모델을 개발하는 업계 공식도 깨뜨렸다. 미국은 그동안 반도체 규제를 통해 중국이 고성능 GPU와 HBM을 사용하는 것을 제한해왔다. 이러한 악조건에도 딥시크는 오픈AI의 챗GPT와 대등한 수준의 성능을 갖춘 R1을 개발해냈다. 딥시크는 AI 모델의 효율보다 성능을 강조한 오픈AI의 AI 학습 방법에서 벗어났다. 그 대신 고품질 데이터를 활용한 강화학습으로 AI를 학습시켰다. 또 추론에 특화된 저비용 신경망처리장치(NPU)를 활용해 AI 모델 운영비를 대폭 줄였다.

    요동치는 AI 시장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한국이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설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현 위치부터 정확히 진단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AI 반도체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운영하는 데 필수적인 HBM 시장에서 약 90% 점유율을 차지한다. 하지만 AI와 관련된 기타 시장에서는 한국 기업 성과가 부진하다. 네이버와 삼성SDS, LG AI연구원, SK텔레콤, 뤼튼테크놀로지스가 AI 모델을 개발하고 AI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이들은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고 있다. 말 그대로 우물 안 개구리다.

    ‘하드웨어·인프라·서비스’ 3가지 축 발전시켜야

    한국은 ‘하드웨어·인프라·서비스’라는 세 가지 축을 조화롭게 발전시켜야 한다. 이미 국내 기업이 선두를 차지한 HBM 분야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딥시크 때문에 HBM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고 얘기한다. HBM을 적게 사용해도 더 나은 AI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딥시크가 증명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제번스의 역설’에 따르면 기술 진보로 특정 자원 사용의 효율성이 증대될 경우 해당 자원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증가한다. 즉 딥시크 같은 새로운 AI 모델이 오픈소스로 공개되면 AI는 더욱 보편화될 테고, AI 사용이 늘어난 만큼 반도체 소비는 늘어날 것이다.

    AI 데이터센터에는 선제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AI 데이터센터는 AI 관련 연구와 서비스를 가능케 하는 필수 기반 시설이다. 이곳에서 개인과 기업 데이터가 저장되고 처리되기에 그 중요성은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게다가 AI 데이터센터는 여러 컴퓨팅 장비와 냉각 솔루션, 전력 공급 장치 등이 모인 대규모 시설이라 적절한 입지에 세워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AI 데이터센터 발전을 위해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AI 데이터센터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 AI 데이터센터에 대한 투자 효과는 AI 모델 구동을 도와 한국 AI 생태계를 성장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 전 세계가 AI 데이터센터를 효율적으로 구축하고 운영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에 대한 선제적 투자로 차별화된 AI 데이터센터 효율화 기술을 확보한다면 이는 또 다른 사업 기회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AI 서비스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치킨게임 양상이 된 AI 모델 개발 전쟁에 모두가 뛰어들 수는 없다. 스마트폰이 잘 팔린다고 모두가 스마트폰을 만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업들은 그 대신 스마트폰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제공되는 쇼핑, 금융, 교통, 업무 등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를 고안해 또 다른 가치를 창출한다. 이처럼 AI 모델을 활용한 서비스를 개발해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만들어내야 한다. AI 반도체나 AI 데이터센터, AI 모델은 최종 사용자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AI 사업의 꽃은 사용자와 맞닿은 서비스다. 한국 기업이 개발한 AI 서비스가 국경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간다면 네이버 웹툰과 게임 리니지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의 위상도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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