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인간이 자신의 소유물에 대해 갖는 강한 집착이다. 이는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져 이제 유전자를 바꿔서라도 예쁜 애완동물을 만들겠다는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애완동물의 대상이 바로 관상어다. 관상어 사업의 핵심은 바로 색상. 색상이 더 아름다운 물고기를 얻기 위해 교배나 염색 같은 기법을 이용해왔던 사업자들은 이제 유전자 변형기술까지 동원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요크타운 테크놀로지(Yorktown Technologies)사는 유전자를 인공적으로 바꿔 예쁘게 만든 열대어를 개발해 1월5일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얼룩말 무늬를 가진 4cm 크기의 관상용 열대어인 제브라 피시(Zebra Fish)가 그 주인공이다.
과학 실험용에서 애완용으로 변신
과학자들은 산호충에서 뽑아낸 형광유전자를 제브라 피시의 수정란에 넣어 빛을 내도록 만들었다. 제브라 피시는 원래 검은 몸통에 은색 줄무늬를 한 물고기인데 형광유전자가 생기자 햇빛과 자외선 아래서 아름다운 붉은 광채를 발산했다. 개발회사는 이 물고기를 ‘글로피시(GloFish)’라 이름하고 홈페이지(www.GloFish.com)를 통해 “당신의 수족관에 과학의 기적을 일으켜라”며 홍보활동에 나섰다. 가격은 1마리에 5달러로 제브라 피시보다 무려 5배나 비싸다.
유전자가 변형된 관상어는 ‘글로피시’가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01년 타이완의 타이콩 그룹은 해파리의 발광 유전자를 이용해 연둣빛을 내는 메다카(일본에서 주로 서식하는 송사리와 비슷한 민물고기)를 개발해 지난해 1마리에 17달러씩 판매하기도 했다.
사람의 오감을 즐겁게 하기 위해 유전자를 변형시킨 애완동물은 관상어에 그치지 않는다. 이제 곧 개, 고양이, 토끼 같은 포유류도 인간의 사랑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유전자를 바꿔야 할 운명에 있다.
프랑스 국립작물재배연구소 연구팀은 미국 시카고대학의 에두아르도 칵(Eduardo Kac) 교수의 도움을 받아 2000년 어둠 속에서 자외선을 받으면 녹색을 띠는 알비노(Albino·白變種) 토끼를 개발했다. 이 토끼는 발광 해파리에서 형광유전자를 추출, 형광을 두 배로 늘린 뒤 토끼의 수정란에 주입해 태어났다. 칵교수는 이 토끼를 ‘초록형광단백질(GFP·Green Fluorescent Protein)토끼’라고 이름 지었다.
미국 코네티컷대학의 제리 양(Jerry Yang) 교수는 고양이 털이 인간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부작용에 주목했다. 고양이의 특정 유전자를 제거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털이 좀처럼 빠지지 않게 설계한 것이다. 이 개량 고양이는 내년쯤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관상어는 가장 손쉬운 유전자 조작대상 동물이다. 타이완에서 개발한 ‘메다카’(위 왼쪽)와 미국에서 개발한 ‘글로피시’. 더욱 쉬워진 유전자 조작기술은 인류의 축복이 될 수 있을까. DNA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제임스 왓슨(아래 왼쪽)과 크릭.
이 같은 품종개량을 넘어선 형질변화에 대해 윤리 문제가 제기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단지 사람의 감각을 즐겁게 하기 위해 동물의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바꾼다는 것이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동물보호론자들은 질병치료 목적이 아닌 미용을 위해 생명체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것은 생명윤리에 어긋나는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프랑스 국립작물재배연구소의 연구팀은 앞서 설명한 ‘초록형광단백질 토끼’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지만 동물보호단체의 비난을 의식해 연구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이들 유전자 변형 동물들이 처음부터 애완용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전자 변형 관상어인 메다카와 글로피시는 처음에는 주로 수질 오염을 검사하는 단순한 실험용으로 탄생했지만, 아름다움이 돋보이면서 관상어로 점차 활용범위가 넓어졌다.
메다카는 비용이 적게 들고 관리하기 쉬우며 실험용 생쥐(모르모트) 같은 포유류에 비해 실험자가 죄책감을 덜 느끼기 때문에 독성실험용 동물로 널리 쓰였다. 글로피시는 키우기 쉽고 번식이 빠르며 도마뱀 꼬리처럼 세포 증식능력이 탁월한 데다 일부 장기가 사람의 유전자 구조와 비슷해 인간의 유전자 활동을 연구하기 위한 동물로 활용된 것.
형광유전자를 가진 발광해파리는 미국 하버드대학의 울랜드 해스팅스(Woodland Hastings) 교수의 연구성과다. 그는 해파리에서 형광유전자를 발견하고 유전적인 기능을 규명한 뒤 이 유전자를 이용해 특정 단백질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방법을 확립했다. 예를 들어 암 유전자에 형광유전자를 입혀 암세포 추적을 쉽게 함으로써 수술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환경단체들 “생태계 교란 위협”
그러나 환경보호단체들은 유전자 변형 생물이 불러올지 모르는 생태계 교란을 크나큰 위협으로 지적한다. 인간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유전자가 조작된 동물이 자칫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연환경에 방출될 경우 생태계에 심각한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해파리 박사’인 해스팅스 교수는 “내가 아는 한 어떤 위험도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더욱이 미국연방식품의약국(FDA)의 규정에는 유전자 변형식품에 대한 규제만 있을 뿐 관상용 열대어에 대한 규제는 아직 없다.
물고기를 예쁘게 만들기 위해 유전자 기술을 동원할 지경이라면, 지금의 성형수술 열풍으로 볼 때 앞으로 인간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유전자 기술에 매달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구나 유전자 기술의 목적이 의료용이면 찬성하고, 애완용이나 미용이면 반대한다는 논리는 이제 의미가 없다. 형광물고기는 의료용 목적으로 연구됐지만 결과적으로 애완용으로 활용됐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부터 유럽의 환경운동가들은 유전자 변형식품을 ‘프랑켄푸드(Frankenfood)’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괴물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이 먹는 음식이란 뜻이다. 한때 인류 식량난을 해결할 과학기술의 은총으로 여겨진 생명공학기술이 지금은 괴물이나 먹는 끔찍한 식품을 만드는 기술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유전자 변형동물은 최근 ‘프랑켄펫(Frankenpets)’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생명공학의 발달에 따라 앞으로 프랑켄슈타인 가족이 자꾸 늘어날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프랑켄슈타인은 영국의 소설가 메리 셸리가 1818년 저술한 괴기소설이다. 스위스의 물리학자인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여러 구의 시체에서 모은 몸통과 장기를 조립하여 초인적인 힘을 가진 괴물을 탄생시켰다가 결국 괴물에게 희생당한다는 줄거리다. 어떻게 해서든 피조물을 설득하려는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창조주에 대한 증오에 불타는 괴물과 격론을 벌이는 장면에서 이런 질타가 나온다.
“네가 감히 생명을 희롱하느냐?”
현대과학이 더욱 명심해야 할 질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