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청소년의 건강을 위해 인스턴트 식품의 광고를 금지하자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럭비를 하고 있는 이튼 칼리지의 학생들.
그런데 요즘 베컴이 그라운드에서 멋있게 골을 넣은 뒤 시원하게 콜라를 마시는 광고가 비판을 받고 있다. 스타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의 심리를 이용해 건강에 좋지 않은 청량음료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는 게 비판의 요지. 일부 시민단체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이런 광고를 금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요구가 나온 이유는 어린이들의 과체중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 정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어린이 과체중이 심각한 수준임을 바로 알 수 있다. 6세 어린이의 경우 지난 10년간 과체중과 비만인 비율이 2배나 증가해 현재 8.5%를 차지하고 있다. 15세 어린이는 15%가 과체중이거나 비만이고, 16~24세 남자의 32%, 여자의 33%가 과체중 또는 비만으로 나타났다.
어린이 과체중 광고 영향 탓?
물론 이런 과체중이나 비만이 청량음료나 과자, 햄버거 등 인스턴트식품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나 인스턴트식품 섭취 급증과 비만 아동의 비율 증가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결과 밝혀졌다.
이 연구결과 보고서가 발표되자 여당인 노동당 일부 의원을 중심으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인스턴트식품의 광고를 금지하자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베컴 등 일부 유명스타가 출연한 광고가 특히 비판의 대상이 된 것. 스타들과 이들의 상품가치를 알고 있는 업자들이 어린이를 겨냥해 집중적인 판매촉진 마케팅을 펼치는 행위는 어린이의 건강을 도외시한 얄팍한 상술이라는 주장이다. 스타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은 아직 분별력이 없어 자신들의 우상이 모델로 나오는 과자나 청량음료를 자주 먹거나 마신다. 부모들도 아이들의 이런 군것질 버릇을 제대로 통제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런 광고 금지 요구에 대해 업계와 광고대행사들은 심하게 반발하고 있다. 영국 하원 보건위원회에 출석한 업계와 광고대행사 대표들은 “관련 광고를 금지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음식을 골고루 먹고 운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이들은 또 술 광고처럼 ‘지나친 음주는 건강에 해롭다’는 식의 경고문을 부착하는 것도 광고 시간이 너무 짧아 불가능하다며 거부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인스턴트식품의 광고 금지 논란은 이제 초기 단계다. 따라서 아직 뭐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담배 광고 금지 요구도 처음엔 냉담한 반응이었다는 사실을 돌이켜보면 비관할 필요가 없다고 영국 언론은 보도했다. 점차 공감대를 형성해가면 언젠가 광고 금지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미 스웨덴이나 네덜란드에서는 이런 광고가 금지되어 있다.
영국의 중·고교에 설치된 코카콜라 자판기는 2000여개로 추산된다.
영국의 중·고교에 설치되어 있는 코카콜라 자판기는 약 2000개로 추산된다. 당연히 큼직한 코카콜라 상표가 그려져 있는 이 자판기에서는 코카콜라와 다른 청량음료, 그리고 초콜릿 등이 판매되고 있다.
우선 코카콜라사는 스코틀랜드 교육청과 합의 끝에 자사 상표를 이 자판기에서 없애기로 했다. 코카콜라 상표가 제거된 공간에는 거리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청소년들의 그림이 붙여졌다. 그리고 자판기에서 콜라 품목을 제거하지는 않았지만 물과 과일주스 등 몸에 해롭지 않은 품목을 더 많이 갖추어놓았다. 스코틀랜드에 이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교육청에서도 곧 코카콜라사와 합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중·고교에서도 코카콜라 상표를 없앨 것으로 보인다.
합의과정에서 일부 학부모단체는 자판기 자체를 학교에서 철거하자는 요구를 하기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공교육 개선이 시급한 과제이지만 학교마다 정부 지원이 줄어들면서 재정난이 심각해 자판기 운영을 통해 얻는 수입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영국의 각 중·고교는 평균 10만 파운드, 한국 돈으로 2억원이 넘는 재정난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년에 2만 파운드, 약 4000만원이 자판기 운영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기 때문에 자판기를 학교에서 철거할 수 없었던 것.
그러나 이런 조치가 미봉책이라는 비판이 학부모뿐만 아니라 교장협회에서도 나오고 있다. 전국교장협의회 사무총장인 데이비드 하트는 “아무리 코카콜라 상표를 제거해도 자판기에서 콜라를 살 수 있기 때문에 실효가 없다”고 비판했다. 알랜 밀번 전 보건부 장관도 “이번 조치가 방향은 맞지만 미흡하다”며 “조만간 중·고교에서 자판기가 철거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에 자판기협회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 협회의 짐 포지애들리는 “우리 협회가 속죄양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어린이 비만 급증이 자판기 때문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보건부도 “자판기 철거만이 어린이 비만을 줄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어린이들이 소금과 지방 등 필요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도록 올바른 식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청량음료와 인스턴트식품의 광고 금지 논의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대신 대부분의 중·고교에 설치돼 있는 자판기에서 청량음료의 상표를 제거한다는 합의는 이뤄졌다. 아동의 비만을 줄이고 건강한 식생활을 하기 위한 첫 단추가 끼워진 셈이다. 하지만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