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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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은 이글이글, 땀 송송 “어~ 시원타”

  • 글·사진=허시명/ 여행작가 www.walkingmap.net

    입력2004-01-30 11: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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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꽃은 이글이글, 땀 송송  “어~ 시원타”

    숯가마 안에서 찜질하는 사람들.

    뜨뜻한 구들장이 그리워지는 날들이다. 길은 빙판이고, 바람은 매서워 집을 나서면 그 순간부터 고생길이다. 만약 이런 날 길을 나선다면 온천이나 찜질방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겨울이라 운동량도 부족해 찌뿌드드한 몸도 풀 겸 숯가마 찜질방에 가기로 했다. 길이 미끄러워서 고속도로 나들목에서 가까운 숯가마로 정했다. 내가 찾아간 곳은 영동고속도로 새말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안흥 방면으로 10분쯤 가면 나오는 횡성군 우천면 오원3리의 경원참숯가마다.

    참숯가마 굴뚝에서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참숯가마 대표인 박영환씨(60)는 뇌출혈로 두 번이나 병원 신세를 졌던 이로, 방바닥에 5cm 높이까지 참숯을 깔고 생활하면서 참숯 효과를 체험했다. 그래서 참숯 효과에 대해서는 더 물을 필요도 없다 싶었는데, 그이가 “숯가마 근처로 암 환자 한 사람이 이사 왔는데 숯가마를 드나든 뒤 건강을 회복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인부들이 긴 쇠꼬챙이로 숯가마에서 숯을 꺼내고, 하얀 면바지에 면티를 입은 찜질객들이 숯가마 주변을 기웃거리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나 그들은 신기해서 보는 게 아니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숯불의 기운을 쐬기 위해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작업반장은 숯에서 나오는 불기운이 몸에 좋다며, 나더러 가까이 와 불을 쪼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예전 여자들이 자궁암에 걸리지 않았던 이유가 물론 그때는 자궁암을 진단하는 방법이 없기도 했지만 아궁이에서 불을 땠기 때문이라고 했다.

    불꽃은 이글이글, 땀 송송  “어~ 시원타”

    연기가 피어오르는 숯가마 모습.

    숯을 꺼내는 가마 옆 빈 가마는 찜질방으로 이용되었다. 숯가마 입구의 높이는 어른 한 사람이 고개를 약간 숙이고 들어갈 정도. 가마 안쪽 벽면에는 황토가 발라져 있고 천장까지의 높이는 2m쯤 되었다. 그리고 공간은 10명 가량이 넉넉하게 앉을 수 있는 정도였다.

    옷을 갈아입고 숯가마에 들어가 보았다. 보통 찜질방에서는 하얀 면바지와 면티를 입고, 하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다. 되도록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찜질하는 게 좋지만 너무 뜨거운 열에 화상을 입을지 모르기 때문에 옷을 입고 수건을 걸치는 것이다. 그런데 면으로 된 흰색 옷을 입는 이유는 그것들이 숯가마에서 나오는 원적외선이 가장 잘 스며드는 소재와 색깔이기 때문이란다.



    숯가마에 참나무가 가득 쟁여지면, 불을 때서 가마 속의 온도를 400~700℃로 높인 다음 구멍을 막고 일주일 정도 불기운을 유지한다. 흑탄(또는 검탄)은 여기에서 일주일을 더 끈 뒤 불기운이 완전히 잦아들었을 때 손으로 꺼내는 차가운 숯이다. 백탄은 일주일이 지나면 곧바로 가마에 구멍을 내고 공기를 통하게 해 숯가마 온도를 1000℃ 이상으로 높여 이른바 ‘뜸을 들였다가’ 꺼내는 뜨거운 숯이다. 요사이 숯가마에서 만드는 숯은 대부분 겉에 흰 재가 묻어 있는 백탄이다. 백탄을 굽는 숯가마라야 숯 찜질도 가능하다.

    불꽃은 이글이글, 땀 송송  “어~ 시원타”

    숯가마에서 숯을 꺼내는 모습(위).트럭으로 참나무 장작을 나르는 모습(아래 왼쪽).숯가마의 열을 이용해 3초 삼겹살구이를 하고 있다.

    숯을 꺼낸 지 이틀이 지난 숯가마에 들어가 보았다. 얼굴이 따가울 만큼 뜨겁지는 않았다. 먼저 숯가마에 들어와 앉아 있던, 인천에서 온 한 아주머니가 ‘하탕’에 속한다고 친절하게 말해준다. 일반적으로 찜질방이나 숯가마는 내부 열기에 따라 꽃탕, 중탕, 하탕으로 구분한다. 꽃탕은 옆사람과 말도 하지 못할 정도로 뜨거운 방으로 거적때기를 뒤집어써야 찜질이 가능하다. 그래도 1~2분쯤 있다가 밖으로 나와야 한다. 꽃탕에 들어가면 관절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마디마디가 쑤시고 얼룩이 지면서 그 부위에 꽃무늬가 생긴다.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아픈 관절이나 뼈마디에서 꽃바람이 빠져나오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래서 꽃탕이라는 이름도 생겼다. 꽃탕이 하루쯤 지나면 중탕이 된다. 중탕이 다시 하루쯤 지나면 하탕이 된다. 내가 들어간 곳이 바로 그 하탕이었다. 그래서 내일 꽃탕이 열릴 때 다시 와야겠다며 돌아가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하탕이라고 무시할 것은 못 된다. 열이 강하지 않으면 숯가마 안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바깥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면 된다. 나는 찜질방에 익숙한 체질이 아니어서, 숯가마 안에 30분쯤 있어도 땀이 나지 않았다. 땀구멍이 열리지 않고, 오히려 피부가 바삭바삭 더 말라갔다. 맞은편에 앉은 뚱뚱한 여자가 자기는 숯가마에 세 번째 왔을 때 비로소 땀구멍이 열렸다고 했다. 몸이 숯가마 찜질방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한 것은 40~50분이 지나고 나서부터였다. 몸속에서 열 기운이 느껴지면서, 얼굴과 등에 땀이 배어났다. 그런데 묘하게 숯가마 안이 뜨거운데도, 그리고 천으로 입구를 가려놓았는데도 가슴이 답답하지 않고, 숨이 막히지 않으며, 머리도 아프지 않았다. 사우나나 찜질방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이었다. 그리고 숯가마에서는 달걀이 노른자위부터 익는다고 했다. 달걀을 삶으면 당연히 흰자부터 익는다. 그런데 숯가마에서 노른자위부터 익는 이유는, 원적외선에서 발생하는 복사열이 달걀 속으로 침투해 속에서부터 익혀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마에 구워먹는 삼겹살도 별미

    숯가마가 일반 사우나와 크게 다른 점은 바로 이 원적외선에 있다. 원적외선은 피부의 겉면을 달구는 게 아니라, 피부 속의 온도를 높여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땀을 흘리게 한다. 한 보고에 따르면 원적외선은 일반 열보다 80배나 깊숙이 피하층으로 스며든다고 한다.

    숯가마 안에서 20분쯤 있다가 2~3분 밖에 나와 있기를 세 번쯤 반복하고 나서 다시 숯가마에 들어가니, 마치 따뜻한 공기로 된 옷을 입고 있는 듯했다.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데, 황토 숯가마의 기운이 내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기도 했다. 옆에 앉은 50대 중년 부인은 ‘숯가마는 종합병원’이라고 했다. 뜨거운 기운을 속으로 들이켜면 풍치의 통증이 가라앉고, 숨을 들이마시면 칼칼한 목이 터지며, 뿐만 아니라 관절에 좋고 부인병에도 좋으니 내과, 산부인과, 치과를 모두 옮겨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유별난 점은 숯 찜질하는 동안 흘린 땀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탈취 효과가 있는 숯이 태어난 방이어서일까, 그 이유는 딱히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숯가마 찜질을 하고 나면 목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경원참숯가마에서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은 참숯을 꺼내는 동안 벌겋게 달아오른 삽에 삼겹살을 올려놓고 가마 안에 3초쯤 두었다가 빼내서 먹는 삼초구이다. 삼겹살이 고온에서 순간적으로 익으면서 기름이 빠지는데, 고기가 타지 않고 찰지게 구워진다.

    하탕에는 어린아이들도 들어갈 수 있어 가족이 함께 오면 좋은데 특히 노부모를 모시고 오면 더욱 좋다. 면티나 면바지를 준비해가면 탈의실에서 갈아입을 수 있다. 옷을 빌리면 2000원이고, 숯가마 이용료는 3000~5000원. 경원참숯가마는 오후 8시까지 운영하는데, 다른 업소 중에는 오후 5시30분까지 운영하는 곳도 있으니 미리 확인해보고 찾아가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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